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잠깐만!
“벨…….”
난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느낀 괴리감을. 하지만 벨리알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난 조용히 내가 들고 있는 <토끼 쫑쫑이> 책을 내려다보았다.
책엔 외로운 한 토끼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표지에 그려져 있는 그 외로운 등이 왠지 벨리알과 비슷해 보였다.
대공님은 날 데리고 의무실에 찾아갔다.
그리고 어디서 구해 온 건지 내가 붙여준 것과 똑같은 병아리 밴드를 내 무릎에 붙여주며 말했다.
“원래 저런 아이다. 크게 신경 쓰지 말아라.”
원래 저런 게 무엇일까.
난 책을 꼭 쥐고 발을 동동 굴리며 대공님에게 말했다.
“머가요?”
“성격 말이다. 마기를 약하게 타고난 것에 압박감을 느끼는지, 언젠가부터 삐뚤어지더구나. 적당히 이해해라.”
“그고 문제 아녜요.”
난 고개를 도리 저으며 물었다.
“대곤밈 벨랼에게 야카다 해쏘요. 벨랼 노력하눈데.”
대공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난 볼을 부풀리며 책을 꽉 끌어안고 말했다.
“대곤밈 나빠써요!”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는지, 대공님은 어딘지 충격받은 얼굴로 날 보았다.
그리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족은 욜심히 하는 고또 인전해 죠야 해. 벨랼 욜심히 해. 약하단 말로 무시해손 안대. 벨랼 대곤밈보다 한참 오료. 그로니 약한 고 당욘한 고야(가족은 열심히 하는 것도 인정해 줘야 해. 벨리알 열심히 해. 약하단 말로 무시해선 안 돼. 벨리알 대공님보다 한참 어려. 그러니 약한 건 당연한 거야).”
“나보다 약한 게 당연하다고.”
대공님은 뭔가 충격받은 얼굴로 날 보았다.
난 그런 대공님의 팔에 가볍게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때찌!”
“……이게 때린 건가? 아프지도 않은데.”
“혼낸 고예요! 이제 혼나쓰니까, 담부턴 그로묜 안 대. 약한 고 중요하지 아나요. 가족이쟈나요. 가족은 소중한 고야. 벨랼 욜심히 하니까 지금도 강해.”
대공님은 잠시 눈을 크게 뜨나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가족이라면 그래야지. 내가 나빴다.”
그러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이 마음이 벨리알에게도 전해져야 할 텐데.’
약한 건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벨리알은 전혀 약하지 않다. 이미 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고, 지금도 충분히 강하다.
난 옆에 둔 책을 들고 침대에서 폴짝 뛰어 내려왔다. 벨리알에게 꼭 알려줘야만 했다.
“이제 안 아픔미다(이제 안 아픕니다).”
그러고 서둘러 의무실을 나갔다가 다시 문틈으로 빼꼼 안을 바라보았다.
뒤를 돌아보는 대공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갑자기 마주친 시선에 난 우물쭈물하다가 본심을 전했다.
“뵹아리…… 고맘슴미다.”
그 말에 대공님이 성큼성큼 다가와 날 번쩍 들어 올렸다.
“선물은.”
넹? 선물이요?
밴드를 붙여준 거에 무슨 선물을 줘야 하지?
하지만 대공님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난 책을 든 손가락을 꼼질거리다가 에잇, 모르겠다, 하고 대공님의 볼에 쪽 뽀뽀를 했다.
“주신밈 추뽁!”
그러자 대공님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날 내려 주었다.
엉엉. 언제까지 이 쪽팔린 짓을 계속해야 하는 거지. 불행하게도 왠지 여기서 끝날 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