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172)

세상이 정지된 것 같은 순간이었다.

스산한 바람이 분홍 머리카락을 거칠게 휘날리게 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내 손에선 여신의 숨결을 흡수한 로자리오가 빛나고 있었다.

키아아아악-

방금까지만 해도 날 잡아먹을 것 같던 플로렌티아가 돌처럼 버석하게 굳으며 비명을 질렀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하지?’

원정을 다니며 숱한 마족을 처리했지만, 이렇게 끝장난 모습은 처음 봤다.

‘본질 그 자체가 망가지는 것처럼.’

쩌적, 쩌저적…….

전부 돌이 된 플로렌티아에게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몸통을 가르는 큰 금이 가더니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박살 났다.

“전하……?”

플로렌티아의 가루가 공중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 사이로 폐태자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전하!”

폐태자의 상태는 빈말로라도 좋지 않았다.

‘싸우고 있을 때만 해도 멀쩡해 보였는데!’

폐태자의 한쪽 팔은 망가진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넝마가 된 옷과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

흐른 피로 눈도 뜨기 어려워 보이는 와중에도, 폐태자는 걱정스러운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도망가…….”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가 왜 전하를 두고 가요.”

나는 급히 폐태자를 치료하기 위해 신성력을 일으켰다.

방금 전 신성력을 계속 사용하긴 했지만, 이 정도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왜…….”

‘신성력이 통하지 않아?’

자세히 보니, 폐태자의 몸 전체에 검은색 저주가 퍼져 있었다.

그 저주가 신성력을 강하게 거부하는 거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 때문이다.

‘방금 전 마족을 상대하다가 다른 기운들을 너무 많이 소모한 거야.’

저주가 강해져서 폐태자를 잡아먹기 시작한 거다.

휘오오오-

강렬한 바람이 폐태자의 주위를 맴돌았다. 폐태자가 고통에 눈을 일그러뜨렸다.

“크윽!”

폐태자는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린 채 억누르는 목소리로 외쳤다.

“빨리 도망가라니까!”

검은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솟구쳤다. 이빨을 드러내 폐태자를 씹어먹는 듯했다.

폐태자가 날 밀쳐낼 것처럼 손을 뻗었다.

나는 금빛 오오라를 뿜는 로자리오를 꼭 쥐었다.

“싫어요!”

그리고 폐태자를 향해 돌진했다.

정확히는, 공간 전체를 잡아 먹어치우는 폐태자의 저주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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