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릭스는 적대감 어린 눈으로 디트리히를 노려봤다. 나나가 칼릭스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전하, 표정이 왜 그러세요. 지금 화나신 건 아니죠?”
“……너한테 화가 난 건 아냐.”
칼릭스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분노한 푸른 눈동자가 디트리히를 향했다.
“그쪽은 나한테 할 말이 있을 텐데?”
“설마 그거 나한테 한 말인가?”
“그럼 여기에 너 외에 또 있나?”
칼릭스가 검에 검기를 불어넣었다. 마족이 되어서인지 검기가 불길할 정도로 어둑한 색이었다.
“이봐, 황태자 씨.”
디트리히가 놀란 듯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실력 행사를 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무슨 일인지 설명은 해야 하는 거 아냐?”
“지금 그걸 말이라고-!”
겨우 숨을 고른 칼릭스의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나나. 마족은 함부로 믿으면 안 돼.”
칼릭스가 잠시 말을 고르는 듯 지그시 나나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세상에 마족을 인간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어.”
“슬라데이체의 선조는 마족에서 인간이 되었잖아요?”
“그 방법이 어떤 건 줄은 알아?”
“네. 마족의 몸을 이루는 마기를 빼내서 정화하면 되는 거지요.”
“그 방법은 완전하지 않아. 마기를 완전히 잃게 되면 마족은 죽게 되니까.”
“하지만 슬라데이체는-”
“슬라데이체는 천운으로 마기를 가진 인간이 되었을 뿐이야. 저놈이 그 얘기도 해주지 않았나?”
칼릭스의 적개심 가득한 눈동자가 디트리히를 향했다.
디트리히가 억울하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이봐, 난 다 설명해 줬다고. 슬라데이체가 인간이 되면서 인근의 생명체가 모두 죽고 마기가 폭발해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땅이 되었다는 것도.”
태생적으로 인간이 살기 힘든 영지, 슬라데이체령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었다.
“그 얘기도 알고 있다고?”
칼릭스는 의문에 잠겼다.
‘그런데도 날 인간으로 만들 방법을 찾아냈다고 했단 말이야?’
그동안 나나에게 슬라데이체령의 비밀에 대해 숨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나나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혼자 고민하고 힘들어할 테니까.’
“그래요. 다 들었어요.”
“그러면 도대체 무슨 방법을…….”
“어허. 일단 들어와서 다 보고나 말해요.”
나나는 멍해 있는 칼릭스의 손을 잡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칼릭스는 눈썹을 찌푸렸다.
방 안에 가득한 강력한 신성력이 피부를 찌릿찌릿 자극했다.
“이건…… 신성석을 이용한 결계? 황궁에 저런 결계를 미리 쳐놨다고?”
“때마침 황실에 저를 도와줄 조력자가 있었거든요.”
두 눈을 크게 떴던 칼릭스가 조용히 말했다.
“……세라피나 황후군.”
“그런 셈이죠. 그분은 그분 나름대로 할 일이 있으셨거든요.”
나나가 칼릭스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전하 앞에서 세라피나 황후님 얘기를 꺼내서 죄송해요.”
“아니다. 그렇게 말할 것 없다.”
칼릭스가 사과하는 나나에게 손사래 치며 물었다.
“그래서 저 준비로 무엇을 할 셈이지?”
“이제부터 전하의 마기를 모두 정화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