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환한 미소로 대신관을 바라보았다.
“그래소 여페 있는 나나에게 집챡하는 고야.”
난 아이니까!
왠지 최근 너무 다정하다 했어. 나로 인해 아이의 귀여움을 알게 된 거라면 이해가 된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대신간은 십게 후겨니늘 드릴 수 엄스니까(이해해. 대신관은 쉽게 후견인을 들일 수 없으니까).”
후견 제도.
정확히는 한 명의 사제가 한 명의 아이를 후원할 수 있는 제도.
후견인의 권력이 높을수록 신전에서의 권력도 높기 때문에 대신관 같은 사람은 후견인을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래도 내부 암투가 일어날 수도 있고.
“하지만 곡종 마! 나나가 기차는 일 옵는 아이 차자 주께!”
내 능력이라면 그 정도는!
‘어라?’
하지만 대신관은 ‘지금 무슨 헛소리지’ 같은 구겨진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내가 아이가 좋다니. 머리가 어떻게 됐군.”
“하지만 계쏙 나나 부르자나. 아이 조아져서 아니야?”
“아이가 좋았으면 신전 보육원이나 대신전 교육원에 갔겠지.”
그건 맞는 말이야. 하지만…….
“교육언 애드른 곤부하느라 바쁘고, 보육언은(교육원 애들은 공부하느라 바쁘고, 보육원은)…….”
“그래. 보육원은 부패했지. 내가 가면 조금 못나고 돈이 없는 아이들은 때리고 가둘 것이다.”
난 그 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잘 알고 있지. 대신관이라면 전혀 모를 줄 알았는데.
대신관은 왜 그런 눈으로 보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보육원 출신 고아 처음 보나?”
“대신간 고아여쏘?”
“그래. 너도 모를 만큼 작은 마을의 보육원 출신이지.”
그래서 저렇게 자세히 아는구나.
신전 보육원은 작으면 작을수록 더 부패한다.
“하지먄 대신간 금안이쟈나.”
금안에, 대신관 정도 능력이면 바로 교육원에 갔을 텐데, 왜 보육원이지?
대신관이 자신의 긴 머리를 척 가리켰다.
“앞머리가 길어서 아무도 금안인 걸 몰랐다.”
“아.”
“거기다 이런저런 일로 보육원을 일찍 뛰쳐나왔지. 모를 만도 하다.”
추억 속에 빠진 듯 대신관의 눈이 가라앉았다.
잘 웃지 않는 그의 입술이 어쩐지 살짝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한 남자가 날 주웠지. 지금 생각해도 참 오지랖 넓은 사내였어.”
“누군데?”
“교황.”
난 천천히 눈을 크게 떴다.
전생에 교황이 세상을 하직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신전을 떠났던 대신관.
“그러니까 나도 그 사람이 깨어날 때까지 옆에 있어 줘야 한다. 은인이니까.”
서글픈 소리를 하면서도 대신관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이미 너무 많은 슬픔을 겪어서 무뎌진 사람처럼.
난 그런 대신관을 바라보다가 툭 던졌다.
“아버지네.”
“아…… 버지?”
잠시 눈을 깜빡인 대신관이 희미하게 웃었다.
“나쁜 아버지군. 아들을 두고 너무 오래 자고 있으니까.”
“…….”
“교황 예하께서 잠드는 바람에 풀지 못한 숙제가 너무 많다. 아직 단서 하나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지.”
애매모호한 말이지만 내 뒷목이 쭈뼛 섰다.
현재에도 과거에도 풀지 못한 신전의 숙제라면 하나다.
“성…… 녀?”
“알고 있나? 하긴 네 정보력이라면 모르는 게 신기할 거 같군.”
“나나는 그로케 대단하지 안-”
“그가 나에게 성녀의 이야기를 해준 적은 있다. 신화 속 이야기였지만.”
내 말은 조금도 듣지 않네, 정말!
내가 입술을 뿌 내밀고 있든 말든 대신관은 저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그리고 그가 잠든 뒤 자칭 성녀라는 여자애가 찾아왔다.”
내 심장이 덜컹거렸다.
‘리미에다.’
리미에와 관련된 것들은 다 무시하고 살아도 그녀는 이렇게 타인의 입을 통해서 나에게 다가온다.
아무리 내가 포섭해 놓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내 목에 목줄이 매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
‘무서워.’
죽음으로 인한 충격은 내 인생을 산산조각 내어 버렸다.
살해당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그녀의 들러리로 살고 싶지 않다.
“너, 정말로 괜찮은 거 맞나?”
대신관이 내 팔을 잡고 나서야 정신을 번쩍 차릴 수 있었다.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리미에가 연락할 거라고 이미 알고 있었잖아.
‘대신관에게 너무 곁을 줬나 봐.’
이렇게까지 놀랄 필요는 없는데.
난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서 내려왔다.
“나, 나 가께.”
“……그래. 참, 내일은 오지 않아도 된다.”
난 드레스를 만지작거리다 움찔했다.
내일은 못 올 거 같다고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슬쩍 대신관을 올려다보았다.
“왜……?”
설마 내 마음을 들켰나?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는 듯 대신관은 덤덤히 말했다.
“내 생일이다.”
“응……. 응?!”
지, 지금 뭐라고?
내가 번쩍 고개를 들자 대신관이 왜 그런 표정을 짓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지? 왜 놀라나. 난 생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나 설마?”
“나 대신간처럼 선격 안 나빠! 그롤 리가 이쏘?”
“이봐. 나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 그롬 내일 대신간 탄신회 여는 거야?”
“그런 걸 왜 해.”
난 눈을 끔뻑였다.
“하지먄…… 대신간이자나.”
“나도 고아다. 아무도 진짜 내 생일이 언제인지 몰라.”
“아까 생일이라지 아나쏘?”
“태어난 날이 아니라 교황 예하께서 멋대로 내 생일이라 정해준 거지.”
대신관은 팔짱을 끼고 흠 소리를 냈다.
“왜 그런 표정이지?”
“……그로묜 이제 누가 대신간 생일 챙겨죠……?”
“누가 챙겨줄 필요가 없다.”
그 생일을 만들어준 사람이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니까.
대신관이 자조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더 이야기하기 싫다는 듯 등을 돌리고 오른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그러니 내일은 오지 마. 오랜만에 교황 예하나 보고 주절주절 얘기나 할 거니까.”
“……오 꺼야.”
“뭐?”
“올 거야! 그니까 기다료!”
난 주먹을 꽉 쥐고 외쳤다.
대신관이 뭐라고 하든 듣지 않고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리미에는 무서워.’
하지만 대신관은 리미에가 아니야. 아무도 그의 생일을 챙겨주지 않으니까. 내일이 그의 생일이라는 건 나랑 교황만 아니까.
그러니까 무서워할 필요 없어.
‘아무리 멋대로 정한 생일이라도 혼자 있는 생일은…….’
내 머릿속에 전생에 언제일지 모르는 생일을 기리며 혼자 흙으로 케이크를 만들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던 내가 떠올랐다.
난 입술을 꾹 다물었다.
‘너무 슬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