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로이는 기민하게 숲을 뒤지는 중이었다.
‘없다.'
그러나 허탕이었다.
테오 르바탄이 고래고래 줄리엣이 사라졌다며 요란을 떨더니, 과연 그 말대로였던 것이다.
로이는 턱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훔쳤다.
테라리움은 물론이고 루체른 인근의 모든 숲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줄리엣….’
로이는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특유의 갈증은 개화한 반려의 체취만이 달랠 수 있는데, 그 간 그를 억누르던 불안감이 폭발한 것이다.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되다간 그는 잘근잘근 제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그때였다.
“거기서 뭐해요?”
“줄리엣……?”
나무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여자가 서 있었다.
"네, 나예요. 거기서 뭐하는 거예요?”
“줄리엣….”
다리에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이에 힘탁었다.
로이는 비척비척 그녀를 향해 다가가 손을 뻗어 와락 끌어안았다.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요? 대체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어요…….”
“걱정했어요?”
“당연하죠! 내가 얼마나 당신을…….”
“미안해요, 로미오."
“로미오?”
로이는 멈칫했다.
줄리엣이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요, 로미오?"
그러나 로이는 품 안의 줄리엣을 놓고 훌쩍 물러섰다.
“줄리엣은 나를 절대 로미오라고 안 불러.”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유독 애칭을 고집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무슨 말이에요, 로미오?"
"너 누구야.”
끼릭끼릭끼릭.
섬뜩한 소리와 함께 줄리엣, 아니 그것의 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들켰네?”
씩 웃는 것과 동시에 줄리엣의 겉을 뒤집어 쓴 인형의 팔에서 칼날이 돋아났다.
"......!"
그것이 칼날을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로이는 재빨리 몸을 피했지만 인형의 몸에는 팔이 두 개였다. 따라서 날아오는 칼날도 두 개였다.
'크윽!’
로이는 다급히 각도를 틀어 피해 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음을 직감하고 최대한 피해를 줄여 보려 했다.
그때.
타캉!
인형의 칼날이 로이에게 닿기도 전에, 어디선가 날아온 검격이 정확히 인형의 몸을 날려 버렸다.
"…!”
“형편 없군. 그래.”
고개를 번쩍 드니, 느긋하게 고개를 기울여서 비웃는 레녹스 칼라일이 거기 있었다.
“제 여자도 못 알아보나?"
그가 검날에 묻은 것을 털어내며 말했다. 인형을 베자 칼날에 묻어난 것은 붉은 피가 아니라 알 수 없는 검고 끈적한 액체였다.
진짜 사람인 척하고 있지만 사람은 아니다.
쓰러진 인형의 허리에서는 피대신 이상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레녹스가 과장되게 놀랐다는 시늉을 하며 비꼬았다.
"아, 맞아. 처음부터 내 거였지.
실례했네, 애송이."
"하……!”
로이는 헛웃음을 터뜨렸지만 그에게 목숨 빚을 진 건 사실이었다. 로이는 가벼운 심호흡과 함께 단번에 몸을 일으키곤 물었다.
"어떻습니까.”
로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휴전할까요?”
레녹스 칼라일은 웃지도 않고 대꾸했다.
“난 짐승 새끼랑 손 안 잡아.”
“빡!”
"윽!”
그러더니 냅다 한 손에 들고 있던 오닉스를 로이에게 던져 버리곤 먼저 숲을 떠났다.
"악!"
팡팡팡!
졸지에 로이와 함께 짐승으로 묶인 오닉스가 불만스럽다는 듯 로이에게 성질을 내며 꼬리를 두드렸다.
***
사육제의 마지막 날, 7일째 되는 날의 마지막 순서는 단연 법황이 직접 주관하는 제례였다.
법황이 주신(主神) 이프리트의 성체 일부를 소환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여신의 빛이 쏟아지는 의식이야말로 루체른 사육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었다.
법황에게 여신의 가호가 함께하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마력의 기원은 악신에게서 비롯된 것.
반면 신성력의 기원은 주신 이 프리트 여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물론 마법사들은 사제들이 주신을 섬기는 것처럼 악신을 섬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제들은 자신들이 삿된 마법사들 따위와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성하께서는 어디 계시냐!"
그러나 제례를 앞둔 테라리움내부 사정은 그리 자랑스럽지 못했다.
종단의 사제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아직도 찾지 못했단 말이냐!"
제례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법황 제바스티안이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 것이다.
법황을 보필하는 제1보좌인 솔론 추기경은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 멍청이들아! 법황 성하를 를찾지 못하면 너희도 모두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솔론 추기경은 길길이 날뛰며 사제들을 재촉했다.
그러나 테라리움은 물론이고 온 루체른을 샅샅이 뒤져도, 법황제바스티안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호록.
'……이 판국에 호록?'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소리에 에핏발 선 눈으로 뒤를 돌아본 솔론 추기경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길리엄 추기경! 그대는 걱정도 되지 않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차가 넘어갑니까? 성하께서 벌써 몇 시간째 행방이 묘연하신데!”
길리엄 추기경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질문에 대답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당연히 걱정되지요. 게다가, 의식의 보조 역할은 제1보좌인 솔론 추기경의 몫이 아니 었습니까?”
"....… 제기랄!”
“그보다, 실종된 사람이 하나 더 있다던데요.”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까!”
“허어.”
길리엄 추기경이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냈다.
“리오넬 르바탄의 손녀라는 그 아가씨 말입니다.”
“......"
솔론 추기경이 갑자기 입을 꾹닫았다.
“왜 이러십니까, 솔론 추기경.
우리 둘 모두 직접 봐서 알지 않습니까?”
동부 카나벨 마을에서, 길리엄추기경이 손수 어렵게 공수해 온 비탄의 성녀상.
“그 성녀상을 처음 본 순간, 법황 성하께서 눈물을 흘리셨잖습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얼마 뒤, 그 성녀상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여자가 법황청에 나타났다.
실종된 줄리엣 모나드였다.
"어째, 타이밍이 지나치게 공교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솔론추기경?"
톡톡톡.
길리엄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 아가씨가 사라지고 몇 시간 뒤에 성하께서도 똑같이 행방이 묘연해지셨소. 이게 무슨 의미일지, 생각을 해 보란 말입니다.”
“알다마다요!”
갑자기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솔론 추기경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 아시겠소?”
“그럼! 당연한 거 아니오!"
솔론 추기경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잘 들어라! 지금부터 법황 성하를 납치한 범인을 수배한다!”
"뭐, 뭐?”
당황하는 길리엄이 말릴 새도 없이, 솔론 추기경이 냅다 외쳤다.
“이름은 줄리엣 모나드! 악명높은 범죄자 리오넬 르바탄의 외손녀라는 계집이다! 이 계집부터 찾아! 당장!”
"이, 이게 무슨 소리요! 솔론!
이봐, 당신!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시오!”
당황한 길리엄이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해댔다.
“먼저 행방이 묘연해진 그 아가씨 쪽이 당연히 피해자가 아니겠느냐고!"
게다가 그 조각상이라는 증거도 있고!
그러나 솔론은 양손으로 귀를 꼭 틀어막고 꽥꽥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 몰라, 몰라! 그럼 당신은 지금 법황 성하께 납치범의 오명을 씌우자는 거요? 당신이야말로 미쳤나 보군! 다 같이 죽자는 소리지, 그게!”
솔론을 그대로 뛰쳐나가서는 사제들에게 지시하기 시작했다.
“그 계집을 수배하지 않고 뭣들하는 게냐! 그 계집이 우리 성하를……!”
“당신 진짜 미쳤나! 빨리 정정해야…!"
"어허, 이거 놓으라니까! 그 계집부터 찾아라!”
두 추기경이 서로의 멱살을 잡고 드잡이할 때였다.
쿵.
“......?"
묵직한 소음에 두 추기경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쿵.
"이, 이게 무슨 소리지?"
쿵.
반복되는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가만 있자, 이 소리는……."
쾅!
마지막 굉음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성전의 문이 거세게 열렸다.
아까의 그 소음은 그들이 있는 제9내실까지의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오는 소리였다.
물론 강제로 열린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내 손녀를 빼돌린 놈들이 여기 있다던데.”
뚜벅, 뚜벅.
한쪽 다리를 미세하게 절긴 하지만, 한손에는 소드스틱을 짚고 흰 예복을 멀끔히 차려입은 붉은 머리의 노인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네놈들이냐?"
적왕, 리오넬 르바탄이었다.
잊혀진 줄리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