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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45화 (46/124)

45화

이사벨라의 드레스는 완벽했다. 그녀의 드레스를 입은 아일라는 두말할 것도 없었지만.

은은하면서도 정열이 느껴지는 붉은 드레스는 아일라의 몸을 살짝 휘감아 떨어졌다. 호수에 비치는 달빛에 떨어진 붉은 꽃잎처럼 이질적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가 흐르는 아름다움이었다.

흘긋 알렉스를 바라보니 그는 이미 넋이 나간 상태였다.

드레스를 갈아입은 아일라의 뺨이 복숭아처럼 옅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깔며 물었다.

“어, 어울리나요?”

“네!”

이 우렁찬 대답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알렉스였다. 왠지 그 모습이 웃겨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런 나를 아일라가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다. 기대 어린 눈빛으로 눈을 반짝이는 걸 본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실낱같은 이성을 붙잡고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여기서 입을 열면 온갖 주접을 떨 것 같았다.

그런데 좀 성의 없는 반응이 아니었나 고민하고 있는데 아일라는 내 대답에 만족한 듯 뺨을 더 붉게 물들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옆에서 들리는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카롤라 부티크에서 온 사람들과 알렉스는 한데 입을 모아 아일라를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너무 아름다우세요!”

“청초하면서도 매혹적인 느낌이에요.”

“경국지색이라는 베로니카 황녀님도 한발 물러서셔야겠는데요?”

부티크 사람들의 칭찬 중에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이 들렸다. 베로니카 황녀. 자손이 귀한 황실에서 딱 두 명의 자식이 있는데 그게 바로 황태자인 안셀모와 베로니카 황녀였다.

“실제로 황녀 전하를 뵌 적이 있어요?”

“아뇨. 그냥 그럴 것 같아서요.”

“…….”

엘렌에 버금가는 뻔뻔한 대답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정작 그 대답을 한 부티크 사람은 당연한 말을 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긴 베로니카 황녀는 황실에 개인 의상실이 있었지.’

생각해 보면 부티크 사람들이 황녀를 만났다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황녀는 황실 재단사가 만든 옷이 아니면 입지 않았다. 그래서 사교계 다음으로 여러 정보를 들을 수 있는 부티크에서 유일하게 황녀에 대한 정보를 건질 수 없었다.

정보로 먹고사는 나에게는 중요한 사람이자, 핵심적인 인물.

이번 연회는 황제의 탄신연회라 모든 황족이 참석한다. 그것이 내가 연회에 참석하는 큰 이유 중 하나였다.

‘황태자랑은 정반대네.’

여러 애인과 데이트를 하러 부티크에 출몰하는 황태자의 정보는 황녀보다 비교적 얻기 쉬웠다. 그래봤자 수시로 바뀌는 그의 여자 취향만큼 영 쓸데없는 정보들뿐이었지만.

이번 기회로 황녀의 혼담까지 담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입맛만 다시고 있던 나에게 아일라의 장신구를 고르던 부티크 사람이 말을 걸었다.

“부인, 그 소식 들으셨어요?”

“어떤 소식이요?”

부티크의 단골손님인 나와 그들은 어느 정도 친분이 있어 이런 가십 소재의 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같이 장신구를 고르는 척 귀를 쫑긋 세웠다. 수많은 귀족 부인과 귀족 영애를 맞는 부티크 사람들은 살아 있는 정보 창고였다.

“요새 업계에서 황태자 전하를 본 사람이 없다고 그래요.”

누구라도 들을세라 조심스러운 양 손바닥으로 얼굴 옆면을 가리며 나에게 말했다.

“어머, 정말요? 언제부터요?”

내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자 부티크 사람은 더 신이 나서 하던 말을 이었다.

“네, 아네타 영애랑 같이 쇼핑을 하러 부티크에 이틀에 한 번은 방문하셨었는데 갑자기 일주일 전부터 발길을 뚝 끊으셨대요.”

저번엔 코르넬리 영애라고 하지 않았나. 신문에 실리지 않았을 뿐이지 황태자의 애인은 꾸준히 바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왠지 질린 기분이 되었지만, 여성 편력이 있는 그가 애인이랑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는 건 조금 놀라운 소식이기는 했다.

“어머, 그것참 별일이네요.”

“그렇죠?”

“어디 아프신 걸까요?”

황태자라서 국사로 바쁘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군. 제국민에게 황태자의 평판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했다.

“듣기로는 태자비 전하께서 황태자 전하께 무슨 말씀을 꺼내신 모양이더라고요.”

“무슨 말씀일까….”

시기가 미묘했다. 딱 태자비가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가 일주일 전이었던 게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이번 기회로 황태자가 연회에서도 아일라에게 치근덕거리지 말고 조용히 있었으면 좋겠는데.

“부인, 뭔가 짚이는 게 있으신가요?”

아차.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던 모양이다.

“맞아, 태자비 전하께서 허니문을 방문했다고 하셨지요? 태자 전하께서도 그동안 허니문에 방문하신 건 유명한 얘기고… 그분은 허니문에서 무슨 상담을 하셨나요?”

꽤 예리한 눈치를 가진 아이가 나에게 질문했다. 상담이라. 상담이라 할 것도 없었다. 오면 아일라의 용모나 아름다움만 칭찬하고 추근거리다가 상담시간이 다 되어 사무실을 나갔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해 줄 의향이 절대로 없었다. 그가 허니문의 직원이 마음에 들어서 그곳에 방문했다는 얘기보다 허니문에서 결혼 상담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와전되는 편이 나았다. 그래야 그가 허니문을 방문할 일도 없어지겠지.

“뭐, 다들 하는 그런 상담이죠.”

모호하나 확실히 보이는 내 대답에 부티크 사람들은 놀라움과 흥미가 섞인 얼굴로 ‘어머, 어머.’ 연신 감탄사만 내뱉었다.

‘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단 말씀이야.’

그러나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가 연회가 열리기 전까지 온갖 곳에 퍼질 거라는 건 확실했다.

* * *

시간이 흘러 어느덧 연회를 하루 앞두고 있었다. 준비는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다.

옷이나 장신구뿐만 아니라, 미리 부티크나 회사에서 만난 귀부인들과 대화하여 그곳에 참석할 귀족들이 누구인지 대충 파악도 끝내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찝찝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제 새로운 정장을 맞추려고 부티크에 들렀을 때였다. 젊은 영애들이 연회에 참석할 때 입을 드레스를 고르며 나누는 대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거의 7년 만에 참석한다지요?

-카시어스 영애가 나간 뒤로는 두문불출하셨으니 7년이 흐른 게 맞을 거예요.

그 이야기에 깜짝 놀란 나는 무례를 무릅쓰고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머, 카시어스 공작 부인이 참석하신다는 말씀인가요?

-아… 저희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렇다고 알고 있어요. 부인.

엘렌은 분명 내 부모님이 연회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하지만 다른 귀부인들에게 재차 확인 삼아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갑자기 참석하기로 마음을 돌리신 건가?’

이런 일에 엘렌이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가면을 쓰고 머리색을 바꾸어 연회에 참석한다고 하지만 유년 시절을 함께한 부모님이 나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를 어쩐다.’

하필 이 소식을 그저께 들어, 돌연 연회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아일라의 파트너를 따로 구하는 것도 이제 불가능했다. 그러면 방법은 한가지였다. 엘렌의 도움을 받는 것.

아침에 출근한 아일라는 입을 꾹 다문 채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일라, 무슨 일 있어요?”

“네! 네?”

반사적으로 대답을 한 아일라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곧 리카르도가 사무실에 내담을 하러 올 시간이었기에 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혹시 리카르도 때문에 그래요?”

에둘러 말했음에도 아일라는 곧바로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깨달았다.

“아….”

그녀는 표정을 굳혔다. 나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면밀히 살폈다. 아일라가 리카르도에 대한 호감이 있다면 이 상황은 필히 남주에게 위기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여자의 파트너가 누가 되었든지 간에 아일라는 그 파트너를 좋게 볼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둘의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다.

‘아직 포기하긴 이르지. 내 항만지분 10퍼센트!’

문제라면 그 둘 사이의 오해를 어떻게 푸는 거냐는 거다. 애초에 오해가 쌓일 만큼 그 둘의 관계에 진척이 생긴 것도 아닌데…. 하지만 관계에 진척이 생기기도 전에 관계가 틀어지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수로 그걸 막는다는 말인가. 그래서 여태까지 리카르도한테 왜 에스텔라와 파트너가 된 것인지 물어보지 못했었다.

엘렌의 통찰을 통해 리카르도의 마음을 읽어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나, 그는 리카르도의 마음은 읽을 수 없는 상태였다.

내 물음에 대답할 거라고 생각했던 아일라가 예상과 달리 물음을 던졌다.

“사장님은요?”

“나요?”

여기서 내 얘기는 왜 나오는 거지? 이상하게 내가 질문하면 나한테 질문의 화살이 돌아오는 상황이 잦은 것 같았다.

“나는…….”

상관없는 일이죠, 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순간 나도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침묵이 길어지고 아일라의 시선이 미묘한 빛을 띠기 시작할 때, 나는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

“난 그 상황이 조금 별로예요.”

“왜요?”

아일라의 물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구보다 내 대답에 이해를 해야 할 그녀가 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있었다.

“공작님처럼 좋은 분이 그런 분이랑 파트너가 된다는 게 썩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내가 말을 하는 중에 아일라가 슬쩍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왜 그래요, 아일라?”

“……고, 공작님. 안녕하세요.”

네? 나는 ‘설마’ 하는 얼굴로 삐걱거리는 목을 돌렸다. 아일라가 이 순간 나한테 하는 짓궂은 장난이길 간절히 바라면서.

불행하게도 검은 머리의 미남자가 이쪽을 바라보며 의미 모를 표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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