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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줄리엣-147화 (144/229)

147화.

어쩌면 달리아 역시 우연히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다는 직감이 들었다.

'?'

‘대체 목적이 뭐지?'

줄리엣의 친구이자 상단의 마법사인 에셀리드는 달리아가 어쩌면 강력한 마법사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었다.

'어쩌면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게 달리 아일지도 몰라.'

줄리엣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불쑥 물었다.

달리아였다.

“모나드 아가씨는 두려운 게 없으신가요?”

호칭만 해도 그렇다.

'모나드 아가씨'라는 다소 어색한 호칭은 줄리엣이 북부에서 지내던 과거, 성의 사용인들이 그녀를 부르던 호칭이었다.

"두려운 게 왜 없겠어요?"

줄리엣은 싱긋 웃었다.

“저는 겁이 많답니다. 예를 들어…….”

말의 콧잔등을 쓸어 주던 줄리 엣의 손이 말 등에 얹힌 안장으로 옮겨갔다.

“누가 안장 밑에 날카로운 못을 숨겨 두었다거나 했을까 봐 겁나는걸요.”

"......?"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그게 무슨 말뜻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틸먼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조심하세요. 소중한 가족들을 위해서라도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줄리엣은 서늘한 미소로 황후의 시녀를 쳐다보았다.

주변의 사람들이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저, 엘리자베스 양.”

“모나드 백작님은 가까운 친지가 안 계십니다.”

"맞아요. 양친이 오래전에 돌아가셔서요.”

“어머, 그런가요? 전혀 몰랐어요. 제가 사교계의 예법에 어두워서요.”

엘리자베스가 몰랐다는 듯 눈썹을 늘어뜨렸다.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아가씨.

제가 레이디답지 못했어요."

그러자 당사자인 줄리엣 대신 주변의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엘리자베스를 달랬다.

“괜찮아요. 모르는데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요."

“그쯤이야 앞으로 차차 알아 가면 되는 일이지요."

“실수에서 하나씩 배워 나가는 게 레이디다운 일이랍니다.”

“안 그렇습니까, 줄리엣 양?"

싱긋 한 번 웃어 준 줄리엣은 레이디다운 방식으로 대답했다.

투륵!

어느새 말에 올라탄 줄리엣이 고삐를 당기자 말이 모래 바닥을 박차며 구경꾼들에게 모래를 뿌렸던 것이다.

“꺅!”

“모, 모나드 백작!”

“이게 뭐하는……!”

“어머."

줄리엣은 느긋하게 말을 멈춰세운 다음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죄송해요. 제가 승마에 서툴러서.”

“얘기 들으셨습니까?"

“아하, 귀부인들의 승마 코스에서 있었던 일이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무리의 귀족 한량들이 승마 코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연을 만드는 일은 뒷전이고, 그늘에 늘어져 술이나 홀짝대고 있었다.

단연 화제는 황후의 치료사와 모나드 백작의 신경전이었다.

햇빛 아래에서 엘리자베스 틸먼은 흠잡을 데 없이 발랄한 귀족아가씨처럼 보였다. 밝고 애교스러웠다.

“모처럼만에 황궁에 볼 만한 미인이 들어왔는데, 모나드 백작은 왜 공연히 심술을 부리는 걸까요?”

“뻔하죠. 하여간 여자의 질투심이란 무섭다니까요."

“엘리자베스라는 저 시녀의 미모가 상당하니 위기감이라도 느꼈나 봅니다.”

저속한 킬킬거림이 흘러나왔다.

“쯧쯧, 그러니 모나드 백작도 도좀 웃고 다니면 얼마나 좋습니까?”

“줄리엣 모나드는 뻣뻣하기 짝이 없지요.”

“공작에게 내쳐지면 그만일걸.

하여간 주제를 모른다니까요.”

슬금슬금 줄리엣 모나드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사실 줄리엣이 사교계에서 나쁜 평판을 듣는 이유는 그녀가 칼라일 공작의 연인이기 때문이었다.

한 달 전 황궁 연회장에서 칼라일 공작이 협박한 이후로 공공연히 그녀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칼라일 공작이 수도에 없었다.

“맞습니다. 반반하면 뭐한답니까.”

“칼라일 공작이 싫증이 나면 아무것도 아닐 계집인데요."

“안 그렇습니까, 황자님?”

그렇게 입방아를 찧는 기억력 나쁜 무리 중에는 2황자, 클로프도 끼어 있었다.

쾅!

갑자기 클로프가 테이블 다리를 걷어찼다.

“그놈의 칼라일 공작!”

잠자코 듣던 클로프가 돌연 역정을 냈다.

“화, 황자님?”

"에잇! 공작 얘기 외에는 할 게 없나?”

2황자 클로프는 벌컥 화를 낸 다음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그는 부글부글 속이 끓는 중이었다.

'눈엣가시 같은 놈.'

공작과 나이가 같은 클로프는 철이 들 무렵부터 사사건건 레녹스 칼라일과 비교당해야 했다.

하지만 스물도 채 되기 전에 이름을 떨치고 제 손으로 작위를 를되찾은 괴물 같은 인간을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지난번 있었던 기네스 후작의 일만 해도 그렇다.

아는 사람이 없는 일이지만, 클로프는 사실 기네스 후작에게 상당한 돈을 투자했었다.

후작이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단 것을 알았지만 칼라일 공작을 끌어내리기를 바라며 은밀히 자금을 대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활한 칼라일 공작은 무너지기는커녕 제 죽음까지도 가장해 황제를 속여 가면서까지 기네스 후작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몰락한 것은 기네스 후작가였다.

귀족원을 선동해 칼라일 공작이 남부를 집어삼키는 걸 막아 보려고 했지만 후작의 재산은 고스란히 칼라일 놈의 손에 떨어졌다.

'그래 봤자 제깟 놈은 공작이고 나는 황족인데……!'

클로프는 씩씩거렸지만 분을 삭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였다.

“저, 2황자님이시죠?"

돌연 낭랑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누구냐?”

“2황자님을 뵙습니다.”

고개를 들자 주홍빛 도는 금발의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생글거리며 인사했다.

“저는 엘리자베스 틸먼이라고 합니다. 황후 폐하를 모시고 있어요.”

"아…… 어머니의 치료사로군.

일어나라.”

클로프는 탐탁찮은 시선으로 엘리자베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죄송해요, 황자님. 제가 우연히 조금 전 황자님의 대화를 엿듣고 따라왔어요.”

대화? 칼라일 공작이란 말에 역정을 냈던 그 대화를 말하는 건가?

의심이 많은 성격인 클로프는 일단 엘리자베스를 경계하고 봤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황자님을 도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한 발짝가까이 다가오자 클로프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틀림없이 칼라일 공작을 이길수 있게 해 드릴게요."

어디선가 쉬쉬거리는 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줄리엣?”

뒤에서 테오가 쫓아왔지만 줄리 엣은 홧김에 말을 달려서 승마코스를 벗어나 버렸다.

달리아의 말은 명백한 협박이었다.

"그렇다면 조심하세요. 소중한 가족들을 위해서라도요.”

그 말인즉 외할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불쾌한 경고였다.

테오가 한참 말을 타고 달려와 줄리엣을 붙잡았다.

“야, 무슨 일인데 그래?"

“테오.”

줄리엣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을 물으려고 했다.

“할아버지가 …….”

외조부가 어디에 계시는지 아느냐고 물으려 했던 줄리엣은 순간 멈칫했다. 어쩐지 묘한 시선이 느껴졌던 것이다.

줄리엣은 문득 아무것도 없는 풀숲을 바라보았다.

“왜 말을 하다 말아?”

테오가 의아하다는 듯 줄리엣을 재촉했다.

"아니, 그게.”

순간 레녹스가 보내온 편지의 의경고가 뇌리를 스쳤다.

'아무도 믿지 말 것.'

왜 하필 달리아는 그 상황에서,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줄리엣의 가족 이야기를 꺼냈을까? 수배자 신세인 외할아버지의 존재를 알고 있음을 과시하려고?

"그게 아냐.”

줄리엣은 놀랍도록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이곳은 황궁 안이었다. 어디에나 눈과 귀가 있을 수 있었다.

줄리엣은 태연하게 말했다.

“테오, 레반트에 사람을 보내 줄래?”

“뭐? 왜?"

“할아버지께 전할 소식이 있어.”

줄리엣은 태연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데 왜 레반트에….”

잠시 의아했지만 눈치 빠른 테오는 줄리엣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리오넬 르바탄은 현재 레반트에 없다. 즉, 줄리엣은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속이려고 하고 있었다.

잊혀진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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