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물 습격.
과거 수도를 습격했던 무시무시한 마물들을 떠올린 귀족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수, 수도에 당장 마물이 내려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지금 당장 명했다고 수도에 오지는 않겠지요, 설마요.”
그 당시 마물들은 수도에 많은 피해를 끼쳤고, 많은 사람에게 악몽으로 자리잡혀 있었다.
“저 슬라데이체 대공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릅니다. 황제 폐하께서 슬라데이체를 설득하셔야 할 텐데.”
아빠의 악명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들 공포에 떨었다.
“슬라데이체 대공……!”
황후가 평정을 잃고 아빠를 노려봤다.
“지금 황실을 상대로 협박하는 건가?”
“협박이라니요.”
아빠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황실에서 슬라데이체에 내린 임무를 열심히 수행할 뿐입니다.”
“……그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제 의무에 맞게 공정한 권리를 원할 뿐입니다.”
아빠의 태도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공손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불손하고 무시무시해 보였다.
‘역시 우리 아빠야.’
황실을 상대로 협박한 게 퍼지면 평판이 나빠질 텐데,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순간.
“크하하하-”
한 발자국 물러서서 지켜만 보고 있던 황제가 폭소했다.
“이거 황후가 준비한 무대가 아주 엉망이 됐군.”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황제의 광소가 더 괴상하게 울려 퍼졌다.
‘끔찍해.’
황제의 민낯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모습이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슬라데이체 대공가의 의무를 생각해서라도 어쩔 수 없겠군.”
황제가 턱을 괸 채 무신경하게 입을 열었다.
“대공이 원하는 대로 공정하게 재판을 하지. 그러면 되겠나?”
“폐하……!”
황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폐하, 저는 황실의 명예를 지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죄인이라니요.”
황비는 황급히 눈가를 촉촉이 물들이며 황제에게 애걸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는 폐하의 비입니다. 어찌 한낱 공녀와 엮인 가벼운 소란으로 제게 죄를 물으시려 하십니까?”
가련해 보이는 황비의 모습을 본 아빠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폐하, 요구사항이 바뀌었습니다.”
“무엇이 바뀌었지?”
“재판은 슬라데이체 대공가에서 집행하겠습니다.”
황후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황족을 직접 재판하다니. 가당치 않은 말입니다.”
“맞습니다, 폐하! 그것만은 아니 됩니다!”
황비 역시 황후의 말에 바로 동조하며 눈물 어린 목소리로 호소했다.
황족을 처벌할 수 있는 건 가장 고귀한 황족인 황제뿐이다.
그런 황족을 직접 처벌한다는 건, 황실의 권위와 관련된 아주 민감한 문제였다.
‘거기다 우리 집에서 죄를 처벌하게 되면 황비는 아주 끝장날 테니까…….’
“폐하, 모든 게 다 저의 부덕입니다. 하나 제 신분은 엄연히 황족인 황비입니다.”
황비는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황제 앞에 무릎까지 꿇고 빌었다.
“부디 제가 벌을 받는 한이 있어도 폐하의 손에서 끝을 맺어주십시오.”
“꼭 그래야겠는가?”
황제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아빠를 보았다.
“예.”
“아무리 대공이라도 이게 지나친 요구라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빠의 붉은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슬라데이체의 공녀를 건드린 일입니다.”
“…….”
“제겐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합니다. 폐하의 생각이 어떠하든 그것은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황제가 심기가 뒤틀린다는 눈빛을 보내며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이때다!’
“아빠, 저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무리하시면 제 마음이 더 아플 것 같아요.”
“나나…….”
“죄인은 따로 있는데, 아빠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더 그래요.”
내 말에 아빠의 입매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하지만 아빠는 눈에 힘을 꽉 주었다.
“나나, 하지만.”
“제 생각에는 아빠나 저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은 칼릭스 전하가 재판을 주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정보 길드장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때마침 칼릭스 전하는 황족이시니, 황제 폐하는 아니어도 재판을 진행하는 데는 상관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원칙적으로 지워진 황족인 칼릭스가 황비를 처벌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재판을 빌미로 칼릭스는 신분은 당연히 증명된 것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제 정보 길드장이 진행하니, 황비와 리리카는 알아서 정리되겠네.’
그야말로 완벽한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