펙토르 남작을 둘러싼 슬라데이체의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졌다.
“아빠, 그냥 보내요.”
나는 슬그머니 아빠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이대로 널 모욕한 놈을 내버려 두란 말이냐?”
“그래도 전쟁은 싫어요.”
나는 볼을 부풀리며 필살의 애교를 부렸다.
“바이칼로스와 싸우면 아빠와 또 멀어지잖아요.”
스산한 응접실에 훈훈한 온풍이 불려던 찰나, 펙토르 남작이 겁을 상실하고 소리쳤다.
“거 보십시오, 공녀님께서도 저희 바이칼로스 공자님과의 결혼을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예?
“공녀님 본인의 혼인인 만큼 이 결혼이 얼마나 이득인지 잘 알고 계시는 겁니다.”
너 임마, 내가 널 살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자꾸 이득 타령하는 게 웃기지도 않네. 진짜 계산해 보고 지껄이는 소리야?”
쥬테페가 웃으며 나섰다.
“너도 들어봤지? 나나는 마시멜로 상단의 상단주야. 네 그 잘난 공자님은 뭘 했지?”
“에, 에이든 공자님께선 전쟁터에서 많은 공로를…….”
“거봐, 별것도 없는 게.”
에이든 역시 동년배에 비해 뛰어나긴 했지만, 나처럼 엄청난 이야깃거리가 있는 건 아니었다.
펙토르 남작이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대공님이 픽 웃었다.
“바이칼로스 그놈한테 딱 잘난 점이 있다면,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힌다는 거다.”
펙토르 남작의 안면이 목이 졸리는 것처럼 새파래졌다.
마기로 압박하고 있는 거다.
“더 큰 단점이 있다면, 자기 주제 파악하지 못하는 머리를 가졌다는 것이고.”
펙토르 남작은 대공님의 기운을 더 감당하지 못하고 게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대공님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나나. 저놈을 살리고 싶으냐?”
“네?”
“네가 웬만해선 피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방금 얘기했던 것도 그래서였겠지.”
대공님이 눈을 보았다.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네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할 마음은 없다.”
“……아빠.”
“그러니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 다만, 이 아빠는 네 명예를 더럽힌 놈들을 멀쩡히 살려두고 싶지 않구나.”
나는 게거품을 물며 쓰러진 펙토르 남작을 힐끔 봤다.
‘바이칼로스도 아빠의 마탑 전쟁 소식을 알았을 거야.’
그런데도 펙토르 남작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바이칼로스는 제국 최고의 가문이라는 오만에 취해 있어.’
상대의 오만은 굉장히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써먹기는 어렵다. 내가 아니라 슬라데이체를 향한 거니까. 슬라데이체의 위신이 상할 수도 있고.
“아빠, 그러면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