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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7화 (8/124)

7화

이 정도 거짓말은 서로 죽고 못 사는 부부의 앞날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리라.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한 내 거짓말에 리카르도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가엾으신 영애를 위해서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실 생각은 정녕 없으신가요?”

“…2년밖에 살지 못하는데 애는 어떻게 낳는다는 거지?”

‘제길.’

나는 속으로 멍청히 내뱉은 변명을 탓하며 말했다.

“그게… 애를 낳는 것과는 관련이 없는 병이라…….”

와, 진짜 개망했다. 그 말이 입술 끝까지 차올랐다가 내려갔다.

“재고해 보지.”

그래도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난 재고라는 애매한 대답을 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가 자리에 일어나려는 걸 보고 나도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그의 앞길을 막았다.

“아주 잠깐이면 돼요!”

“오필리아 마르그리트.”

그가 내 이름을 차가운 저음으로 읊조렸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남자주인공의 심기를 꽤 거스른 모양이었다.

‘이런.’

가슴 한쪽이 선득해졌으나 내색하지 않고 나는 뻔뻔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제가 이런 부탁을 드릴 날은 두 번 오지 않으리라 장담합니다. 공작님.”

삐딱하게 선 그는 성가시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 행동마저 중압감을 주는 모습에 한낱 엑스트라에 불과한 나는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나면 영영 주인공들은 못 만날 수도 있었다.

……그럼 내 항만 지분은?

“…그래. 그렇게 애걸복걸하는데 한 번 만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순조롭게 잘 풀려가는 듯했다.

* * *

“왜 그렇게 꽁한 얼굴로 계시는 겁니까? 혹시 이번에도 차이셨습니까?”

펠릭스는 사택에 돌아온 이후 말이 없는 리카르도를 보며 말했다.

리카르도는 그런 그를 잠시 쳐다볼 뿐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부정하지 않는 그에게 펠릭스는 기쁜 내색을 표하지 않으려고 입꼬리를 억눌렀다.

‘진짜 차이셨구나!’

공작님의 성격상, 그가 오필리아 마르그리트에게 직접 마음을 고백해 차였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그와 맥락이 비슷한 일이 있었겠지.

펠릭스의 추측은 가히 점쟁이라 해도 될 수준으로 정확했다. 그러나 보좌관의 말에도 리카르도는 그저 조용히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르그리트 백작.’

드디어 이야기를 꺼냈고, 일주일 뒤면 만날 수 있었다. 어떤 놈인지는 그가 직접 볼 생각이었다. 그녀의 배우자감으로 부적절하다 싶으면….

이야기를 들은 펠릭스가 말했다.

“부적절하다 싶으시면 해치우실 겁니까? 소리 소문 없이? 쓱싹?”

펠릭스가 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되물었다.

“글쎄.”

“공작님. 글쎄라뇨.”

펠릭스는 희게 질린 얼굴을 했다. 공작님이 최소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도리까지 잊어버리셨다니!

“나도 오필리아의 원망을 사고 싶진 않다.”

“원망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건 구약성서에도 나옵니다.”

독실한 종교 집안에서 태어난 펠릭스는 성경에 빗대어 살인에 대한 부조리함을 연설했지만, 공작의 눈을 보고 자신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신이시여. 비록 공작님이 지금 눈에 마가 끼어 부덕한 마음을 품고 있으나, 자애로운 마음으로 참회의 기회를 주신다면 다시 새사람이 되어…….”

“참회를 해야 되는 건 내가 아니라 마르그리트 백작이다.”

“예?”

공작의 말에 펠릭스가 하던 말을 멈추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어느 남편이 아내가 자신으로 인해 욕을 보고 있는데 가만히 있지?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가 없군.”

‘저는 공작님이 이해가 안 됩니다.’

펠릭스는 그 말을 속으로 꾹 누르고, 공작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도 그는 마르그리트 백작과 그의 부인인 오필리아 사이에 얽힌 소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세상 밖으로 두문불출하고 있는 마르그리트 백작에 얽힌 소문은 여러 가지였다.

반신불수라 움직일 수 없어 집 밖에 나오지 못한다. 얼굴에 커다란 화상 자국이 있어 가면을 쓰고 있다.

그가 백작저에서 두문불출하는 이유로 생긴 소문들이었다.

“그 때문에 오필리아가 오명을 썼지. 그런 사람과 결혼한 이유는 그녀에게도 큰 흠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마르그리트 백작의 사업 수완이 좋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펠릭스의 말에 리카르도가 코웃음을 쳤다. 사업 수완이 좋은 건 그가 아닌 그녀, 오필리아 마르그리트였다.

1년간 그녀를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래서 리카르도에게 그저 백작은 오필리아에게 기생하는 후안무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공작님…….”

그런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살벌하게 눈을 빛내는 공작님을 보며 펠릭스는 탄식했다. 마르그리트 백작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 * *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흘렀다. 아일라에게 직원을 보내 내일 일정에 대해 알려 준 나는 시가지에 마련해 둔 저택으로 돌아왔다.

마르그리트 저택은 카시어스 성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혼자 살기엔 나무랄 데가 없었다.

사실 당장 회사 직원들을 전부 불러 저택에 묵게 해도 방이 남을 크기라, 혼자 살기에 넓다면 넓다고 할 수 있지.

무릇 사람은 집만큼은 널찍한 곳에서 살아야 마음도 넓어진다고 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도 사용하는 방의 개수에 비해 너무도 호화스러운 방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하물며 표면상으론 백작이랑 백작 부인이 머무는 저택인데 협소하면 그게 외려 더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돈도 없이 커다란 저택만 덜렁 산다면, 고용인을 부리는 비용이며 관리 비용이며 여러모로 난감해지지만…… 난 그만한 돈이 있는걸? 돈 만세!

“어휴, 나도 참 중증이다.”

내 집만 봐도 돈에 대한 찬가가 튀어나오는 걸 보면 상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었다.

이 순간만큼은 누가 내 마음을 읽는다면 날 돈벌레라 불러도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누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순간 내 옆에 있는 집사한테 반쯤 죽을 각오를 해야겠지만.

“마님, 오늘은 무탈하셨습니까?”

“그럼. 조금 피곤한 일이 생기긴 했지만, 내가 잘 해결했어.”

“역시 마님이세요!”

내 말에 마중 나와 있던 하인과 하녀들이 줄줄이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 주인에 그 하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그들은 내가 주는 보너스나 월급 인상으로 나에게 충성했다.

내가 칭찬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 그들은 나에 대해 칭찬할 건수가 있으면 가리지 않고 막 뱉었다.

가끔 아무 말 대잔치일 때도 있지만…… 뭐 어때.

역시 현금 만능주의는 틀린 게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회사에선 고객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진이 빠지는데 집에서 그럴 필요는 없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 참, 일주일 뒤에 손님 올 거야. 그리고 백작님도 오실 거고.”

내 말에 고용인들은 손에 들고 있던 대걸레와 걸레들을 멍한 얼굴로 떨어뜨리며 입을 벌렸다.

그대로 침이라도 흘릴 듯한 모습에 당황한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다들 왜 그래?”

집사인 리온마저 놀라서 굳어 있었다.

“배, 백작님이요?”

“설마 주인님이요?”

“그럼 누구겠니?”

그러자 하인과 하녀들은 더욱 표정이 뜨악하게 변했다. 이게 이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5년 전, 나는 마르그리트 백작과 결혼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들은 한 번도 백작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볼 수 있을 리가 없지.’

마르그리트 백작은 서류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이니까.

자칭 ‘고상한’ 귀족들은 아무래도 귀족이 운영하는 결혼 업체를 선호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작위는 황실에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을 헌납해서 얻어내었다.

이곳 사용인에겐 나와 남편이 사업차 멀리 살고 있다고 핑계를 대었다. 그러나 남편과 연락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사용인들 사이엔 우리의 사이가 좋지 않아 별거한 모양새로 이야기가 흘러가 버렸다.

이미 다른 일들만으로도 바빠 그들이 생각하는 모양대로 내버려 두긴 했지만, 그 여파로 놀라움이 배가된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들린다는 것도 모른 채 자신들끼리 속닥거리고 있었다.

“너는 백작님의 얼굴 본 적 있어?”

“아니, 나도 본 적 없어.”

“뭐? 넌 여기서 5년 동안 일했잖아.”

“큼, 큼.”

리온이 헛기침을 하자, 그제야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하인과 하녀는 허리를 굽히며 연신 사죄를 했다. 나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내심 놀라고 있었다.

‘벌써 5년이나 되었던가?’

5년.

이제 그들이 놀란 이유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에르도안 공작님도 오실 거니까 준비는 흠 없이 하고. 알겠지?”

“네.”

사실 저택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건 처음이다.

평상시와 다른 새로운 일에 그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마저 공작님이 손님으로 온다는 소식보다 주인이 온다는 사실에 더 놀란 눈치였다.

아니, 너희들은 백작에 대해 신경 쓸 게 아니라 공작님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한다니까…….

왠지 주객전도가 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집사를 포함해 백작의 존재가 사실은 허상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괜히 아는 사람이 생기다간 밖으로 이야기가 새어 나가기 십상이니.

나는 그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이런 얘기가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분명 카시어스 공작인 아버지한테도 닿을 것이었다.

그러면 이를 이상하게 여긴 그가 이곳에 이목을 집중하는 것은 그리 먼 미래가 아닐 터.

‘이제 와선 별로 찾고 싶지도 않으시겠지만.’

늘 고지식하고 화만 냈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자 가슴 깊은 곳에서 짜증과 원망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내 뒤끝이 얼마나 긴지 딱히 알고 싶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로 인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 짜증이 났다.

한편, 내 통보에 하인과 하녀들이 눈알을 굴리며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을 때 집사 리온이 나에게 다가왔다.

“마님.”

“응?”

“주인님이랑 에르도안 공작님에 대해 숙지해야 할 사항이나 챙길 것이 있습니까? 이를테면 특정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나 병력이 있으신지.”

“잠시만.”

나는 그의 세심한 질문에 곰곰이 고민했다. 내 일만 바빠 그런 것까진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역시 리온은 유능한 집사였다. 다른 귀족 가의 스콰이어였던 그는 검에 대한 재능은 있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이 길을 선택했는데 그건 좋은 판단이었다.

“공작님의 커피는 만프레도 지역 커피로 하면 되고… 음식은 육류 위주로 준비하면 될 거야.”

내가 그렇게 에르도안 공작의 식성에 대해 줄줄 말하자 리온은 품에 있던 종이를 꺼내 정갈히 메모하기 시작했다.

“백작님에 대해선….”

리온이 쭈뼛쭈뼛 입을 열었다. 웬일로 소심히 말을 흐리는 그의 모습에 시선을 돌리자, 그도 다른 하인들과 표정이 다를 게 없었다.

아니, 누가 알면 내 역린이 마르그리트 백작인 줄 알겠네.

‘그러고 보니 백작을 누구로 세워야 할지 대책을 세워놓지 않았네.’

그 역시도 돈으로 고용하면 되겠지.

사업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야 리카르도와의 만남에서 좋은 결실을 볼 확률이 올라가니까. 외모는 적당히 호감형으로 생긴 사람으로…… 일단 무조건 엘렌은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마님?”

“아.”

내가 깊이 생각에 빠져 있자 리온이 나를 불렀다. 나는 그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말했다.

“똑같이 준비하면 돼.”

이 세상에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어? 아니, 혹시 모르니까 조건에 채식주의자가 아닌 것도 넣자…….

-날 안 데리고 가면 후회할지도 몰라. 오필.

저번에 엘렌이 말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내 알 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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