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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42화 (43/124)

42화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붉어진 얼굴로 훌쩍이는 리체와 그에 반해 핏기가 없을 정도로 창백한 리온. 나는 그 둘을 천천히 보며 한숨을 픽 쉬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리체, 잠깐 나가 있어.”

“……!”

명령이 떨어지자 리체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를 달래줄 생각은 없었다.

“빨리. 리온은 여기 남고.”

리체가 방을 나가고 방에는 리온과 둘이 남게 되었다. 나는 그를 보고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진즉 보좌관을 들였으면 이런 일 따위 있지 않았겠지.’

처음부터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했다. 외려 리온은 이 일을 예견하고 미리 나에게 무례를 무릅쓰고 언질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 일은 해결하고 가야 해.’

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 간단한 일에 불과했으나 앞으로 이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간밤에 느낀 것이 있었다. 사람의 몸은 하나라는 것.

보좌관을 두지 않는 이상한 고집을 버려야 할 때였다. 그러나 외부인을 보좌관으로 들이는 일은 여전히 위험 부담이 있었다. 만약 백작저에 보좌관을 들인다면….

‘백작의 부재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고용해야 해.’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주인 없이 4년 넘게 일한 식솔이라면 모를까.

자연스럽게 스친 생각에 일순 사로잡혔다. 이거 꽤 괜찮은 생각인데?

다만 걸리는 점이라면 그들의 신분이 평민이라는 것이지만, 보좌관이 아닌 사무를 보조하는 위치라면 신분에 구애받지 않았다.

리온을 바라본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리온, 우리 가문 사람 중에 재무나 회계에 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있어?”

“…….”

눈치가 빠른 리온은 기민하게 내 질문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총명하게 빛났다.

“속히 찾아보겠습니다.”

“조용히 찾아야 해. 보좌관에 관한 언급은 일절 말고. 잠시 사무 보조를 맡는다는 구실이면 돼.”

“네.”

“그럼 이만 가봐. 그리고 리체는 출근복 들고 들어오라고 하렴.”

“…네, 감사합니다. 마님.”

빠릿빠릿하게 행동하던 리온이 웬일로 나가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혹시 책임을 묻지 않아서 이상하게 여기는 건가.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아주 멀쩡해.”

“다행이군요. 간밤에 많이 편찮으신 듯하여 모두가 마님을 걱정했습니다.”

“…….”

리온은 여상한 태도로 말했으나 그 얘기를 듣는 나는 왠지 모르게 어색하고 낯간지러운 기분에 얼굴만 긁적였다.

“그래… 완전히 나았으니까 걱정들 하지 말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리온이 설핏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용건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여전히 나가지 않고 있었다. 이상할 만큼 뜸을 들이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오늘 허니문 말고 다른 일정이 있으십니까?”

“아니? 내가 알기론 다른 외부 일정은 없을 텐데.”

“그럼 오늘이 휴일인 것도 아시는지요?”

“……?”

나는 그의 말을 반 박자 늦게 이해하고 협탁에 놓인 달력을 보았다.

빨간 글씨였다. 허니문이 쉬는 주말. 나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리온, 아무래도 보좌관을 빨리 찾아보는 게 좋겠어.”

이런 실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바랐다.

창피해 뒈질 것 같으니까.

* * *

부지런하고 착실한 아일라는 후원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회사 휴일 마탑에 방문했다. 아침부터 푸른 첨탑은 폭발 소리와 이상한 괴생물의 기괴한 소리로 조용할 시간이 없었다.

“아일라?”

연구실 안에서 진행된 수업 도중에 골똘히 다른 생각에 빠진 아일라는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에 시선을 들었다.

“무슨 문제 있어요?”

외부와 교류가 없던 아일라와 나이가 지긋한 마법사들 사이에만 있던 알렉스는 또래 친구를 만난 것이 서로가 처음이었기에 수업 동안 금방 친해졌다.

연구실에서 만난 알렉스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깨끗하고, 단정해 보였다. 그 주변에서 향기도 나는 것을 보아선 향수도 뿌린 듯했다.

“사장님이 어제 출근을 하지 않으셨어요.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요?”

아일라는 만일 오필리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자신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레니에 후작 부인은 적이 생기면 그 적이 죽을 때까지 집요하고 잔인하게 복수하는 편이었다. 그녀 성격상 오필리아를 그냥 놔둘 리는 없을 터. 아일라는 지난 세월로 후작 부인이 어떤 짓을 할지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어제부터 잠을 설친 상태였다. 음울한 아일라의 표정을 본 알렉스가 간략한 정황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오늘 수업도 이걸로 끝났으니까 한번 백작저에 사장님의 안부를 확인하러 가 보는 건 어때요?”

“…연락도 없이 가도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아일라 또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괜히 연락도 없이 방문했다가 민폐를 끼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었다. 오필리아에게 다른 사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녀가 손만 꼼지락거리며 눈을 굴리고 있을 때, 알렉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말했다.

“마탑주님한테 물어보는 건?”

“네?”

“사장님에 대한 걸 마탑주님이 모르실 리가 없으니까요.”

알렉스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그의 말에 아일라가 고민하는 사이, 알렉스는 이미 연구실을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수업이 끝난 그는 이 연구실에 남아 연구를 계속해야 했다. 그의 표정은 이 연구실만 나갈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오필리아의 안부가 궁금했던 아일라도 이내 그를 따라 엘렌이 있다는 마탑의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여기에 사람이 있을까요?”

꼭대기 층에 있는 방은 하나였다. 방문에는 거미줄과 몇몇 다리 많은 벌레들이 사사삭거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방문을 본 아일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의문을 품었다.

“하하… 마탑주님은 혼자 계시는 걸 좋아해서 그래요. 꽤 짓궂은 분이죠.”

그 대답에 아일라는 서둘러 오필리아의 안부를 묻기 위해 거미줄이 쳐진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아니, 올리려고 했다.

“안 돼!”

깜짝 놀란 알렉스가 아일라의 손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그러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그가 ‘헉!’ 소리를 내며 황급히 손을 떼었다.

“그, 그게 함정이 있을 수도 있어서.”

그의 귓가가 새빨갛게 물들었으나 아일라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오필리아의 안부를 어떻게 알아내야 할지 다른 방식을 고민하고 있었다.

주문을 외운 알렉스는 방문 손잡이에 물을 뿌렸다. 물이 손잡이에 닿자마자 그곳에 전기 스파크가 파지직! 하고 튀었다. 어느 누구라도 이 손잡이를 잡는 순간, 황천길 급행열차에 탑승할 수 있을 듯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잡으면 죽을 것 같네요. 이를 어떡하지….”

알렉스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일라가 입을 열었다.

“알렉스, 괜찮아요.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저는 연구실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이 손잡이를 잡고 말죠.”

알렉스의 말에 아일라는 농담을 들은 듯 웃으려다가 그의 표정에서 진심을 읽고 미소를 슬그머니 감추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사장님은 아일라를 아끼는 모양이던데 걱정되어서 방문했다고 하면 반기시지 않을까요?”

“……그래도 그분의 호의를 이용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의 의중을 알아차린 알렉스는 밝게 웃으며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그러면 수업 때문에 의논할 게 있다고 가면 되죠.”

“수업이요?”

“음… 예를 들어 아일라 양의 수업 진도가 너무 빨라서 다른 방식으로 수업을 해야 할 것 같다거나? 이를테면 야외수업이라든지.”

개인적인 사심이 보이는 구실이었다. 어떻게든 연구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에게 아일라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슬쩍 품에서 쪽지 한 장을 꺼냈다. 그 쪽지를 본 알렉스는 중얼거렸다.

“주소…?”

“사실은 사장님의 집 위치를 아는 손님에게 받은 주소예요.”

그 손님이 에르도안 공작이라는 건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마탑의 마차를 빌린 그들은 머지않아 마르그리트 백작저에 도착했다. 문제는 그 뒤에 벌어졌다. 두 사람은 백작의 정문 앞에서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둘 사이의 정적을 깬 쪽은 알렉스였다.

“여기가…… 백작저?”

아까부터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아일라의 안색은 점차 환자처럼 창백하게 물들었다. 정문으로 있었을 철문이 누군가에 의해 잔인하게 박살이 나 있었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는 생각에 그녀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알렉스가 그런 그녀를 알아차리고 지탱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이미 흙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아직 모르는 일이잖아요. 여기가 사장님 저택이라는 보장도 없고, 아니면 다른 일로 철문이 망가졌을 수도 있는 일이니…….”

알렉스는 말하면서도 자신의 말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말을 흐렸다. 알렉스의 품에서 벗어난 아일라가 잘린 철문의 단면을 쓸어 만지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대체 어떤 일이 벌어져야 이런 철문이 종이처럼 잘릴 수 있는 걸까요.”

긴 은색 속눈썹은 불안감에 잘게 떨리고 있었다.

“나, 나 때문이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제가 그때 조용히 따라갔어야 했는데….”

이 망가진 철문이 오필리아도 되는 듯 아일라는 철문을 붙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알렉스는 그녀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식은땀을 흘리며 난감해하다가 마침 정문 앞을 지나던, 하인으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불렀다.

“저기요!”

“……?”

“호, 혹시 여기가 마르그리트 백작 가문의 저택이 맞나요?”

알렉스가 그를 붙잡고 말했다. 남색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남자는 훤칠하고 단정한 차림새였다. 옷도 가문의 하인이라고 하기엔 꽤 고급스러운 느낌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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