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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2화 (3/124)

2화

물론 후계 생산……과 같은 민감하고 사적인 얘기는 절대 비밀 보장을 약속하지만, 그래도 후계자가 걸린 중대사인 만큼 암암리에 ‘특징: 밤에도 지치지 않는 체력’ 따위로 간접적으로 에둘러 후사 능력에 이상이 없음을 표시한다.

만일 리카르도가 이 파일에 있다면 저 특징은 굵직하게 볼드체로 쓰여 명시될 것이 분명….

“큼큼.”

착한 생각. 착한 생각. 악귀야 물러나라! 나는 헛기침을 하며 얼른 그에게 파일을 건네었다.

‘남주한테 통찰 능력 같은 건 없어서 망정이지.’

만일 엘렌처럼 통찰 능력이 있었다면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창문을 깨고 뛰어내렸을 것이다. 3층이지만 건물 높이가 꽤 있으니 고통 없이 가겠지.

한편, 내 삿된 상상을 모르는 리카르도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얼굴로 내가 건넨 파일을 받았다.

파일을 건네받는 손마디는 검을 오래 잡은 검사라는 것을 말하듯 굵고 강건했다.

미려한 그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투박하고 거친 손이었다.

얼마나 많은 수련을 했을지 보이는 흔적이었다.

‘남자주인공이라는 것도 힘들겠네.’

그와 같은 소소한 감상을 하고 있는 사이, 그는 파일을 펼쳐 리스트를 훑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커피 하나를 들고 신문을 들었다. 물론 시선은 리카르도를 향하고 있었지만.

* * *

오늘 유독 처량 맞아 보이는 리스트 파일을 보며 나는 혀를 끌끌 찼다.

리카르도는 그렇게 커피만 마시다가 자리를 떴다. 여기가 회사인지 다방인지, 참.

‘그래, 여주가 아니면 안 된다 이거지.’

살다 살다 남주가 답정너 같은 짓을 하는 걸 하루도 아니고 1년씩이나 보게 될 줄은 몰랐던 나는 조금은 질린 기분으로 아까 보던 신문을 마저 보았다.

<안셀모 황태자, 이번엔 코르넬리 영애와 밀회.>

익숙한 헤드라인이었다. 황태자는 고티에 제국의 황녀와 혼인을 하고 난 후, 이른 결혼에 반항이라도 하듯 온갖 염문설을 퍼트렸다.

풍성한 붉은 머리를 허리께까지 늘여 트려 매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코르넬리 영애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녀를 보며 ‘흐음.’ 콧소리를 흘렸다. 내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다음 내담자가 코르넬리 영애였다.

대충 코르넬리가 영애가 왜 오늘 상담을 신청했는지 알만하네.

코르넬리 영애는 아마도 황태자와 염문으로 올라간 자신의 결혼 점수를 살피러 상담을 신청했을 것이다.

황태자와 염문이 터진다면 귀족 영애는 결혼 시장에서 후한 점수를 받는다.

‘보석도 귀한 분의 관심을 받으면 그만큼 값어치가 올라가니까.’

어떤 유명한 마담이 한 말이었다.

사람을 상품에 비유한다는 것이 거지 같았지만, 이게 제국에서 여자를 보는 시선이었다.

신문을 다음 장으로 넘긴 내 시선이 어느 한곳에 머물렀다.

등골에 묘한 전율이 흘렀다.

아주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레니에 영애, 갑작스러운 출가 선언과 함께 행방불명>

아일라 레니에.

이 세계의 여주인공이자,

리카르도와 계약 결혼을 하게 될 여인.

내가 일하는 사이, 소설의 서막은 이미 올라가고 있었다. 소설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그 후작 영애의 계약 결혼>의 주인공 아일라 레니에.

제목 그대로 그녀는 후작가의 영애였지만, 차라리 평민으로 태어나는 게 나았을 정도로 힘든 생을 살았다.

레니에 후작가에서 태어난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는다.

그것이 지옥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났다는 소문 속에 방치되어 사랑도 보살핌도 없이 자라게 된다.

그런 그녀가 몇 살 되지도 않아, 후작가에는 새로운 식구가 생긴다.

클로에 레니에. 그녀의 새어머니이자, 그녀를 더 깊은 지옥으로 밀어 넣을 조연.

그녀가 들어오자 아일라의 인생은 핍박과 방치의 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후작 부인의 친자식인 의붓형제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후작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음에도 방관했다.

원래 그는 아일라가 태어날 때부터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전 후작 부인이 그녀를 낳다가 죽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에 자기편은 하나도 없던 아일라 레니에는 결국 팔려가듯 늙은 귀족에게 시집을 가고 비참한 여생을 살다가 죽는다.

그리고 회귀.

회귀한 그녀는 끝내 놓지 못했던 가족의 끈을 한 번의 죽음을 겪고 놓아 버린다.

돌아온 그녀에게 남은 것은 하나, 전생의 기억.

그녀는 회귀 전의 기억에 의존해 가장 효과적으로 호적을 분리할 방법을 모색하고, 결혼 업체에 발길을 옮긴다.

소설에선 그녀가 선택한 결혼 업체가 이곳이라는 언급은 없었지만, 아마도 맞을 것이다.

제도 내에서 결혼 업체라고 한다면 바로 떠올리는 곳이 <허니문>이니까.

내가 세운 회사가 소설에서 그런 큰 경사를 맡는 게 영광이라 해야 할지.

5년 동안 갈고닦은 회사가 주인공들 로맨스를 위해 일회성 도구처럼 사용되어 사라지는 것에 어이없음을 느껴야 할지.

양립하는 생각의 저울추가 이리저리 기울였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주인공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게 내 역할이란 것이었다.

책 한 줄, ‘리카르도와 아일라는 중매상에 의해 만나게 되었다.’ 따위의 간접적인 언급으로 나오는 엑스트라에 불과한 오필리아 마르그리트.

그런데 엑스트라치곤 배경이 조금 빵빵했다.

……그리고 그런 빵빵한 배경을 걷어찬 게 바로 나였다.

자존심에 죽고 자존심에 사는 성격은 전생부터 이어온지라 난 내 삶의 굴곡을 스스로 만들기 이르렀다.

“벌써 7년이 흘렀네…….”

가문에서 출가한 지도 벌써 7년.

여기까지 들으면 ‘너도 설마 여주랑 같은 일을 당했…?’라는 말을 하겠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옛말은 틀린 게 없다.

일단 들어보라. 나는 출가 이유부터 그녀와는 완전히 달랐다.

7년 전, 그날.

정적만 흐르던 삭막한 집안에 때아닌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귀청을 아프게 때렸다.

태어난 아기는 사내아이였다. 그 때문에 힘이 남아도는지, 아기는 울음을 그칠 기미가 안 보였다.

갓 태어난 아이가 응애, 하고 우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러나 나는 그걸 너그럽게 넘길 상황이 아니었다.

이 아이의 존재로 인해 내 인생은 송두리째 틀어져 버렸으니까.

“로위나! 기뻐해야 할 일에 넌 왜 이리 이기적으로 구느냐?”

동생이 태어난 날, 아버지는 따로 집무실에 나를 불러 다그쳤다.

“하지만, 저한테 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카시어스의 자랑이 되라고.”

“그래, 그런데 그건 네 동생이 없을 때 얘기지! 어째 이런 날까지 철없이 어린애처럼 굴려고 하느냐.”

내 아버지란 사람은 그저 독선가에 불과했다. 그걸 18년이라는 세월로 잘 알고 있었음에도, 왜 나는 새삼스럽게 이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몰랐다.

“좋은 혼처를 알아봐 줄 테니 섭섭히 생각 말고 옆에서 어머니를 잘 돌보거라.”

“하하…….”

위로는 듣지 못하더라도,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여태까지 노력한 게 좋은 혼처를 얻기 위함이었나?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흘렸다.

“그럼 진작 다른 방계에 있는 남자애를 데려오지 그러셨어요?”

“허참, 방계 따위를 후계에 올리란 말이냐?!”

내 말에 금방 열을 올린 아버지는 본심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철딱서니 없는 말 그만하고, 현실을 생각하거라. 로위나 카시어스.”

나는 눈물을 삼키고 회복실에 있는 어머니에게 찾아갔다. 위로를 받을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었다.

그러자 작고 조막만 한 아이를 안고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누워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동생을 안고 누워 있는 산모의 모습은 얘기를 들은 것처럼 아름답진 않았다.

그러나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하고 애틋한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두고 후계 얘기를 하며 울분을 터트리기엔 무리라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와 똑같은 말을 할 것이란 걸.

‘그럼 나는, 지난 18년 동안 가문의 후계자로서 키워진 내 시간은 어디에서 보상을 받아야 하는 거지?’

자랑스러운 카시어스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으며 강박적으로 후계 수업에 임했던 나는?

꼴에 나도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생각에, 후계자로서 책이 잡히는 일이 없도록 안 한 노력이 없었다.

그때 와선 다 부질없는 일이었음을 깨닫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날 밤, 동생에게 후계위를 인계한다는 각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나는 가문을 홀연히 나왔다.

아일라와 달리 가문에 출가 선언도 안 하고 나온 나는 곧바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필리아, 라는 이름으로.

이쯤 되면 수많은 내담자 중 한 명쯤은 내 얼굴을 알아볼 법도 하지 않는가, 싶은 의문이 생기겠지만 놀랍게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데뷔탕트도 치르지 않은 상태였으며, 그전에는 바쁜 후계 수업 때문에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어 외부 약속도 마다해 왕래하는 사람은 친구인 엘렌 빼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기존 카시어스 가문에 왕래가 잦아 날 알아볼 것 같은 사람은 미리 상담 예약이 꽉 찼다는 이유로 다른 직원에게 상담을 미루거나, 드롭시켰다.

이렇듯 난 가문의 도움 없이도 나 혼자 벌고 먹는 길을 마련했다.

물론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초기 자본금은 아버지의 금고를 조금 털어 마련했지만. 나는 지금 내 삶에 무척 만족했다.

간간이 신문에 나에 대한 이야기가 실리기도 한다.

<카시어스 공작 영애의 행방은 어디에?>

“그래, 어차피 지난 일이지.”

이미 로위나 카시어스는 호사가들 구미에 맞게 외간 남자와 정분이 나서 야반도주한 상태로 이야기가 흘러 있었다.

적어도 공작 가문의 금고를 털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걸 보아선 아버지치곤 꽤 인내했구나, 싶었다.

가끔 이 외간 남자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는 기사가 실리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더 이상 로위나 카시어스가 아닌, 오필리아 마르그리트였다.

귀족의 결혼 사업으로 돈 벌어 먹고살려면 귀족 작위는 필요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평민에게서 결혼 상담을 받고 싶어 하는 귀족들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존재하지도 않는 마르그리트 백작과 위장 결혼을 했다고 서류 위조를 한 상태였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이 세상도 돈이면 해결 안 되는 게 없고 돈이면 모든 일이 간단해진다.

그게 내가 돈을 좋아하는 이유이자 돈을 버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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