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
에셀이 천막을 걷고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입니까?”
"마법사님! 여기 마법사님이 계시다고 들었어요!”
상단 행렬로 뛰어든 것은 어느 부인이었다.
에셀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온 줄리엣 역시 그녀를 보았다. 전체적으로 옷차림이 깨끗했지만 그녀는 뭐에라도 홀린 사람처럼 절박해 보였다.
“마법사님은 어디 계시죠?"
상단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천막 쪽을 보았다.
“저, 저는 마그다라고 합니다.
바로 옆의 카나벨 마을에서 왔어요.”
마그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부인은 줄리엣과 에셀을 번갈아 보며 갈등하는 눈치였다.
둘 중 누가 마법사인지 헷갈리는 거다.
줄리엣은 눈치채고 냉큼 한 발짝 물러섰다.
에셀도 한숨을 쉬면서 앞으로 나섰다.
“찾으시는 마법사는 아무래도 저인 것 같군요. 무슨 일이십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에셀은 깜짝놀라고 말았다.
다짜고짜 마그다가 그의 앞에 무릎을 털썩 꿇었던 것이다.
“저희 아이들 좀 살려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마법사님!"
마그다의 설명은 이랬다.
마그다의 딸을 비롯한 마을의 어린아이 다섯 명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그런 거면 근처 영주에 에게 읍소하셔야죠, 부인. 다짜고짜마법사를 찾아오시면 어떡합니까.”
"하, 하지만”
마그다는 설명했다.
이 산골 지역은 예로부터 드래곤의 둥지라고 불리곤 했는데, 아이들이 사라지면 마법사만이 아이들을 구해 올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는 이야기.
“그, 그리고 영주관에도 마을 사람들이 찾아갔어요. 하지만 솔직히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마그다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줄리엣은 궁금해져서 조용히 물었다.
“정말 그런 옛날 얘기가 있어요?”
에셀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마법사가 애들을 납치해 간단 옛날이야기는 들어 봤지만요.”
에셀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슬쩍 줄리엣에게 물었다.
"어쩌시겠습니까?”
구경하다가 대화에 끼게 된 줄리엣은 어리둥절해졌다.
“그걸 왜 저한테 묻죠?”
“총관인 발터와 테오가 안 보이니까요.”
에셀리드의 말대로였다.
발터와 테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줄리엣은 항의하려고 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상단 사람들은 물론, 도움을 청하러 온 마그다까지 모두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상단주인 헬레네와 그녀의 가족들이 다 자리에 없었으므로 지금 메리골드소속 마법사인 에센이 어떻게 할지는 그녀가 결정해야 한다. 뭐 그런 논리였다.
줄리엣은 난감해졌다.
정말로 상단을 위한다면 그녀는 이대로 마그다를 무시하고 떠나겠다고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에셀은 솔직히 마그다를 돕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럼…….”
**
한 시간 뒤, 에셀과 줄리엣은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었다.
고민 끝에 줄리엣은 에셀에게
“가고 싶으면 가서 도와줘도 좋아요.”
라고 말했지만 에셀은 뜻밖의 조건을 걸었다.
"아가씨도 동행하시죠."
'나는 왜?’ 심지어 줄리엣은 마법사도 아니었다.
줄리엣은 조금 억울했지만 “아가씨가 안 가면 저도 가지 않을 테니까요”라고 잘라 말하는 마법사에게 가지 않겠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아이를 찾아 달라 애원하는 마그다의 간절한 시선을 무시할 수 없었던 탓이다.
"아직 멀었어요?”
“조, 조금만 더 가면 공터가 나올 거예요.”
에셀리드가 줄리엣을 달래듯 소곤거렸다.
“걱정 마세요. 추적기가 있으니, 설령 아이들을 못 찾고 산에서 길을 잃는다고 해도 상단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 줄 겁니다.”
계획은 간단했다.
아이들을 찾으면 구출해서 마을로 데려오고, 아이들을 찾지 못하면 해가 지기 전에 마을로 내려가고.
“여기, 이 근처예요.”
마그다는 두 사람을 작고 평평한 공터로 안내했다.
"애들이 항상 이 근처에서 놀았거든요. 그런데.…."
마그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뒤는 여러 번 들은 이야기였다.
카나벨 마을의 아이들은 몇 명 되지 않아서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다섯 명 정도의 아이들이 항상 붙어 다니며 함께 놀았는데, 이틀 전부터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였다.
'이틀이나 됐는데 애들이 살아있을까?'
줄리엣과 에셀리드는 조심스레 눈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줄리엣의 생각으로는, 드래곤이 애들을 잡아갔다기보다는 산에서 놀다가 길을 잃었다는 가설이 더 확실했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야 그런 아이들이 걱정되는 게 당연했다.
아무리 산에서 노는 게 익숙한 아이들이라지만 어린애들이 이런 산속에서 이틀 내내 버틸 수 있을까?
"데이나!”
“들리면 대답하렴! 데이나!"
어쨌든 두 사람은 마그다의 요청대로 그녀의 딸을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젖은 산길을 헤치고 다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숲속을 둘러보던 줄리엣은 뭔가 이상한 기척을 눈치챘다.
“응?”
수풀이 우거진 가운데 뭔가 일렁이는 것 같았던 것이다.
"에셀, 저기, 저거 보여요?"
“뭘 말입니까?”
에셀의 소매를 잡아끌자 그 역시 같은 것을 본 듯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뭔가 아지랑이 같은 것.
“...… 아무래도 사람들을 더 불러오는 게 좋겠어요.”
뭔가 불길함이 엄습하는 것을 느낀 줄리엣은 마그다와 에셀을 향해 속삭였다.
그들이 막 돌아 나가려던 그때였다.
"!"
갑자기 발밑이 예고 없이 푹 꺼졌다.
꺄아악!
비명과 함께 세 사람은 산등성이 아래, 어두운 공간으로 발을 헛디뎌 추락하고 말았다.
*
줄리엣은 온몸이 부서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흐윽.”
간신히 눈을 뜨자 사방이 어둑했다.
여기가 어디지?
"아, 정신을 차리셨군요.”
침착한 에셀의 목소리를 듣자 줄리엣은 아주 잠깐, 자신이 이 미친 마법사에게 납치당한 게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나 이내 어둠이 눈에 익고 그녀를 향해 다가온 에셀의 몰골을 보자마자 그를 오해했음을 깨닫고 의심을 거뒀다.
“꼴이 왜 그래요?"
“아가씨 몰골도 직접 볼 수 있으면 그런 말 안 나올걸요.”
차분한 대꾸와 함께 에셀은 슬쩍 주위를 한번 살피고는 그녀에게 뭔가를 건네주었다.
“천천히 마셔요.”
반쯤 빈 수통이었다.
줄리엣은 얌전히 바닥에 고인 물을 받아 마셨다. 목을 축이고 나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어디예요?”
“산 아래인 것 같습니다.”
“산 아래?”
“줄리엣이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한 거 기억납니까? 그 직후, 우리 발밑이 꺼졌고 눈 떠보니까 여기였어요."
에셀의 말대로였다.
줄리엣은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이 좁은 절벽 틈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빛이 잘 들지 않을 만큼 깊이 떨어진 것 같아요.”
어쩐지. 주위가 어둑어둑하더라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 있는진 모르지만 아래에 다행히 이끼식물같은 게 푹신하게 깔려 있어서 무사한 것 같습니다. 덧붙여 지금은 밤인 것 같고요."
이해하기 쉬운 요약이었다.
칭찬이라도 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주변을 둘러보던 줄리 엣은 움찔했다.
“에셀, 여기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있나요?”
“예.”
에셀은 한숨을 얕게 내쉬고는 이어서 설명해 주었다.
“지금은 다들 자고 있지만요.
덧붙여 지금 불침번은 줄리엣 양과 저예요.”
한쪽 구석에 마그다와 어린아이 다섯 명이 웅크리고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애들이 무사했군요.”
“그런 모양이죠.”
에셀의 어조가 딱딱했다.
왜 그런가 했던 줄리엣은 반대 편을 보고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 저 사람들은요?"
“검은갈기길드원들이라더군요.”
줄리엣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무슨 갈기요?”
무슨 이름이 그래?
“저한테 따지는 겁니까?”
에셀은 절벽에서 떨어진 이후, , 줄리엣이 깨어나지 못했던 반나절 사이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잊혀진 줄리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