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로스 공작은 욱신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크윽-!”
‘그럼 지금 제가 나나한테 가서 아버지의 말씀을 전달할게요.’
‘기다릴 것 없이 지금 같이 가서 물어보는 건 어떠냐?’
‘아버지의 마음은 너무 감사하지만, 그건 좀 너무 빠르지 않을까요?’
그건 리미에의 목소리였다.
‘가끔 나나가 저를 보며, 아버지께 불편한 표정을 보여줬거든요.’
‘……그래?’
‘아무래도 나나는 너무 어려서 아직 아버지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던 거겠지만요.’
어색하게 웃던 리미에는 귀엽게 주먹을 들어 보였다.
‘아버지도 참,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나나는 저한테 맡겨주세요.’
‘그래, 리미에 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나도 너처럼 귀족 출신이었다면, 훨씬 편했을 텐데.’
바이칼로스 공작은 더 큰 혼란에 잠겼다.
‘이건 도대체 무슨 기억이지?’
불확실하고 두서없이 비어 있는 기억일 뿐이니, 무시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런 바이칼로스 공작이 한줄기 눈물을 뚝 흘렸다.
고통에 잠긴 그를 살피던 두 아들이 놀라 물었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에이든, 아버지의 상태가 안 좋으신 것 같으니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어.”
“가만히 있어라.”
바이칼로스 공작이 이를 아득, 깨물며 슬라데이체 대공과 나나를 바라봤다.
‘이 기이한 박탈감은 뭐지?’
기억 속 바이칼로스 공작은 나나를 바이칼로스 공작가에 데리고 왔다.
평소 신전과 친분이 있는 공작이었기에, 평민 출신에 신성력을 다루지도 못하는 나나를 데려오는 일은 쉬웠다.
무엇보다 리미에의 요청이었다.
처음 바이칼로스 공작은 고작 평민 출신 나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리미에 곁에 있는 나나에게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나나한테 입양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매우 감격하며 딸처럼 여겨줘서 고맙다던 나나는 그 이후로 공작을 계속 피했다.
‘……그 아이는?’
‘저도 나나가 걱정돼서 지금 방에 온 참이에요.’
리미에가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나나가 집에 있기가 불편한지 자꾸 어디로 도망치네요. 무슨 일 있었는지 아버지는 아세요?’
리미에는 묘하게 불편한 티를 내는 공작에게 보석 머리띠를 조심스럽게 건네줬다.
‘참, 아버지. 나나가 이 머리띠를 아버지께 돌려드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리미에만 챙겨줬던 게 신경 쓰여 입양 얘기를 꺼내며 줬던 보석 머리띠.
어쩐지 머리띠는 쓰레기통에서 꺼낸 것처럼 지저분했다. 그때 공작은 쓰레기통에서 봉지째 버려진 초콜릿을 발견했다.
나나가 공작의 책상 위 초콜릿을 애절하게 바라보기에, 공작이 나나에게 챙겨줬던 거였다.
‘리미에, 나나가 초콜릿을 못 먹느냐?’
‘그럴 리가요. 나나는 초콜릿을 간식 중에서 제일 좋아해요. 얼마나 좋아하는지, 나나의 이가 상할까 봐 걱정할 정도라니까요.’
바이칼로스 공작은 크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 뒤 어울리지도 않게 평민 아이에게 호의를 베풀지도 않았다.
‘왜 이 기억이 이렇게 가슴 아프게…….’
눈앞의 나나가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대공의 품에 안겨 있었다.
바이칼로스 공작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성녀님.”
자기도 모르는 새 소중한 무언가를 대공에게 빼앗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 가지만 여쭤볼 게 있습니다.”
바이칼로스 공작이 그들을 무시하고 떠나려는 대공과 나나의 앞에 다가가 물었다.
“혹시…… 머리띠 같은 장신구를 싫어하십니까?”
“……?”
“그러니까 이건.”
공작은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벌이는 스스로가 이상했다.
때마침 공작의 품에서 초콜릿 하나가 보였다. 공작이 나나에게 애절한 눈빛으로 초콜릿을 주었다.
“갑자기 성녀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드셔주시겠습니까?”
나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게요.”
대공이 나나의 손에서 휙 초콜릿을 빼앗아가 자신의 입에 넣었다.
“앗, 아빠. 뭐예요!”
“초콜릿 같은 건, 아니. 이 제국의 초콜릿 공장을 그냥 너한테 사주마.”
“이미 돈은 충분하거든요. 그래도 저한테 준 선물인데…….”
“어허. 나쁜 놈이 주는 거 먹는 거 아니다.”
바닥에 버려진 초콜릿 껍질, 공작은 멍하니 그 초콜릿 껍질을 바라봤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 껍질이 자신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