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의 보라색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노기가 차올랐다.
“너희는 에스테반 황태자를 보좌하지 않고 무엇했느냐?”
황후가 팔걸이를 꽉 쥐며 시종들에게 소리쳤다.
“어서 황태자를 데려와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종들은 허둥지둥 고개를 숙이며 황후의 명에 따랐다.
“예, 폐하!”
황후가 감정을 드러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귀족들이 술렁거렸다.
카밀라는 그 소란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의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최대로 끌 수 있는 시간은 몇 시간뿐이다.’
황후의 짐작대로, 에스테반 황태자가 도망칠 수 있게 도운 사람은 카밀라였다.
정확히는 에스테반 측에서 먼저 카밀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검증자가 모두 사라진다면, 검증식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하나 황태자 전하, 제가 슬라데이체의 가신인 이상 전하를 너무 오랫동안 숨겨둘 수는 없습니다.’
카밀라의 개입이 클수록 황후에게 카밀라의 존재를 들킬 위험이 커졌다.
그렇게 되면 황후는 슬라데이체가 에스테반을 납치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것은 악수지.’
그러니 카밀라는 에스테반이 홀로 움직였다고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다.
‘전하께서는 몇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밖에 하지 못하십니다. 그 이상은 슬라데이체도, 전하도 위험해집니다.’
‘역시 그런가……. 하지만 그래도 부탁하네. 몇 시간이라도 끌 수만 있다면 무의미한 건 아니겠지.’
카밀라는 에스테반의 태도가 의아했다.
‘전하, 이번 일은 전하께도 많이 위험한 일이 될 겁니다. 그간 완벽한 황태자였던 전하의 위신에 오점이 되겠지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어째서 에스테반 전하께서는 자신의 정적을 위해 희생하시는 겁니까?’
‘이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에스테반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예 망칠 수는 없더라도 나나를 믿고, 몇 시간이라도 최대한 노력하는 수밖에.’
황궁 시종들이 급히 상황을 파악하며 황후에게 보고했다.
“에스테반 전하의 숙소에서 독한 술병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술에 취해 어디로 가신 듯합니다.”
“황성 근방에 계실 터이니 금방 돌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
카밀라는 소란스러워지는 검증식을 바라보며 비장하게 의지를 다졌다.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공녀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상황을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