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맑게 웃자, 황후가 날 보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네 의사가 확고하다면, 네가 원하는 상을 주마.”
“감사함미다.”
황후의 옆자리로 옮겨야 하나 고민하며 살짝 걸어간 와중, 황후가 날 가볍게 들어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무릎이라고?’
대부인과 다른 부인들도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황후는 아무리 친한 귀부인도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황후가 된 뒤로는 더더욱.
내가 놀라서 눈을 똥그랗게 뜨자, 황후가 태연히 웃었다.
“왜 그러느냐. 아가가 바란 대로 쓰다듬어 주려 하지 않느냐.”
보드라운 황후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분홍색 머리에 닿았다.
“아이를 쓰다듬는 건 오랜만이라, 괜찮을지 모르겠구나.”
“황후 폐하 손길 좋아요.”
난 햇살을 받는 고양이처럼 얌전히 황후의 손길을 받았다.
살짝 경직된 듯했던 황후의 손이 점차 부드럽게 풀렸다. 눈으로 안 봐도 황후가 은근히 기뻐하는 게 느껴졌다.
“날 무서워하기는커녕, 가까이 오려 하는 아이는 네가 처음이란다.”
“…….”
“솔직히 좀 기쁘기도 해.”
황후는 내 머리를 쓰다듬다가 시녀에게 시켜 빗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보석함에서 장신구를 고른 뒤 정성스럽게 머리를 땋아주었다.
‘머리를 진짜 잘 땋아주시네.’
남의 머리라곤 만져보지도 않았을 것 같은 고귀한 모습인데, 그녀는 연습을 해왔던 것처럼 머리를 땋아주는 데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다정해.’
“다 됐구나. 거울을 좀 보겠니?”
시녀가 거울을 보여주자, 슬라데이체 시녀만큼 능숙하고 예쁘게 땋은 벼 머리가 보였다.
끝에는 아까 황후가 고른 장미 보석이 달린 리본이 반짝였다.
“너무 예뻐요!”
그때 거울 너머로 황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아까 전까지 지어주던 그리운 표정과는 달랐다.
‘고통을 참는 것 같은데…….’
번뜩 황후에게 지병이 있다는 걸 떠올랐다.
‘악성 편두통이었나?’
황후는 웬만한 병은 다 약점이라 생각해 감췄기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않았다.
‘폐태자 때문에 아들의 위치가 불안정해서…….’
그녀는 누구에게나 약점 없는 황후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신성력으로 병을 바로 고칠 수야 없지만.’
“황후 폐하. 예쁜 머리 감샤함미다.”
“나도 즐거웠단다.”
나는 황후를 끌어안는 척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 황후의 볼에 척 뽀뽀했다.
그 순간 슬그머니 신성력을 보내 빨리 황후의 아픔을 완화시켜줬다.
‘됐다!’
그렇게 심한 병은 아니었는지, 가벼운 접촉으로도 바로 진정됐다.
황후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아가.”
나는 그런 황후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이고쓴 보답임미다. 황후 폐하,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행복이라.”
황후는 내가 뽀뽀한 볼을 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느슨하게 웃었다.
황후가 온화한 미소를 짓자, 일순 봄날의 햇살처럼 빛나 보였다.
“내게 행복은 몰라도, 즐거움은 생긴 듯해.”
황후는 제가 자신을 치료했다는 사실을 바로 눈치챈 듯했다.
“헤어지기 전에 한 번 안아봐도 되겠니?”
“물론이에요!”
황후는 기쁜 듯 나를 꽉 끌어안았다.
“잠시 듣고 있으렴.”
황후가 내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며칠 사이 날 찾아온 영애가 하나 있었다. 내 근심을 해결해 줄 테니, 저를 어여삐 해달라나.”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황후는 자연스럽게 내 등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그 영애의 이름은 리미에 바이칼로스다. 스스로를 성녀라 칭했지.”
“…….”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날 치료한 너완 다른 아이였다. 이상하게도 네게 이 얘길 말해줘야 할 것만 같았단다.”
마지막으로 황후는 내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춰줬다.
“공녀, 자주 찾아와 내 행복이 되어주렴.”
그 말에 모든 귀부인이 놀랐다.
“황후 폐하, 공녀가 정말 마음에 드시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황후 폐하께서 행복이라고 한 것이 얼마 만인지…….”
하지만 난 그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리미에 생각에 잠겼다.
‘리미에가 움직이고 있었어.’
나도 모르는 사이, 물 밑에서.
소름이 끼치도록 은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