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에게 진심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조금 시무룩했다.
왜냐면-
“하지만 대공님은…….”
어쨌거나 나에게 그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대공님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으부-!”
무언가 내 볼을 강하게 짓눌렀다.
엄한 얼굴의 쥬테페가 내 볼을 무슨 빵을 반죽하는 것처럼 쫙쫙 늘렸다가 찌부러뜨리기를 반복했다.
마치 날 4살 때 놀렸던 것처럼!
“으구 무우 주수우(이게 무슨 짓이야)!”
“혼자 멍청하게 우울해하지 마.”
“…….”
“아버지와 우리는 버려졌다고 생각한 게 맞아. 상처도 받았고 배신감도 있었던 거 같아.”
쥬테페는 흔치 않은 진지한 녹금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래도 네가 온 후 그 감정을 내려놓기로 했어.”
그리고 내 뺨을 풀어주었다.
“미워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그런 게 아니라 상처받았는데 그걸 몰라서 미워한다고 생각한 거였다고.”
“……그래.”
“아야!”
이번엔 벨리알이 내 뺨을 쭉 잡아당겼다!
“네가 알려줬잖아. 도토리.”
“으그 흐즈마라느끄(이거 하지 말라니까)!”
“젠장. 형만 아니라면 그냥 네가 마시멜로라는 거에 기뻐할 텐데.”
응? 형?
이해할 수 없어 동글동글한 눈을 깜빡였다.
쥬테페는 한숨을 푹 쉬었다.
“큰형이 있다는 건 기억하지?”
음. 그렇지.
대공비님이 사라지고 난 다음 아버지와 싸우고 성을 나간 대공자.
들은 바로는 어머니가 자신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찾아 나섰다고 한다.
대공님은 이렇게만 말씀하시긴 했지.
‘제1마탑에서 마탑주 직속 마법사로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아마 어머니의 자취를 찾기 위해 마법사가 되고, 무슨 마법을 연구한다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이야기를 피하시기는 했지만 엘은 나에게 조금 더 이야기를 해주었다.
‘차기 마탑주가 될 정도라는 이야기가 많으니 아마 대공성으로 돌아오실 생각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딱 6년 전부터 마탑에서도 나와 어디로 떠나셨다는 얘기만 있습니다.’
음……. 그게 전부이긴 하지만 일단 알기는 아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쥬테페가 말을 이었다.
“우리도 어머니가 성을 나간 이후 만난 적은 없어.”
“그렇구나. 그런데 왜?”
“문제는 형은 나가기 전까지 어머니에게 여동생이 있다고 믿은 거지. 그래서 어머니가 집을 나갈 이유가 없을 거라고 믿었고.”
그 말에 아무 잘못도 없건만 무언가에 찔린 사람처럼 마음이 두근거렸다.
쥬테페는 복잡해지는 미래가 귀찮은 듯 이마를 짚었다.
“네가 마시멜로라는 이름을 쓴다는 걸 알면 무슨 반응일지 몰라서 조금 복잡하긴 하지.”
“그래도 이미 알 거야. 난 이제 유명하니까.”
쥬테페와 벨리알이 날 쳐다보았다.
왜지. 왜 저렇게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지.
“유명해질 필요가 없었는데.”
둘은 동시에 하아- 하고 한숨을 내뱉더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지켜줄게. 도토리.”
“걱정 마. 형은 강하지만, 나도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는 둘은 진지해서 정말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긴 했지만.
“아니야.”
난 그들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으면 이미 오지 않았을까?”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형제면서 모르겠어?”
벨리알과 쥬테페는 결정한 일에 물러서지 않는다.
다른 점이라면 벨리알은 바로 실행하고, 쥬테페는 은밀하게 움직인다는 것뿐이다.
그러니 첫째 대공자도 날 없애고 싶었으면 그랬을 것이다.
‘날 뒀다는 건 무슨 이유가 있어서겠지.’
그러니 괜찮다.
난 방긋 웃었다.
“걱정 마! 나는 잘할 수 있어. 철벽 벨리알하고도 친해지고, 성격 나쁜 쥬테페랑도 친해졌는걸?”
“…….”
“…….”
둘은 반박 대신 침묵을 택했다.
* * *
쫑쫑이 신권을 빌려오는 날, 그날은 대공님이 내게 손수 책을 읽어주는 날이다.
“-그렇게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 위한 여정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이번엔 열린 결말이네.
항상 꽉 닫힌 해피엔딩이었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
난 만족스러운 얼굴로 책을 덮었다.
“있잖아요, 대공님.”
“그래.”
“내 마시멜로라는 이름 대공비님께서 지으셨어요?”
등 뒤의 대공님이 멈칫 굳는 게 느껴졌다.
난 휙 돌아보았다.
눈을 끔뻑이며 쳐다보자, 날 내려다보던 대공님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혹시 무슨 의미인지 말해줄 수 있어요?”
대공님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이내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조금 느릿한 손길이 그때를 회상하는 듯했다.
“취향이 특이하게도 단 음식을 좋아했다. 마치 너처럼.”
또또, 내가 특이하다고 한다.
난 볼을 부풀렸다.
“달달한 간식은 기분을 좋게 한다구요. 그 기쁨을 모르는 대공님이 이상해요.”
“똑같은 소리를 하는 것도 신기하군.”
대공님은 느릿하게 웃었다.
“그중에서도 마시멜로를 제일 좋아했지. 그게 제일 자길 행복하게 하니 딸이 생기면 모두의 행복이 되길 바라서 그런 이름을 붙였을 거라고 했다.”
그렇구나…….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대공비님은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말로만 들어봐도 따뜻한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아쉽다.’
한번 만나 보고 싶다.
“우아-!”
그런 생각에 빠져 있던 내 몸이 둥실 떠올랐다.
대공님이 날 안아 들었다.
“만나 보러 갈 테냐.”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끔뻑였다.
“보러 가자. 마리엘을.”
대공님의 집무실 뒤에 문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른 공간이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가족 초상화가 있었다.
“와.”
벨리알과 쥬테페가 작아!
이렇게 귀여웠던 시절이 있다니.
‘그리고…….’
옆에는 다른 남자애도 있었다.
전에 벨리알과 쥬테페를 보고 리틀 대공님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큰 착각이었어.’
이 사람이야말로 리틀 대공님이야.
‘이 사람이 대공자인가?’
저절로 감탄이 나오게 하는 외모에 주춤주춤 도망가게 하는 분위기.
저 어린 나이에 이런 분위기를 내기 어려운데.
‘거기다가…….’
시선을 올리니 한 여성분이 있었다.
활짝 웃고 있는 여성분.
부드럽고 폭신해 보이는 곱슬거리는 분홍빛 머리에 녹금안 눈동자.
사랑스러운 미소를 가진 여성은 친근하게 대공님에게 기대서 있었다.
신기한 부분이라면 쥬테페는 빛을 비추면 금안처럼 보이는 녹금안인데, 이분은 녹안에 가까운 금안이라는 점이랄까?
‘나랑 닮았나?!’
완전 미인이신데!
이런 분과 나랑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니.
황송함에 몸 둘 바를 몰라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으니 대공님이 말했다.
“걱정 마라. 네게서 마리엘을 투영해 보고 있지 않다. 내게 나나, 너는 너다.”
응?
대공님은 무슨 오해를 하는지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딸이다.”
“괜찮아요. 알고 있어요.”
난 방긋 웃었다.
‘이제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아.’
무섭지 않다. 이곳은 내 집이다.
벨리알, 쥬테페, 그리고 대공님은 내 가족이다.
그들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래.”
대공님이 그제야 걱정을 지우고 웃었다.
“다만 정말 대공비님과 이대로도 괜찮아요?”
“…….”
“알고 있어요. 저거 찢은 흔적이요?”
모른 척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대공비님이 있는 부분에는 길게 찢어졌다가 다시 이어 붙인 흔적이 있다.
마치 원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사실 찾고 싶은 거 아니에요?”
대공님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나에게 속내를 말했다.
“어떻게 되든, 얘기는 한번 해보고 싶군.”
“…….”
“그게 미련이다.”
그래. 그거면 됐다.
“그러면 우리 한번 찾아봐요.”
혹시 모르지.
무슨 이유가 있어서 사라진 것일지도.
대공님은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래. 슬슬 그럴 때가 되었지.”
그 미소에 은은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대공님은 여전히 대공비님을 사랑하고 있었다.
* * *
‘신기하단 말이지.’
사람은 자주 만나지 않으면 관계가 끊어지게 마련인데.
‘폐태자랑은 그러지 않아.’
물론 내가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긴 했다.
만나면 이런저런 말도 많이 하고. 못 만나면 편지도 하고.
그렇게 우리는 꽤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오늘도 난 폐태자에게 보낼 편지 써서 카밀라를 통해 보냈다.
그리고 곧 기쁜 소식을 들었다.
“드디어 개발이 거의 끝났다고 합니다.”
“정말?!”
기쁨에 폴짝 자리에서 뛰어올라 카밀라를 끌어안았다.
“다 카밀라 덕분이야!”
나는 그동안 고민했다.
뾰루지가 나지 않는 화장품이 있지 않을까 하고. 전생에는 그런 기능성 화장품이 많았으니까.
‘지금은 귀족들이 사제의 신성력으로 치료하지. 피부과처럼.’
식물학자 데네브한테 부탁도 했었다.
‘어성초 말입니까?’
‘응! 그런 식물을 찾아서 개량해 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운 좋게 어성초를 발견해 화장품 개발에 착수했었다.
그게 드디어 끝났다니!
돈 굴러들어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두 주먹을 꼭 쥐고 어깨를 부르르 떨며 카밀라에게 물었다.
“그럼 상용화는?”
“당연히 얼마 안 남았죠.”
“역시 카밀라야!”
완벽해, 정말.
배부른 고양이처럼 고르릉거리며 카밀라에게 온몸을 맡겼다.
정말 모든 게 착착 진행되서 너무 기쁘긴 한데.
‘리미에가 너무 조용해.’
그게 조금 불안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리미에가 날 찾아온 게 우연이 아니라면.
‘슬라데이체에 있더라도 날 데려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조용한 것일까.
……아니야. 괜히 우울한 생각하지 말자.
난 눈을 꼭 감고 카밀라에게 더 매달렸다.
* * *
카밀라가 호언장담한 대로 화장품은 완벽히 상품화가 됐고, 사람들 앞에 내보낼 준비도 완벽했다.
‘그걸 위해 파티를 열려고 했는데…….’
필요한 명단을 추리기까지 했지만, 모두 엎어졌다.
이유가 있었다.
[내 정원의 여름이 다 져버렸구나. 네가 지금 그 쓸쓸함을 다 달래줬으면 하는데.]
급하게 황후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결국 난 급하게 황궁으로 향했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
“황후 폐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에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제가 보낸 장미는 마음에 드셨나요?”
“네 장미를 보니, 황궁의 장미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끌어 올린 황후의 빨간색 입술이 찻잔으로 가려졌다.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가 나를 살폈다. 그리고 이내 나에게 물었다.
“널 알게 된 지도 시간이 꽤 지났구나. 넌 그동안 내게 참 많은 기쁨을 주었어.”
“감사합니다.”
“폐태자와도 그랬으려나?”
보라색 눈동자에 냉정한 빛이 서렸다.
“폐태자는 어떻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