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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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장을 빠져나온 일행들은 천막 너머에서 온통 흰 옷을 입은 예사롭지 않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뒤늦게 경매장에 와 뒤처리를 돕던 에셀리드 역시 그들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사제들이군요.”
눈에 띄는 하얗고 긴 로브는 사제들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 유달리 로브를 푹 뒤집어쓴 사제 하나가 그들 쪽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자그마한 키와 체구로 보건대 아무 래도 여성 사제 같았다.
지켜보던 테오도 그 사제를 향해 목례를 했다.
“아까 그 사제야.”
경악하는 에셀리드더러 들으라는 듯 테오가 설명했다.
조금 전 줄리엣의 부탁으로 테오가 데려왔던 사제도 저 무리들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
순간 줄리엣은 멈칫했다.
"테오.”
“응?”
"아까 그 사제, 얼굴 봤어?”
“아니, 왜?”
줄리엣은 왠지 모를 직감에 아까의 사제들이 사라진 곳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자리를 뜬 후였다.
“그런데 사제들이 무슨 일일까요, 이런 곳에?”
줄리엣은 그들이 나온 천막을 을힐끔 보곤 말했다.
“귀신들린 물건을 사들이는 거예요.”
"예? 그런 물건을 왜요?"
“제령해서 다시 내다 파는 거 죠.”
신전의 사제들이라고 해도 암시장에 걸음도 하지 않을 만큼 깨끗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돈벌이에 누구보다도 탁월한 감각을 발휘했다.
제령해서 파는 것도 그들의 그런 돈벌이 수단 중 하나였다.
에셀리드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넌 그런 걸 어떻게 알아?”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테오가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 그러나 줄리엣은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았다.
제령은 과거, 첫 번째 삶에서 달리아의 특기 중 하나였다.
달리아가 귀신들린 보물을 신성력으로 제령 할 수 있다는 걸 알려 준 뒤, 경매장을 돌아다니며 귀신들린 물건들을 사들이는 걸 본 기억이 있었다.
“그만 가요.”
줄리엣은 먼저 마차에 올랐다.
그러나 돌아오는 동안 줄리엣은 한마디 말도 없이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신관들이 암시장에 나타났다니.
'이건 달리아와 관련이 있는 일일까?'
첫 번째 삶의 기억에 비추어 봤을 때 시기는 얼추 들어맞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예언의 실현이니 여신의 현현이니 하면서 한 창 시끄러워야 할 텐데.'
지난 과거들에 비해 너무 조용했다.
칼라일 공작이 결혼 준비를 한다는 소식 외에는 딱히 달리아가 등장했음을 알 수 있는 소식을 을접한 적 없는 것 같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걸까?
“그나저나, 정작 알은 감정을 을못 받았으니 어쩌죠?"
"괜찮아요.”
왠지 우연히 주운 것부터 시작해 난생처음 보는 알에 정도 들고 신기해서 망설여졌다. 하지만 줄리엣은 냉정히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판매처를 알아봐 주세요.”
앞으로 그녀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모르는데 뭔가를 책임질 수는 없었다.
“아, 그런 거면 미리 감정을 받은 다음 판매하는 게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상관 없.”
파삭.
그 순간 무언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
“뭐야?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아가씨?"
앞자리에서 에셀리드와 테오가 번갈아 물었다.
그러나 줄리엣은 대답할 수 없었다. 수건에 싸인 알을 품에 안은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기 때문이다.
파삭, 툭. 투툭.
조금씩 알의 껍데기 표면이 안에서부터 부서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안에서 까만 무언가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그리고,
“삑!”
줄리엣은 크고 노란 한 쌍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
“그러니까.…..”
리오넬 르바탄은 테이블 위에 놓인 생물체를 마주했다.
날렵하고 새카만 몸체와 균형 잡힌 긴 꼬리, 보석을 아로새긴 듯 샛노란 눈 한 쌍.
“이게 드래곤이란 말이냐?"
“예, 어르신.”
제 얘기를 하는 걸 아는지 고대의 마수는 위협적으로 입을 쩍벌렸다. 그리고는 제법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날개를 퍼덕거렸다.
“삐악!”
그래 봤자 나오는 울음소리는 '삐악'이었다.
줄리엣은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아기 드래곤의 자태는 어린 새끼들이 흔히 그렇듯 깜찍하기 그 지없었다.
드래곤이면 파충류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갓 태어난 새끼 용은 병아리처럼 울고 새끼 고양이처럼 행동했다.
“자.”
리오넬이 포도 한 알을 톡 따서 내밀자 새끼 용은 갈등했다.
“략……."
그것은 잔뜩 경계하면서도 망설이다 포도알을 받아 물더니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 줄리엣의 근처로 와서는 찹찹 소리 내어 먹기 시작했다.
“고 녀석. 성질머리하고는.”
리오넬은 혀를 쯧 하고 찼다.
“마지막으로 드래곤이 발견된 게 아마 300년쯤 전이던가요?"
“그렇지.”
리오넬 르바탄은 뭔가를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줄리엣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일부러 자리를 옮겼다.
“저리 가.”
“빡!”
그러나 새끼 용은 줄리엣이 자리를 조금 옮기기만 해도 화들짝놀라 허겁지겁 먹던 것도 내려놓고 쫓아왔다.
“태어나서부터 매 끼니 밥 주고 뒤치다꺼리해 준 건 저인데 말이 죠.”
에셀리드는 그게 못내 서운한 눈치였다.
갓 태어난 새끼 용은 고양이보다도 작았다. 길고 날렵하게 생긴 게 수달이나 족제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 날개가 있네.”
“!”
새끼 용이 접시에 코를 박고 밥을 먹는 동안 줄리엣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용을 관찰했다.
용은 뭘 먹나 궁금해서 에셀리 드에게 물어봤더니 어차피 마수니까 아무거나 다 먹을 거라는 답만 들었다.
과연, 뭘 줘도 먹성 좋게 잘 먹었다.
그 덕분인지 겨우 사흘째인데 쑥쑥 자랐다.
이 속도로 계속 자란다면 석 달뒤에는 송아지만큼 커져 버리는 게 아닐까? 그건 안 되는데.
줄리엣은 걱정스러웠다.
식사에 열중하는 동안, 날개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작은 날개가 연신 파닥거렸다.
“수룡은 아닌 것 같군요.
에셀리드의 말대로 아기용을 가장 살뜰히 보살피는 것은 그였다.
그런데도 줄리엣만 보면 소리도 없이 졸졸 따라다니기 일쑤라 꼬리를 자주 밟혔다.
"빡!”
"바보야.”
따라다닐 거면 기척을 좀 내든지.
줄리엣은 한숨과 함께 새끼 용을 다시 안아 들었다.
“그보다, 이름은 지으셨습니까?”
“그게 중요한가요?"
“용의 이름은 특별하니까요. 왕들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역사서에 현존했던 모든 용의 이름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탑의 마법사들은 용에 환장한다고 했지.
용에 대한 거라면 뭐든 기록하고 용을 연구하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던질 거라고 했다.
'그러면 얘 이름도 영원히 역사서에 남는 걸까?'
줄리엣은 잠시 바닥에서 뒹구는 어린 용을 보다가 말했다.
“삐약이요.”
"…… 진심이십니까?"
“삐악거리잖아요.”
“꾸륵?”
부드러운 천을 앙앙 물어뜯으며 놀던 새끼 용이 고개를 들었다.
제 얘기를 하는 걸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럼 까망이?”
까맣고, 촐싹대고, 뽈뽈 거리고.
줄리엣은 애초에 자신이 이름짓는 재주가 없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내놓는 족족 에셀리드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건 꽤 볼 만했다.
그렇게 이상한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에셀리드는 초조하게 책을 뒤적였다.
“발락은 어떻습니까? 고대어로 위대한 용이란 뜻인데…….”
“싫어요.”
사실 의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기보다는 굳이 새끼 용의 이름을 짓고 싶지 않았다.
‘왠지 이름을 지으면 진짜 키워.
야 할 것 같단 말이야.'
“그럼 파실 겁니까?”
“뭘 말이죠?”
“그거 말입니다.”
꾸르륵, 끼루륵.
이상한 새 소리 같은 높은 소리를 내면서 무릎 위에서 갸르릉거렸다.
“얘를 누가 사요?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로 순진한 소리를 하시네요."
에셀리드는 뜻밖이라는 듯 안경을 치켜올렸다.
“마지막 드래곤의 기록이 자그마치 300년 전의 일입니다.”
드래곤은 멸종됐다고 알려진 마수들의 왕이었다.
“부르는 게 값일 텐데요?”
하고 에셀리드가 설명했다.
"드래곤의 가죽은 어떤 불에도 타지 않고 드래곤의 피는 한 방울로도 강력한 해독제가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게?
줄리엣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빡?”
제 얘기를 하는 걸 아는지 용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커다란 비둘기 같은 게?
“원하시면 좋은 구매자를 연결시켜 드리죠.”
“좋은 구매자?”
"마탑의 마법사들이 특히 환장할 겁니다. 드래곤의 비늘 하나, 피 한 방울에 열광하는 자들이니까요. 그러니 부르는 게 값이지요.”
줄리엣의 머릿속에 자동으로 어떤 장면이 그려졌다.
철없는 새끼 용이 수술대 같은 곳 위에 축 늘어져 있는 그림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불쾌해져서 줄리 엣은 얼른 바구니 안에 드래곤을 집어넣고 천으로 그 위를 덮었다.
새끼 용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좋다고 바구니 안에서 골골거렸지만, 줄리엣은 딱 잘라 말했다.
“얘는 안 팔아요.”
“후회하실 텐데.”
싸구려 삼류 악당 같은 대사를 내뱉은 사람치곤 에셀리드는 뜻밖에도 순순히 물러났다.
"정 그러시다면야.”
“삐악?”
바구니 안에서 손수건을 뒤집어 쓴 채로 새끼 용이 고개를 불쑥들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지 연신 두리번거리길래 줄리엣은 손수건을 을걷어 주었다.
“딱!”
눈이 마주치자 새끼 용이 좋다고 날개를 파닥였다.
...…몸값이 비쌀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영리한 편은 아닌 것 같았다.
잊혀진 줄리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