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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줄리엣-193화 (190/229)

193화.

*

그 시각, 광산의 입구에서는 이상한 술래잡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삐약!”

“저 용 새끼를 잡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닉스는 줄리엣이 시킨대로 얌전히 입구앞에 앉아 줄리엣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숲속에서 무장한 병사들이 나타나더니, 공작가의 기사들과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닉스는 갸웃하며 가까운 나무로 올라가 몸을 피하려고 했다.

“저기에 있다!”

“꾸륵?”

하지만 낯선 병사들은 눈을 번뜩이며 닉스를 쫓아왔다.

공작가의 기사들은 당황했지만 새끼 용을 발견한 병사들은 그물과 화살을 쏘아 대며 본격적으로 닉스를 쫓기 시작했다.

“우린 저 용만 챙긴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병사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2황자의 사병들이었다.

칼라일 공작가가 수도를 출발한 지 일주일째, 그동안 수도에 떠도는 소문 중에는 '검은 용의 주인이 황좌를 가질 수 있다. 라는 내용의 예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떻게 새어 나간 것인지 몰라도 줄리엣이 황제를 겁박하는 데 써먹었던 가짜 예언서의 내용이 새어 나간 모양이었다.

그 소문을 들은 2황자는 새끼 용이라도 잡아서 마지막 반전을 노려보기로 한 것이다.

“삐약!”

오닉스는 물론이고 공작가의 기사들조차 왜 2황자의 병사들이 튀어나와 포획용 틀을 던져 대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의문의 꼬리잡기가 시작됐다.

“잡아!”

“그쪽으로 갔어!”

오닉스는 그물과 화살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쳤다.

2황자의 병사들은 아기 용을 끈질기게 몰아댔고, 공작가의 기사들은 그 뒤를 쫓았다.

2황자의 병사들은 단단히 작정하고 온 듯 투석 무기를 총동원했다.

쐐액!

기습적으로 사방에서 투망이 날아올 때마다 조금씩 산의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가던 오닉스는 슬슬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요리조리 날아오는 무기를 피하며 인간들을 약 올리는 게 꽤 재밌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간단히 날아서 피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저 귀찮은 날파리들은 질리지도 않고 투석 무기를 던져 댔다.

게다가 처음 생각과는 달리 오닉스는 훌쩍 멀리 날아가 버릴 수도 없었다.

“빡!”

분명 줄리엣이 저기 커다란 동굴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했던 것이다.

얼른 이 귀찮은 날파리들을 따돌리고 줄리엣한테 가야 하는데.

닉스는 마음이 급했다.

사방에서 자꾸 그물과 포획용 틀을 던져 대는 통에 닉스는 본의 아니게 점점 더 광산 입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삐익!”

눈 덮인 높은 산의 바람은 새끼 용도 깜짝 놀랄 만큼 매서웠고, 조금이라도 낮게 날 때마다 아래에서는 그물과 화살 따위가 날아들었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날아오는 화살과 투석 무기들을 요리조리 피하는 건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다.

성질이 난 오닉스는 병사들이 던져 대는 투망을 피해 점점 더 멀리, 높이 올라갔다.

어느덧 높은 산 광산과 광산 입구를 연결하는 나무다리까지 다 다랐지만 지겨운 병사들은 거기까지 따라왔다.

"삐이!”

결국 지치고 짜증이 난 오닉스는 낡은 다리 위에 내려앉았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뒤쫓아온 병사들은 다리의 양쪽에서 새끼 용을 포위했다.

“힘 빼지 말고 순순히 이리 오는 게 좋을 거다!”

이를 드러내고 아르릉거리던 오닉스는 자신이 귀찮은 인간들에게 둘러싸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릉…….”

“자자, 착하지 야옹아!”

히죽거리는 병사들은 위협적인 무기와 그물망을 들이대며 양쪽에서 오닉스에게 접근했다.

신경이 곤두선 오닉스는 양쪽을 동시에 경계하며 몸을 잔뜩 낮췄다.

그때였다.

우드득.

새끼 용의 발아래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

오닉스는 물론이고 조금 전까지 새끼 용을 덮칠 준비를 하던 병사들의 시선도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다리의 양쪽에서 대치하던 아기 용과 2황자의 군사들은 잠시 어색한 침묵을 공유했다.

“꾸륵?”

"아, 안 돼!”

먼저 사태를 이해한 것은 군사들 쪽이었다.

그들은 현재 높은 산과 산을 연결한 나무다리 위에 서 있었고, 공교롭게도 때아닌 한파 때문에 다리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작은 머리를 갸웃하던 오닉스는 이러한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히”

“히이익!"

하지만 자신이 발을 구르는 듯한 시늉을 하자 양쪽 인간들의 얼굴이 희게 질리며 자지러지는 것만은 눈치챘다.

“차…... 착하지?"

“제, 제발 가만히 있어!”

“끼앙?"

병사들과 까마득히 높은 다리를 번갈아 보던 오닉스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까마득한 상공 위.

자신에게는 날개가 있고, 인간들에게는 날개가 없다.

“삐약!”

병사들은 똑똑히 보았다.

동글동글 커다란 호박색 눈이 반으로 접히더니, 새끼 용의 발이 정확히 금이 간 균열 위를 지그시 누르는 것을.

"아…… 안 돼!!"

'돼!’ 비명을 신호 삼아 오닉스는 뒷다리에 체중을 실어 펄쩍 뛰어올랐다.

쩌저적.

굉음과 함께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으아아악!”

“맑!”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무너지는 다리에 매달리는 것과 동시에 오닉스는 날개를 펼치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닉스는 사악하게 끼륵거렸다.

방해꾼들이 깔끔하게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이제 줄리엣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쿠구구궁.

"므양?"

뭔가 심상치 않은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며 공중에서 뒤를 획 돈새끼 용은 당황하고 말았다.

쿠르릉.

새끼 용의 호박색 눈이 화등잔처럼 크게 뜨였다.

풀썩이는 눈사태의 여파가 가라 앉자 곧장 보이는 것은 동굴 입구가 커다란 바윗덩이로 가로막혀 있는 장면이었다.

조금 전 오닉스가 앉아서 줄리 엣을 기다리던 광산의 입구, 바로 그 자리였다.

“삐약!”

애처로운 비명 소리가 눈 덮인 산에 메아리쳤다.

* * *

도망쳤던 2황자와 그 잔당들은 대부분 실종되거나 부상을 입고 붙잡혔다.

하지만 겁에 질린 2황자나 밧줄에 묶인 그의 사병들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산골 마을에는 밤이 오는 것도 빨랐다.

그러나 여기저기 놓인 횃불 덕분에 산 주변은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밝았고, 급히 불려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삑!”

밤새 안절부절 못하며 산맥 주변을 빙빙 맴돌던 새끼 용이 날개를 접고 내려왔다.

오닉스는 앞발로 흙더미를 애타게 긁으며 삐이삐이 구슬프게 울어댔다.

하지만 어린 용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서럽게 울던 오닉스는 도움을 청하듯 간절한 눈으로 인간 남자를 쳐다보았다.

잔인한 밤이었다.

무너져내린 광산은 입구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막막할 정도로 커다란 바위들이 입구를 가로막은 광경을 보고 뒤늦게 달려온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 앞에, 검은 머리의 의남자 하나가 조용히 서 있었다.

“…… 몇 시간째 저러고 계신 겁니까?”

기사들은 칼라일 공작이 걱정스러웠지만 섣불리 그에게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눈치채자마자 엘파사로 달려왔 왔으나 그들은 이미 늦었다.

줄리엣은 이미 지하에 갇힌 다음이었다.

“주군, 전부 제 탓입니다.”

망연히 흙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젊은 기사가 입을 열었다.

“제가, 아가씨를…… 손을……."

줄리엣과 동행했던 주드였다. .

그는 유독 줄리엣을 여동생처럼 허물없이 대하곤 했다.

주드 역시 폐광을 빠져나오는 도중 부상을 입었지만 정신적인 충격 쪽이 더 심각해 보였다.

그러나 레녹스 칼라일은 주드를 다그치기는커녕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서늘한 붉은 눈은 여전히 한 곳에 못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줄리엣을 삼키고 무너져버린 커다란 바위들을 보고 있었다.

급히 불려온 기술자들이 흙을 퍼 나르며 사고 규모를 파악하고 있었다.

“주군.”

영주관에 갔던 부단장 밀란이 돌아와 보고했다.

“마을에 병이 돌아서…… 촌장이 도움을 청하러 왔었답니다.”

밀란은 행정관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전후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줄리엣이 괴혈병에 걸린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마을 사람들의 부탁을 못 이겨 빈 폐광을 둘러보러 왔다가 사고를 당했다.

는.

“....…주군?"

밀란이 자초지종을 요약해 전달하는 내내 칼라일 공작의 눈은 무너진 입구에 고정되어 있어서, 듣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지만.

“저, 공작님.”

그때 먼발치에서 쭈뼛거리던 한 무리의 마을 사람들이 다가왔다.

잊혀진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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