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꽤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무너지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고아원에서 탈출한 뒤 힘들게 살았던 삶.
미래의 기억이 아니었다면, 리미에를 따르다 배신당해 죽을 뻔했던 기억까지.
“……빌어먹을.”
벨리알이 까득 이를 깨물며 주먹을 쥐었다. 울면서 얘기하던 내가 흠칫하자, 벨리알이 힘겹게 입매를 올렸다.
“도토리, 계속 얘기해”
“으, 응.”
쥬테페의 반응 역시 벨리알처럼 무척 심각했다. 겉으로 티가 나는 벨리알과 달리 쥬테페는 더 위험하게 웃을 뿐이었다.
토끼 눈이 된 나는 쥬테페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내 이야기가 믿겨져?”
긴장된 것처럼 조바심이 생겼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꽤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계속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가족들에게 내 진실에 대해 털어놓는 이 순간.
벨리알과 쥬테페가 서로를 바라봤다. 주먹을 쥐고 있던 벨리알이 와락 나를 끌어안았다.
“믿어.”
벨리알의 목소리에서 물기가 느껴진다 싶더니 내 어깨가 축축해졌다.
“도토리 거짓말할 리가 없잖아.”
“나 거짓말 되게 잘하는데?”
“하지만 이건 진짜잖아.”
겨우 진정했다고 생각했는데, 괜히 다시 울컥 눈물이 솟았다.
“사, 사실 직접 겪었다고 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
“…….”
“그리고 뭐랄까, 내가 슬라데이체에서 그동안 오빠들을 속이고 있었던 거니까 나한테 화를 낸다 해도…….”
“아니야.”
벨리알이 다짜고짜 말했다.
“그딴 거 신경 쓰지 마. 그게 뭐라고.”
두서도 없고, 논리도 없는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런 벨리알이 너무 좋아서, 그게 너무 기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흐엉, 벨랼…….”
쥬테페는 울고 있는 내 이마를 가볍게 콩 쳤다.
“멍청이, 헛똑똑이.”
나는 울먹이는 얼굴로 쥬테페를 노려봤다. 쥬테페가 애정 어린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나도 너한테 말하지 않은 거 많아. 저 생각 없는 형도 모든 걸 말하진 않아.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이 다 없어지냐?”
“그래도 나는…….”
‘입양아.’
입양해도 가족이라지만, 그래도 혈연은 아닌 사이.
심지어 난 슬라데이체라면 다 있는 마기도 없다. 슬라데이체가 아니니까.
똑똑하고 사악한 쥬테페는 내 불안을 단번에 눈치챈 모양이다.
“나한텐 똑같아. 아무리 거짓말해도 우리는 가족이잖아. 가족이 그렇게 쉽게 깨지는 줄 알아?”
나는 쥬테페의 말에 속내를 위로받아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투정부리고 싶어졌다.
“몰라. 쥬빼가 더 멍청해.”
“뭐?”
“그렇게 똑똑하면 쥬빼가 먼저 알아서 말해줬어야지. 말할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쥬테페는 미간을 좁혔지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 헛똑똑이가 이상한 데서 예리하단 말이야.”
“헛똑똑이 아니거든?”
쥬테페가 부끄러운 듯 귓불을 붉히며 삐죽였다.
“그만 울기나 해. 그렇게 울다가 더 멍청해지면 어떡해.”
벨리알이 급발진했다.
“야, 도토리는 아무리 울어도 똑똑하거든?”
“형은 가만히 있어!”
쥬테페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소리쳤다. 어른스럽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쥬빼, 바보 같아.”
나는 울다가 피식피식 웃었다. 벨리알이 휙 나를 안아 들며 볼에 얼굴을 부볐다.
“그러게, 사실 저놈이 제일 헛똑똑인 거 아니냐?”
“내가 형한테 그런 소리 들을 정돈 아니거든?”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꼴이 정말 엉망이다.
하지만 나는 그 엉망인 꼴이 너무 따뜻해서 헤헤 웃었고, 오빠들은 그런 나를 다시 안아줬다.
‘오늘 돌아가서 오랜만에 그림일기 써야지.’
벨리알과 쥬테페, 내가 사이좋게 울면서 웃는 얼굴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그려야지.
‘맨날맨날 오늘을 생각할 수 있게.’
나 이렇게나 행복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