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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48화 (49/124)

48화

“뭐야, 왜 안 나타나.”

나는 혹시 몰라 미친 사람처럼 마차 안을 샅샅이 뒤져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게 된 건 마부의 청소 실력뿐이었다.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군. 아니, 이게 아니라!

‘엘렌이 없어!’

갑자기 얼굴에 열이 몰리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자는 상황이지? 당장이라도 이 마차의 행선지를 황궁이 아닌, 마탑으로 바꾸자는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엘렌! 너 지금 안 나타나면 두 번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성격도 급하시긴.”

그제야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지척에서. 그런데 엘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너 어디 있어? 그리고 왜 빨리 안 나타난 거야?”

“지금 주변을 봐. 오필.”

그의 말에 나는 마차의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연회까지 가는 동안 나와 아일라를 호위해 줄 용병들이 있었다. 이날을 위해 특별히 거금을 들여 최정예 용병들로 호위를 맞춘 상태였다. 아일라와 리카르도가 함께 참석했던 원작과는 달리 이번엔 레니에 후작 쪽에서도 아일라가 연회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가 연회에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길 위험이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뺨이 따가웠다.

흘긋 시선이 느껴지는 쪽으로 시선을 던지니 검은 갑주를 입은 마리어스 기사들이 보였다.

마치 그들의 시선은 ‘대체 왜 그런 인력 낭비를.’ 하고 묻는 듯했다.

그래, 인력 낭비긴 했다. 그것도 엄청난 낭비지. 바로 그게 문제였다. 이런 평범한 백작 가문 마차에 마리어스가 호위를 하는 인력 낭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누가 봐도 필히 주목을 받게 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관심이 딱히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마리어스 기사단의 위명은 굉장하고 드높았다. 높아도 너무 높아서 일반 사람이 구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는 것처럼 베일로 싸였다는 게 문제였다.

비밀은 양날의 칼이었다. 하지만 귀족 사회에선 비밀이 나를 향하는 칼이 될 확률이 높았다. 만약 마리어스의 호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나나 아일라가 숨겨진 황제의 애첩 따위로 소문이 퍼질 수도 있었다. 별로 좋지 않은 관심이 이어질 것이란 건 자명했다.

‘대체 리카르도는 무슨 생각인 거야.’

아무리 내가 걱정되었더라도 마리어스는 나에게 너무 버거운 존재였다.

그래서 황궁 주변에 호텔이나 여관이 있으면 바로 마리어스 기사단을 그곳에 놓고 올 생각이었다. 사실 백작저에 놔두고 오고 싶었지만, 그들이 극구 따라와 호위하겠다고 강경히 주장한 탓에 결국 황궁 주변까지만 길을 허락했다.

만약 연회에서 황제와 단둘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마리어스를 도로 데려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기회가 없을 거란 게 문제지만.’

연회 내내 황제 주변엔 많은 귀족으로 붐빌 것이다.

나는 다시 창문을 닫고 말했다.

“마리어스 때문이야?”

“아무리 내가 멋지고 똑똑하고 잘생긴 마법사라도 마리어스의 눈을 두 번 속이는 일은 힘들거든.”

“…그렇게 마리어스가 대단해?”

앞에 나열된 이상한 미사여구는 못 들은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창문 너머로 가까워지는 황궁의 모습에 나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지금 마리어스가 얼마나 강하고 위대한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럼 나랑 약속한 건!”

“유감이지만 원격으로 마법을 걸어주는 방법은 없어.”

“지금 이 대화는 어떻게 하고 있는 건데?”

“바닥을 봐봐.”

“꺄악!”

그 말에 바닥을 본 아일라가 몸을 부르르 떨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도 그녀의 비명 소리에 깜짝 놀라 급하게 바닥을 보았다. 그러자 꼼지락거리는 작은 털복숭이가 보였다.

“이건… 쥐?”

“쥐가 된 나도 귀엽지?”

쥐, 쥐가 말을 하네? 근데 목소리는 엘렌이었다.

“아까 마차 안을 뒤졌을 때는 못 봤는데….”

“그게 레니에 영애 가방에 숨어 있어서 그래.”

아일라의 표정이 핼쑥하게 변했다. 그녀는 더러운 오물을 만졌다는 듯 들고 있던 가방을 맞은편에 던져버렸다. 사람의 말을 하는 쥐라. 왠지 전생에 보았던 만화가 떠올라 징그럽기보다는 신기함이 더했다. 나는 쥐가 된 엘렌을 만져보려고 손을 뻗었다가 그의 말 한마디에 손을 멈추었다.

“만지지 않는 게 좋아. 귀엽게 생겨도 온갖 병균은 다 갖고 있거든.”

“뭐? 네가 변신한 거 아니었어?”

“쥐를 매개체로 잠깐 말하고 있는 거야. 근데 쥐는 고지능 동물이 아니라 이 대화도 길게 이어갈 수 없어. 이 마법을 오랫동안 지속하려면 매개체의 지능이 중요하거든.”

“…그럼 마법을 걸어줄 수 없다는 이야기지?”

“응, 미안해. 오필.”

순순히 나오는 그의 사과에 나는 김빠진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네 잘못도 아닌데 왜 사과해. 어쩔 수 없지.”

“오필.”

점점 그의 목소리가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와 섞여 구분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엘렌의 말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쥐에 걸린 마법이 풀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쥐는 찍찍! 거리면서 마차 구석으로 도망쳤다.

“사, 사장님. 황궁에는 언제 도착하나요.”

그 모습을 본 아일라는 겨우 비명을 참으며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 *

황궁의 정문에는 벌써 수많은 귀족이 모여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황제의 탄신일이다 보니 연회의 규모도 엄청났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우려하던 걱정이 사라지면서 다른 걱정이 떠올랐다.

‘이렇게 큰 규모니까 부모님이랑만 마주치지 않으면 무사히 연회를 넘길 수 있겠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아일라가 시선을 독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는 듯 연회장에 입장하기도 전에 주변에 있던 귀족들이 아일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게 보였다. 아일라는 갑자기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부티크에 있었을 때처럼 슬금슬금 내 뒤에 숨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 돼요, 아일라.’

나는 쓱 자리를 피해 아일라 곁에 섰다. 오늘 나는 그녀의 보호자로 온 게 아니라 후원 파트너로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연회장에 들어서기 전에 가면을 똑바로 쓰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아일라와 같이 연회장 입구에 다가갔다. 젊은 시종이 내 초대장을 보고 홀에 소리쳤다.

“마르그리트 백작 부인과 아일라 레니에 후작 영애가 입장합니다!”

크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아일라가 내 팔을 붙잡고 바짝 굳어 버렸다. 홀 문이 열리면서 소란스러웠던 장내에 정적이 찾아왔다. 그 동시에 이목이 쏟아졌다.

“어머나…….”

“저분이 아일라 레니에 영애입니까?”

“저 드레스는 어디 의상실 옷일까요? 정말 아름답네요.”

“그런데 파트너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 건가요?”

여기저기서 아일라를 찬탄하는 이야기가 들렸으나 파트너가 여자라는 거에 의문을 갖는 말소리도 적지 않았다.

“레니에라면 레니에 후작의 딸인가요? 처음 들어보는데… 혹시 혼외자식….”

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곧 아일라의 외모를 칭찬하는 말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래, 이런 관심이 필요했어.’

신문으로 이미 아일라 레니에의 존재가 드러나기는 했어도 이렇게 사교계에서 실물로 등장하는 것과 신문에서 활자 하나로 잠깐 언급되다가 사라지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하지만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과 시선, 이야기들이 버거운지 내 팔을 잡은 아일라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손이 차가웠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손을 토닥이며 안심시키고 눈을 굴려 빠르게 홀 안을 스캔했다.

‘휴, 아직 오지 않으신 모양이네.’

카시어스 공작 부부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 남자 시종이 음식 트레일러를 끌고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와인 하나를 들어 마셔 보니 굉장히 비싼 고급 와인이었다.

홍차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술이었기 때문에 나는 한껏 기꺼운 마음으로 와인 잔을 두 개 집어 들었다. 아일라에게도 한번 맛 좀 보라며 와인 잔 하나를 건네려고 뒤를 돌았는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아름다우십니다, 영애.”

“실례지만 만나는 분이 따로 있으십니까?”

잠깐 떨어진 사이 아일라에게 달라붙은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목구멍에 기름칠을 잔뜩 하며 한마디라도 말을 붙이려는 영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파트너는 없으신 겁니까?”

‘여기 파트너 있거든!’

한 영식의 말에 나는 속으로 발끈했다.

아일라는 갑작스러운 관심에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아뇨, 저 파트너 있는데….”

그녀가 내 쪽을 보며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내었으나 많은 사람으로 인해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해도 나는 계속 뒤로 밀려나기만 했다.

이 인파를 뚫고 어떻게 아일라를 꺼내야 할지 간만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어머, 마르그리트 백작 부인.”

“생전 연회에 참석하시는 모습을 못 봐서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 깜짝 놀랐네요.”

“샬롯 백작 부인, 델라 남작 부인.”

카롤라 부티크에서 자주 보던 귀족 부인들이었다. 부티크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도 잘 하지 않던 사이였다. 레니에 후작 부인과 친한 그들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돈을 주고 귀족 작위를 사는 행위를 멸시했다.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나도 반갑게 아는 척을 하자 샬롯 부인이 말했다.

“드레스가 너무 아름다워요. 레니에 영애와 같은 곳에서 맞춘 건가요?”

‘그게 궁금해서 말을 걸었나.’

아일라가 입은 드레스의 출처가 오죽 궁금했는지 그녀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던 모양이다.

“부인도 잘 아시는 그곳이랍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친절히 대답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쓴 가면을 매만졌다. 입을 움직이면서 가면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러자 내 행동을 본 델라 남작 부인이 입을 열었다.

“연회장에 가면을 쓰고 나오는 건 철이 지난 유행일 텐데 그런데도 부인은 잘 어울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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