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172)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헤어졌을 때보다 조금 더 자란 것 같기는 하지만, 틀림없는 칼릭스였다.

‘다행이다.’

저게 환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 있는 걸 보니 안심부터 됐다.

“칼릭스!”

칼릭스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내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이제 보니 투명한 장벽 같은 게 가로막혀 있었다.

‘완전히 공간이 단절된 건가?’

머리를 굴려보고, 장벽을 두드려도 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애초에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다.

‘이대로 보고 있어야 하는 건가?’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끌어안으며 두 손을 잡아줬다.

“내가 필요하니?”

아벨이었다.

“여기 언제?!”

내가 토끼눈을 뜨자, 아벨이 나른하게 웃었다.

“네가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러 온댔잖아.”

아벨은 내 어깨에 턱을 대며 물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니?”

“그, 그러면 저기 전하를 무사히 데려올 수 있어요?”

그러자 아벨은 입매를 서글프게 내렸다.

“미안. 저곳은 시공간이 완전히 분리된 곳이야. 그래서 저기 있는 존재를 데려오진 못해.”

아…….

‘그러고 보니 그럴 수 있었다면, 아벨이 진작 대공비님을 데려왔겠다.’

칼릭스의 옆에는 초상화로 봤던 대공비님이 살아계셨다.

“아벨은 여기서 대공비님을 본 적 있어요?”

“한두 번 정도?”

아벨이 그리운 눈으로 대공비님을 바라봤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어. 시공간의 틈을 넘으려면, 규격 외의 힘이 필요해서.”

“그렇구나…….”

그러면 칼릭스에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하지만 나나 네가 폐태자에게 잠깐 말을 전할 수는 있어.”

“정말요?”

“그래. 폐태자는 너와 연결된 ‘인연’이 있으니까.”

마주치고 있는 아벨의 붉은 눈동자가 기묘한 빛을 발했다.

아벨이 나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며 마법 주문 같은 것을 노래하듯 속삭였다.

바다에서 파도가 찰랑거리는 것 같은 노랫소리였다.

검붉은 기운이 내 손을 타고 흘러나가 눈앞의 장벽 전체까지 울려 퍼졌다.

“지금이야.”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투명한 장벽에 크고 작은 파문이 일어났다.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으니,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투명한 벽으로 뛰어들었다.

퐁당!

투명한 벽을 넘어가자마자 비눗방울 같은 게 나를 둘러싸면서, 폐태자 근처로 나를 이동시켜 줬다.

“칼릭스! 칼릭스 전하!”

시간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도착하자마자 칼릭스에게 말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저 구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하지만 내가 그대로 가면 미워할 거라고 했죠?”

그때 칼릭스가 어쩐지 이상하다는 듯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잘생긴 칼릭스의 얼굴이 훅 가까워졌다.

‘저주 없는 얼굴이라서 그런가.’

왠지 낯선 느낌에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몰라, 평생 못 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눈을 꾹 감고 고백했다.

“미움받기 싫으면 당장 돌아와요. 내가 칼릭스 전하 말고 다른 사람 좋아하기 전에요.”

그리고 그의 뺨에 쪽, 뽀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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