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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줄리엣-78화 (75/229)

78화.

오닉스는 재빨리 눈에 띄지 않는 난간 위로 올라가 위층으로 도도도 올라갔다.

뜻밖에도 새끼 용에게는 제가 마수의 왕이라는 자각이 있었다.

“빡!”

일단 높은 곳에 올라가 줄리엣을 찾아보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새끼 용은 어렵지 않게 찾던 것을 발견했다.

붉은 머리는 멀리서도 한눈에 확 들어왔다.

주인의 부하3이 분명했다. 그리고 놈의 앞에는 주인과 비슷한 뒷모습의 여자가 서 있었다.

반갑게 그쪽으로 뛰어 내려가려던 오닉스는 문득 얼마쯤 가까워졌을 때 난간 위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야! 너 어제부터 얼마나 찾아 다닌 줄 알아?”

화를 내고 있는 붉은 머리의 남자는 분명 오닉스가 생각했던 사람이 맞았다.

그러나 멀리서 보고 줄리엣이라고 착각했던 여자에게서는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삐약?”

새끼 용은 고개를 갸웃했을 뿐, 그리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줄리엣을 발견하지 못했다.

는 사실에 조금 시무룩해졌을 뿐이다.

오닉스는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건물 내부를 쫄랑쫄랑 잘도 돌아다녔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사제 견습생들이 말했던 작은 화관도 하나 챙기고 커다란 테라리움을 한 바퀴 다 돌도록 결국 줄리엣을 찾지는 못했다.

오닉스는 지치지는 않았지만 타박타박 걷다 보니 배가 고프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외진 곳이었다. 눈에 띄는 기둥 아무 곳에나 탈싹 배를 붙이고 눕는데 별안간 목덜미를 잡혀 몸이 붕 들어 올려졌다.

“맠?”

당황한 새끼 용은 다리를 바동거렸지만 이내 저를 집어든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붉은 눈을 가진 인간 남자였다.

"삐이….”

살살 눈치를 보며 오닉스는 몸을 축 늘어뜨렸다.

목덜미를 잡혀 대롱대롱 매달린 것은 굴욕적이지만 저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와 맞닥뜨리면 배를 보이며 죽은 척하는 게 새끼 마수의 본능이었다.

그러나 무례하게도 용을 덥석집어든 남자는 오닉스가 배를 보이건 말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네 주인은 어디 있지?"

“.....…삐약?”

최대한 시선을 피하려 애쓰던 오닉스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줄리엣을 알아?

킁킁.

줄리엣의 옷가지에 배어 있던 것과 같은 향이다.

오닉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남자를 며칠 전 본 적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

무섭지만, 어쩐지 괜찮을 것 같았다.

* * *

결국 난동을 부린 끝에 테오는 임시 시설에 감금 조치되었다.

“지금 메리골드 상단 사람들을 풀어 찾고 있습니다. 어르신께도 연락을 넣었어요.”

그런 테오를 대신해서 줄리엣을 찾아 나선 이는 에셀리드였다.

에셀리드는 테오의 주장대로 테라리움 내부에 줄리엣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리오넬 르바탄에게 연락을 넣는 한편 사람들을 풀어 줄리엣을 루체른 시가지에서 목격한 자가 있는지 수소문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테오는 얌전히 감옥에 앉아 있었고 말이다.

밤새 뛰어다닌 덕분에, 에셀리 드 역시 숨 고를 틈이 없었다.

겨우 갇힌 테오를 면회하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에셀리드는 창살에 등을 기대고 감탄했다.

"과연. 신전답게 감옥도 버젓이 대놓고 있고 말이죠.”

역시 반세기 전만해도 이단 심문관으로 악명을 떨치던 종교 집단다웠다.

그런데 의외로 테오가 얌전했 했다.

에셀리드는 어쩐지 의아해졌다.

“뭐 하십니까?”

들어오기 전에는 줄리엣을 찾아 내라며 온갖 난동을 다 부리던 주제에.

평소라면 있는 성질 머리를 다 다부려야 정상인데……?

정작 감옥 안에 갇힌 다음에는 조용히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야, 에셀리드.”

“네?”

"저거 말이야.”

테오는 열심히 보고 있던 뭔가를 가리키며 물었다.

“줄리엣이랑 닮았다고 생각하면 내 기분 탓이냐?"

에셀리드는 눈을 가늘게 뜨고 테오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보았다.

신전답게 온갖 기념탑들과 예배당 그리고 천사상들뿐이었다.

뭐가 닮았다는 거야?

고개를 갸웃하던 에셀리드는 천사상 하나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아?”

열세 개의 천사상들 중, 유달리 눈에 띄는 조각상이 하나 있었다.

**

털썩.

줄리엣은 바닥에 쓰러진 제바스티안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손에 든 주사기 실린더안에 진홍색 액체가 찰랑거렸다.

열차에서도 봤던 바로 그 액체였다.

“직접 당해 보니 기분이 어때요?”

줄리엣은 상냥하게 물었다.

그거야 더럽겠지.

경악한 제바스티안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됐다.

“제노비아…… 네가, 왜…….”

“잘 들어요, 법황님.”

줄리엣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제노비아가 아니니까, 그냥 이 문을 열고 나를 밖으로 돌려보내 줘요.”

사실 그게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이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제바스티안이 자의로 줄리엣을 풀어 주는 것.

“그러면 없던 일로 해 줄게요.

어때요?”

그러나 제바스티안은 대답 대신 충격받은 얼굴로 줄리엣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바로 대답을 못하진 않을 텐데.

줄리엣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 보자."

한숨을 푹 한번 내쉰 다음, 줄리엣은 제바스티안의 옷을 뒤지기 시작했다.

단서는 모두 힐데가르트의 말속에 있었다.

신성력 재능을 타고나다 못해 천재였다는 제노비아.

“화재로 사망해서, 시신이 불탔다고 했지.”

그리고 남매인데도, 어릴 때는 신성력이 없었다는 제바스티안.

"대신 손재주가 좋아 목수로 기르려고 했다오."

그랬던 제바스티안이 누나의 죽음 이후부터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최연소 법황이 되어 천재 소리를 듣고 있으니.

비록 편법을 써서 법황 자리를 받아먹긴 했지만 제바스티안이 발휘하는 신성력들은 진짜였다.

가뭄을 해소하고, 사람들을 치유하고, 그런데 힐데가르트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모든 아이들이 같은 재능을 타 고나는 것은 아니니.”

그렇다면 제바스티안의 재능은 뭐였을까?

“이거구나.”

뻣뻣하게 굳은 제바스티안의 옷을 뒤진 끝에, 줄리엣은 제바스티안의 앞섶에서 동그란 구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제바스티안은 그것을 목걸이처럼 줄에 연결해 착용하고 있었다.

제노비아의 소울스톤은 진한 보라색.

“마력석만큼 보석처럼 생기진 않았네.”

줄리엣은 신기한 듯 손안에서 스톤을 굴렸다.

꼭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반질반질한 구슬처럼 생겼다.

소울스톤.

신성력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도 신성력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만능 아이템이다.

마력석이 마력이 하나도 없는 사람도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유일한 단점은 무척이나 희귀하고 비싸다는 것이다.

마력석은 일반 보석들처럼 캐내면 그만이지만, 소울 스톤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소울 스톤은 신성력이 높은 사제의 시신을 화장하면 만들어진다.

즉, 사람의 시신을 태워야 만들 수 있다는 거다.

재료가 재료이니만큼 무척 비싸고 희귀한 물건이었다.

사실 줄리엣도 실제로 보는 것은 두 번째였다.

'가짜 소울스톤이야 많이 봤다만…….’

처음 소울스톤을 봤던 것은 첫 번째 삶에서였다.

'달리아가 소울스톤을 가지고 있었지.'

달리아를 존경하고 따르던 아이가 불치병으로 숨진 다음, 그녀에게 남긴 유품이었다고 했다.

그것도 제노비아의 것처럼 이렇게 예쁜 제비꽃 색이었는데 …

'응?'

그러고 보니, 달리 아는 남다른 신성력의 소유자였는데.

그런 달리아가 왜 소울스톤이 필요했을까? 소울스톤은 신성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만 사용하는 게 아니었나?

줄리엣이나 제바스티안처럼 말이다.

어쨌든 제노비아의 소울스톤은 구슬처럼 매끈하고 크기도 색도 완벽했다.

'소울스톤의 크기는 그 사람이 생전에 가졌던 신성력의 크기에 비례한다던데…….'

죽은 제노비아의 신성력 재능이 이만큼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었다.

그런 반면에.

"그…… 제, 비…….”

“그걸로 뭘 하려는 거야, 제노비아?'라고 묻고 싶은 거야?”

줄리엣은 냉담한 시선으로 쓰러진 제바스티안을 쏘아보았다.

힐데가르트의 말대로 제바스티안에게도 재능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훔치는 거였을 거라고 줄리엣은 생각했다.

죽은 누이의 신성력이 담긴 소울스톤으로 법황 자리까지 훔쳐냈으니까.

“이게 진짜 되는 건지 모르겠네…."

줄리엣은 소울스톤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신성력은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데.

소울스톤을 만지면 뭔가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냥 따뜻하기만 했다. 소울스톤을 손에 넣는다고 뭐가 극적으로 팟! 하진 않는 모양이었다.

왜 일을 어렵게 만들어?

줄리엣은 한숨을 내쉬었다.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평화롭고 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미친 놈 하나 때문에 번거롭고 폭력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니.

원통하기 짝이 없었다.

줄리엣은 소울스톤을 손에 쥐고 한번 심호흡하며 위를 힐끔 보았다.

'일단…….’

결계를 깨야 해. 아흔여덟 장의 결계 중 단 한 장이라도. 그래야 마력을 써서 나비를 불러낼 수 있다. 제발!

잊혀진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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