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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성녀가 악당을 구원한다는데요 154화 (154/172)

나나가 칼릭스를 데리고 도망쳤다. 성기사가 도망치는 두 사람을 보며 핏발 선 눈으로 외쳤다.

“가짜 성녀가 도망친다!”

“젠장……!”

하지만 성기사들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카앙! 캉! 캉앙-!

대공의 마기가 성기사단장을 잡아먹을 것처럼 휘몰아쳤다.

‘이게 최선이라니.’

대공의 검이 내려꽂힐 때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신성력으로 가까스로 막아내는 것뿐이었다.

‘실력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이야.’

마기는 성기사단장의 신성력을 부수는 것도 모자라 내부로 스며들어 오염시켰다.

“그게 최선인가?”

대공이 여유롭게 검을 들며 성기사단장을 오시했다.

“시간 낭비할 것 없으니 다 같이 덤벼라.”

성기사단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검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는 막을 수 없다.’

악착같이 슬라데이체 대공을 막기 위해 나섰지만, 대공은 그를 상대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다른 성기사를 처리하고 있었다.

‘슬라데이체 기사단이 다른 곳에 있는 지금이 기회인데.’

현재 이곳에 있는 슬라데이체는 총 3명뿐이다. 그런데 압도하기는커녕 점점 밀리고 있다.

“고작 이 정도로 검을 쓴다고 나서던 거냐? 이게 성기사들의 실력이야?”

벨리알은 달려드는 성기사들을 벌레 잡듯이 짓밟고 있었다.

“지금 장난치는 거지? 더 제대로 휘둘러봐, 새끼들아!”

성기사들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벨리알의 검에 무너져 내렸다.

수로 압도하기는커녕 벨리알이 내지르는 검에 쓰러지는 게 먼저였다.

“슬라데이체를 상대할 생각하지 마라! 먼저 가짜 성녀부터 쫓아!”

성기사단장은 이를 아득 갈며 외쳤다.

“저희가 쫓겠습니다!”

“누가 보낼 줄 알아?”

“몸으로라도 막아! 너희는 자랑스러운 성기사단이다!”

벨리알이 다른 성기사를 막으려 했지만, 당장 앞을 가로막는 숫자 가 너무 많았다.

‘가짜 성녀인 슬라데이체 공녀를 확보하는 게 먼저다.’

진짜 성녀인 리미에가 성기사들을 축복해 주며 그런 말을 해줬다.

‘이 모든 원흉은 가짜 성녀예요.’

‘슬라데이체를 못 이기는 한이 있어도 그 성녀만은 꼭 막아야 해요. 그녀야말로 마왕이 남겨 놓은 함정이니까요. 반대로 말하면, 그녀만 막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뜻이고요.’

나나를 쫓아 달리던 기사 무리가 암수처럼 날아오는 살기에 돌연 걸음을 멈췄다.

“잠깐, 어디서 살기가……!”

서걱-

바닥에 선이 그어져 갈라졌다. 성기사들이 흠칫 놀라 앞을 바라봤다.

“난 머리 나쁜 형처럼 몸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건 별로야.”

쥬테페가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한 걸음 나섰다.

“하지만 멍청한 것들이 말로는 안 듣는다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상대는 대공이나 벨리알과는 달리 한 걸음 떨어져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쥬테페였다.

‘막내 공자는 다른 슬라데이체 공자들보다 무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다가오는 위압감은 다른 형제들과 다를 바 없었다.

“쥬테페 공자를 상대하고 있을 시간 없다.”

가장 나이 많은 성기사가 긴장한 얼굴로 다른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몇 명이 쥬테페 공자를 붙잡고 있는 동안 남은 사람들은 가짜 성녀를 없애러 쫓아가라.”

“이거 웃긴 놈들이네.”

쥬테페의 녹금안이 뱀처럼 반짝였다.

“뒤에서 몰래 상의해도 모자랄 판국에 내 앞에서 대놓고 상의를 한다?”

“신호하면 달려간다.”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됐다.

“달려!”

쥬테페의 검 위로 시커먼 검기가 솟구쳤다.

그 틈에 기사 3명이 쥬테페에게 달려들고, 시야가 혼란해진 틈을 타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쩌쩍, 쩌저적-!

하지만 쥬테페의 마기가 향한 곳은 기사들이 아니었다.

쥬테페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기사들을 무시하고 나나가 달려간 길 자체를 마구잡이 무너뜨렸다.

쿠우웅! 쿠궁!

뿌연 먼지구름이 일었다.

황궁의 기둥이 도미노처럼 부서지면서 근방이 아예 망가졌다.

유심히 살펴보면 나나를 쫓아갈 수 있겠지만, 이렇게 정신없는 상황에서는 길 자체를 찾기가 어렵다.

‘이래서야 슬라데이체를 다 따돌린다 해도 어디로 갔는지 파악할 수가 없겠-’

먼지구름 사이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왜 가던 길 멈춰? 설마 기둥 좀 부서졌다고 길을 잃어버린 건가?”

먼지가 가라앉으며 반짝이는 은발이 드러났다.

“가짜 성녀를 몰아내기 위해 달려온 성기사라면 더 노력할 줄 알아야지.”

쥬테페의 녹금안이 반달처럼 예쁘게 휘어졌다. 그 모습은 인간을 유혹한다는 전설 속 타락 천사 같았다.

“조금 더 열심히 분발해 봐. 성기사의 명예를 보여줘야지.”

상냥해 보이는 목소리와 달리 녹금안에는 한겨울 같은 서늘함이 가득했다.

‘쉽지 않겠어.’

기사들이 침음을 삼켰다.

‘이러다 리미에 성녀님의 분부를 못 지킬지도 모른다.’

리미에는 성기사 모두를 모아놓고 신신당부했다.

‘시간이 밤이 되면 늦어요. 그 전에 모든 일이 끝나야 해요.’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굳어 있는 성기사들 사이로, 쥬테페의 선제공격이 날아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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