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줄리엣-6화 (6/229)

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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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합니다.”

칼라일 공작저의 집무실 풍경은다소 살벌했다.

“수상한 점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기사의 보고를 듣던 칼라일 공작은 들고 있던 결재 서류 마지막 장에 서명했다.

이걸로 얼추 수도에서 해결해야 했던 업무는 마무리 되었다.

“끝인가?”

“예, 전하.”

공작의 비서인 엘리엇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 급히 처리하실 일은 없습니다.”

오전 나절, 공작저는 한바탕 태풍이 들이닥친 것처럼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그들의 주인이 갑자기 오늘 내로 수도에서 봐야 하는 업무를 모두 끝내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칼라일 공작이 그러겠다는데 감히 그를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작가의 비서들은 미친 듯이 계약 서류를 검토하고 손님들을 맞으면서 반나절을 보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놀라울 지경이었지만, 어쨌든 모든 일정을 끝낸 다음 공작가는 태풍이 지나간 후 비 갠 하늘처럼 고요해졌다.

“예, 그 기네스 후작의 아들 있잖습니까? 프리실라 공녀와 약혼한. 그자가 완전히 혼이 나가서는 거의 기어 나갔다더군요. 아무래도 아가씨께서 …….”

물론 레녹스는 백작의 하찮은 이름 따위는 듣고도 금세 잊었다.

줄리엣이 사람들 앞에서 환술나비를 사용했다면 그럴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뿐이었다.

약속과는 달리 줄리엣은 점심 무렵이 다 지나도록 저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가씨는 백작저에서 치장한 후 바로 저녁에 황궁 연회장으로 오시겠답니다.”

“그래.”

줄리엣을 데리러 갔던 주드가 보고했다.

수도에는 줄리엣의 친정인 모나 드 백작가의 저택이 남아 있었다.

레녹스는 줄리엣이 갑자기 도망친다거나 하는 일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붙여 둔 호위는 공작가 기사단의 정예였다.

“깨끗하다. 라고.”

레녹스는 느릿하게 중얼거리며 테이블 위의 우편물을 건드렸다.

그가 아닌 줄리엣의 앞으로 온 초대장들이었다.

물론 줄리엣은 이것들을 뜯어보지도 않았기에 봉인도 그대로였다.

겉으로 보기에 레녹스 칼라일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가신들을 가혹하게 굴려 시간 내에 모든 업무를 처리하도록 만들었고, 또한 혼자 외출한 연인 이 여태껏 돌아오지 않았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겉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칼라일 공작의 심기는 상당히 날카로웠다.

모양 좋은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비서인 엘리엇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칼라일 공작의 눈치를 살폈다.

눈치 없는 주드 헤이온만이 아직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신나게 떠들었다.

“한 스물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고요. 안 그래도 찜찜해서 줄리엣 아가씨가 백작저에 들르시면 말씀드리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모나드 양이 자주 돌아오지 않으셔서 아직 전해 드리진 못했다더군요.”

엘리엇은 필사적으로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지만 실패했다. 별안간 나직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엘리엇.”

“예, 전하.”

“늑대를 풀어.”

'늑대'는 칼라일 공작 휘하의 정예 기사들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엘리엇은 부디 아무 일도 없기를 기원하며 고개를 숙였다.

“……존명.”

*

오랜만에 집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한 줄리엣은 옷을 갈아입은 다음 천천히 시가지로 나왔다.

저녁의 신년 무도회 때문에 고급 의상실이 늘어선 백양나무길 앞은 마차들로 붐볐다.

줄리엣은 예약해 둔 구두며 드레스를 찾아가는 하인들 사이로 한가로이 거리를 거닐었다.

얼음까지 띄워진 아이스티였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이 추운 날씨에 별난 취향이라고 여주인은 생각했다.

음료를 가져다준 다음에도 여주인은 창문 너머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줄리엣은 한 번도 자신을 소개한 적 없었지만 여주인은 이미 그녀의 이름과 신분을 알고 있었다.

잊혀진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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