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11화 (12/124)

11화

그녀의 말에 직원들은 더욱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일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콧방귀를 내뱉으며 마녀, 라고 말했던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마녀가 누구죠?”

“영애께서 상관하실 바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뇨, 상관있어요. 자기 일조차 제대로 못 해서 꾸지람 좀 들었다고 사장님을 헐뜯는 사람이랑 앞으로 어떻게 같이 일을 하겠어요? 나 혼자 하는 게 낫지.”

“뭐요?!”

아일라는 유난히 발끈하는 직원의 얼굴을 확인했다. 주근깨가 빼곡히 박힌 남자였다.

“보자 보자 하니까….”

“보자 보자 하면요?”

“…….”

아일라는 남자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 움직임에 몸을 움찔한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쳤다.

그러나 곧 그는 자신보다 작은 상대에게 잠시 겁을 먹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 더욱 큰소리 냈다. 아니, 내려고 했다. 그가 목청에 주었던 힘은 불청객에 의해 허무하게 흩어졌다.

“……!!”

남자는 입을 벌린 채 얼어붙어 있었다. 그 모습에 아일라가 의아함을 느끼기도 잠시, 그녀 또한 등 뒤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뒤를 돌았다.

리카르도 에르도안.

그는 당장이라도 사지를 절단낼 것처럼 살기 어린 눈빛으로 아일라와 싸우고 있던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불살라 버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와 어울리지 않게 손에는 선물 상자 비슷한 걸 들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발검하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아나?”

그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답을 원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가 서늘한 얼굴로 주근깨남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송장이라도 나온다면.”

“그녀에게 미움을 살 테니까.”

아일라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하며 직원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반면 직원들은 그 의미를 이해했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홀로 아일라는 연신 어리둥절한 얼굴로 상황을 관망했다.

‘직원이 죽으면 오필리아가 슬퍼한다는 의미인가?’

그게 당연한 생각의 흐름이었다.

동시에 오필리아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자와 알지 못한 자의 생각 차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얼마나 사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돈벌ㄹ…… 여기까지 하자.

아일라도 다만 눈치껏 한 가지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곳만 아니면 저 주근깨 남자의 신변은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

리카르도는 빨간 리본이 귀엽게 달린 노란 박스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오필리아가 오면 건네주도록.”

그렇게 그는 자리를 떴다. 아일라는 이제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밤길… 조심하셔야겠어요.”

그녀는 부러 걱정스러운 듯 주근깨남에게 말했다. 그 한마디의 효과는 굉장했다. 그는 황급히 사원증을 벗더니 옆에 있는 상관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저, 저. 오, 오, 오늘. 회. 회사.”

“그만두신다네요.”

아일라는 친절히 겁먹은 직원을 위해 뒷말을 이어주었다. 그에게 베푸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배려였다.

* * *

“회사를 그만둬?”

“예. 사장님.”

나는 아침부터 비어 있는 한 자리를 물끄러미 보았다. 저긴 그 주근깨가 얼굴 가득 있던 남자 직원의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 자리 옆에 아일라가 서서 수줍게 볼을 붉히며 웃고 있었다.

“음, 서 있지 말고 거기 앉아요.”

이걸 과연 기막힌 타이밍이라고 해야 할지…….

아일라가 고용계약서를 들고 오고 머지않아 꽉 찼던 책상 하나가 공석이 되어 버렸다.

“네! 사장님!”

내 말에 밝게 대답한 아일라는 기다렸다는 듯 퇴사한 직원의 자리에 미리 준비한 손수건을 의자에 깔고 앉았다.

원작을 떠올린 나는 그걸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가늠이 안 되었다.

……뭐 조금 길을 돌아가는 것뿐이니까.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그 계약서 무효요!’라고 면전에 말하지도 못하지.

나는 책상 정리를 하는 아일라에게 말했다.

“잠시 절 따라오세요.”

“네!”

대답과 동시에 쫄래쫄래 내 뒤를 쫓아 따라오기 시작하는 아일라의 모습이 마치 어미 닭을 쫓는 병아리 같았다.

사장 사무실로 들어온 나와 아일라는 내실에 단둘이 남았다.

나는 어제 엘렌과의 대화에서 도출한 아주 좋은 방법을 실전에 옮길 때가 지금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았다. 이름 하야,

‘직원과 손님 사이에 움트는 풋풋하고 설레는 로맨스 스토리!’

와, 내가 생각해 냈지만 걸작이야. 걸작. 벌써 서점 메인에 걸려서 백만 부 찍었네.

확실히 면전에서 계약서가 오가고 사랑에 빠지는 원작 소설보단 이쪽이 훨씬 개연성 있고 낭만이 살아 있었다.

리카르도, 네가 그렇게 원하던 낭만이란다.

이젠 남주에게 지긋지긋한 그놈의 낭만이 대체 뭔지, 멱살을 탈탈 털어서라도 묻고 싶었다.

“아일라. 어젠 좋은 하루 보냈나요?”

“네, 사장님은요?”

“아, 사장…”

그래, 이젠 내 비서가 될 건데 사장님이라는 말이 입에 익는 게 구색을 갖추는 데 낫겠지.

‘그래봤자 리카르도랑 눈맞고 금방 여길 떠나겠지만.’

“아일라, 정말 여기서 일하고 싶은 게 맞아요?”

“네…….”

아일라가 토끼 같은 얼굴로 소심하게 대답했다.

내 눈치를 보는 그녀를 보니 안타까움이 커져 재빨리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제 비서가 되어줄 수 있나요?”

그렇게 내 제안을 아주 기쁜 듯이 흔쾌히 받아들인 아일라는 그 뒤로 성실히 본인 일에 임했다.

차라리 회사를 그만둔 직원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그락.

나는 옆에서 커피를 타고 있는 아일라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제 손으로 직접 커피를 타는 건 처음인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거름망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고민하고 있었다.

“아일라, 잠깐 이리와 보세요.”

“네, 사장님!”

내 부름에 아일라가 방긋 웃으며 반짝이는 은색 머리칼을 살랑이곤 다가왔다.

비서가 된 아일라 또한 햇살처럼 밝고 화사했지만, 명색이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옷이며 구두가 너무 낡고 해져 있었다.

그녀가 후작 가문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굳세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란 어려운 법이었다. 그녀도 결국 레니에 후작의 영애였으니까.

밖에 돌아다닐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잠깐 상상했을 뿐인데, 기분이 삽시간에 구려졌다.

계약서에 사인을 한 리카르도가 그녀에게 품위 유지비로 얼마나 큰 거액을 건넬지, 미래를 알고 있었던 나는 첫 내담 때와 같은 모습으로 그녀를 다시 보게 되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아일라가 고용계약서를 들고 왔다는 건 리카르도와 아일라가 잘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받아야 할 품위 유지비도 없다는 이야기.

“아일라, 내일 일 끝나고 시간 좀 낼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녀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설레 보이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본 나는 착잡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

이유도 묻지 않고 마냥 좋아하는 게 보기만 해도 귀여웠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 표정을 리카르도 앞에서 지어야지, 왜 내 앞에서 짓고 있나.

지금 당장이라도 옷이랑 구두를 때깔 고운 걸로 갈아 입히고 싶었지만, 오늘은 백작저에 에르도안 공작이 방문하는 날이었다.

‘뭘 사서 입혀야 하지?’

전생에 학창시절 또래 친구들이 옷 입히기 게임을 무슨 재미로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아일라를 보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참, 사장님.”

아일라가 ‘잠시만, 어딜 다녀올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려나 싶어 아일라가 서툴게 탄 커피를 홀짝이며 맛을 음미했다.

“켁.”

이게 뭔 맛이야!

‘이거 꽤 비싼 원두였는데….’

그 원두에서 이런 맛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아일라, 앞으로 커피는 내가 탈게요.

유감스럽게도 주인공 버프 중에 커피 타는 능력은 없는 모양이다.

나는 슬쩍 아일라가 오는지 문을 열어 살핀 후, 다실에 재빨리 들어가 싱크대에 커피를 버렸다.

먹는 걸 버리면 천벌 받는다는데 이 커피를 마실 바엔 그냥 천벌을 받고 말란다.

내 손으로 다시 커피를 뽑고 있을 때, 사무실로 들어온 그녀는 빨간 리본이 달린 상자를 나에게 건넸다.

“짜잔! 사장님께 온 선물이에요! 커피는 벌써 다 드셨나요?”

“아, 네. 맛있는 커피였어요. 그런데 선물이라뇨?”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한 나는 아일라가 건넨 선물을 받았다.

선물을 개봉한 나는 어머, 짧게 감탄했다. 내가 좋아하는 고급 홍차였다.

평소엔 피곤에 절어 커피를 자주 마시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차는 홍차였다.

이게 얼마 만의 홍차람.

나는 기분 좋은 내색을 감추지 않으며 찻잎 향을 맡았다.

‘크으. 이거지. 이거!’

향기만 맡았는데도 굉장히 고급지고 독특했다. 첫 향은 달콤쌉싸름한데 맡으면 맡을수록 묘하게 청량하고 시원한 향이 콧속을 휘감았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는 홍차의 종류는 아니었다.

공작가에 있을 때 입에 홍차만 달고 살았던 내가 모르는 홍차라는 건 아주 희귀한 것일 테니까.

이런 센스 있는 선물은 누가 준 걸까?

노란색 포장지는 영 별로였지만, 선물은 내용물이 중요한 거랬다.

선물은 마음이 아니냐고? 그건 일단 나한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소리였다.

음, 이건 너무 속물 같은데.

“사장님은 홍차 좋아하세요?”

“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차가 홍차예요.”

나는 홍차가 든 선물 상자에 코를 묻을 듯하면서 물었다.

“아일라는 홍차 좋아해요?”

“그렇다면…… 아, 네!”

내 대답에 그녀는 약간 어색한 얼굴로 뒤늦게 대답했다.

나는 아일라의 모습에 그녀가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 눈치챘다.

아일라는 아마 홍차를 마셔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사실 저번에 예약했던 찻집에서 마신 홍차가 그녀에게 처음 마신 홍차였을 수도 있었다.

여기서 홍차는 서민이 구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닌, 사치품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후작 가문의 식구들이나 시집을 갔었던 수전노인 노귀족이 그녀에게 홍차 같은 사치품을 마시게 해 주었을 리가 없었다.

“마침 잘 되었네요. 같이 시음해 볼까요? 꽤 귀한 홍차 같은데 아일라 입맛에도 맞았으면 좋겠네요.”

이럴 땐 동정할 시간에 맛있는 거나 먹이는 게 효율적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