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성녀가 악당을 구원한다는데요 156화 (156/172)

아벨의 붉은 눈동자가 빛나는 수정구를 담았다.

아벨은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그가 어쩐지 허탈한 듯, 슬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는, 아니, 저는 그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했던 거군요.”

“그랬니?”

“예. 그랬습니다. 제 마력을 전부 다 걸어 맹세한 마법을 사용했는데도, 쉽지 않더군요.”

아벨은 아버지와 싸우자마자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이미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르렀던 아벨에게 가문을 벗어나 살아남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다만, 두려웠다.

‘마리엘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 마라. 소문이 진짜든 아니든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마리엘은 우리 곁을 떠났어. 그러니 우리도 이제 마리엘이 없는 상황에 적응해야지.’

‘아버지는, 그래도 괜찮으신 겁니까?’

‘그래. 나도 날 배신하고 떠난 여자한테 관심 없다.’

어머니의 실종으로 자책해서 망가져 버린 벨리알.

다른 가족과 다르게 항상 괜찮은 척하던 쥬테페.

가족을 모두 외면한 채 마물 토벌에 항상 자리를 비우게 된 아버지.

‘어머니가 필요해.’

그들을 가족으로 묶어주던 것은 마리엘이었다.

마리엘이 사라지자 그들은 더 이상 가족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정말로 부정을 저지르신 거면 어쩌지?’

아벨은 어릴 적부터 냉철하고 조숙한 아이였다. 아버지 알렉산더를 가장 많이 닮아서인지 소중한 것도 없었다.

그런 아벨에게, 마리엘은 항상 가족이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있잖아, 아벨. 가족이란 참 소중해.’

‘소중하다는 게 뭡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가 가르쳐줄게.’

그 뒤로 엄마의 고집 때문에 온 가족이 소풍을 가기도 했다.

그때의 아벨은 그것이 귀찮고 무의미한 일이라고만 여겼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느껴져. 티가 나지는 않지만 온갖 감정이 숨겨져 있어. 네가 그것을 알기만 하면 돼.’

‘없으면 어떻게 해요?’

‘이 자식이! 엄마가 맞다면 맞는 줄 알아! 너희 아빠도 엄마한테 똑같은 소리 해서 아직도 혼나고 있거든?’

어머니가 맞았다.

아벨은 그저 몰랐을 뿐이었다.

가족이 완전히 붕괴되고 나서야, 아벨은 그에게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각했다.

하지만 마리엘과 달리 아벨은 제각각 가시를 드러내며 흩어진 슬라데이체를 다시 가족으로 만들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사정이 있었을 거다.’

다행히 아벨은 어머니와 가장 많이 붙어 있으며, 어머니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아들이었다.

‘어머니를 반드시 찾아내는 거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물건을 모조리 태워버린 그날, 아벨은 아버지와 싸우고 가문을 나왔다.

그리고 아벨은 마탑에 들어갔다.

대마법사의 길에 빠르게 오르기 위해 신사의 가면을 쓰고, 온갖 귀찮은 일을 감수하면서.

‘넌 어디에 있니?’

이름도 없는 막내.

아직 가족들은 존재를 모르는 아이.

마기가 없는 것인지 주변을 아무리 수소문해도 찾을 수 없는 여자애.

살아 있다 해도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무사히 별 탈 없이 자라고 있는 건 맞는지 걱정됐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마법이 엮인 덕분에 가끔씩 아벨에게 그 아이의 신호가 들려왔다는 거다.

‘아벨, 마탑주님께서 너에게 따로-’

‘방해하지 마.’

콩닥콩닥 뛰는 아주 작은 심장 소리.

‘지금 아주 소중한 걸 듣고 있거든.’

아벨은 그 작고 사랑스러운 소리를 듣기 위해 두 눈을 꼭 감고 귀 기울이곤 했다.

‘너는 어떤 아이일까?’

그 심장 소리는 제풀에 지쳐 힘든 순간에도, 늘 언제나 아벨과 함께해 주었다.

그래서 아벨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아이를 찾아 나설 수 있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그 소중함이란 게 이런 걸까?’

가족을 잃었을 때 가슴이 아주 아팠다면, 그 아이를 생각할 때 아벨은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생각하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무슨 일이든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때로 보지도 않은 그 얼굴을 그리워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그 애의 얼굴을 그려보기도 했다.

‘이런 게 사랑에 빠진 걸까?’

만나기 전부터 아벨은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처음 나나를 만난 날, 아벨은 이상하게 그 아이에게 모질게 대하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그 아이를 이 가족의 일원이라 여겼다.

‘어떤 아이든 간에 적당히 슬라데이체에서 내쫓으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나나가 자꾸 그 아이인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있으니 슬라데이체가 예전으로 돌아온 것 같아.’

어머니가 있었던 그때처럼.

문제가 있다면, 그의 마법이 나나가 그 아이라고 지목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니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데, 가끔 나나의 곁에선 그의 마법에 오류가 생기기도 했다.

예상치 못하게 검은 토끼로 변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아벨이 마리엘을 보며 물었다.

“어머니는 왜 제 마법이 나나를 찾아낼 수 없었는지 아십니까?”

“그건 내 마법 때문이야.”

마리엘이 수정구를 손에 쥔 채 등 뒤로 두 손을 맞잡았다.

“어떤 마법도 그 애를 찾을 수 없도록 아주 강력한 보호 마법을 걸어뒀거든.”

“보호 마법으로 그게 됩니까?”

“내가 어떤 사람이니?”

마리엘은 시대를 거스르는 천재 마법사였다.

상식적으로 작용할 수 없는 마법을 사용하는 기적의 마법사.

“그래서 네가 그 아이를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 거야. 애초에 그렇게 만든 마법이거든.”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마리엘의 머리카락을 흔들고 지나갔다.

“그 누구도 그 애를 알아볼 수 없도록.”

“어머니를 없애려 한 적에게서 말입니까?”

“그래. 다만 그 애가 가진 신성력을 못 느끼게 하느라, 그 애의 능력에도 제한이 걸려버렸지만, 뭐 그건 이제 와서 중요하지 않지.”

얕게 한숨을 쉰 마리엘이 아벨을 바라보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누가 나를 죽였는지 궁금하지 않니?”

“……그건 이미 어머니의 파편이 다 말해줬습니다. 어머니가 해두신 안배가 아닙니까?”

“어머, 거기까지 해줬니?”

마리엘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나와 최대한 비슷한 인격을 심어둔 마력을 내보낸 거라, 나도 어디까지 되었는지 몰라. 어디까지 알고 있니?”

“전부 다 알고 있습니다.”

아벨은 그때의 충격적인 상황을 떠올리며 검지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어머니의 인격을 담아둬서인지 얼마 남지 않은 마력으로도 그때의 광경을 재현할 수 있더군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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