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172)

사람들의 호의에 익숙한 루이스는 적의 가득한 시선에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내, 내가 언제 그랬다고. 너 지금 사람을 뭘로-”

하지만 난 다르지.

화병이 깨지면서 흐른 물까지 쫄딱 젖은 나는 누가 봐도 불쌍해 보였다.

“나나 몽춍해소 루이스하테 얀보 안 한다고 해쨔나. 나나 가테니 욘서해 쥬쎄요(나나 멍청해서 루이스한테 양보 안 한다고 했잖아. 나나 갈 테니까 용서해 주세요).”

서럽게 뚝뚝 흐르는 눈물을 팔로 힘겹게 닦아 내린 나는 궁지에 몰린 루이스에게 말했다.

“그치만 슬라데체 루이스 꼬 아냐. 대곤밈 꼬야(그렇지만 슬라데이체는 루이스 거 아니야. 대공님 거야).”

“이게 다 무슨 소리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로 대공이 싸늘한 얼굴로 걸어들어왔다.

“감히 슬라데이체가 누구의 것이라고?”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에 방 안의 온도가 한층 낮아진 것 같았다.

“저,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나, 나나가 거짓말을 한 겁니다. 저와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모함하고 싶었나 봅니다.”

대공은 무표정한 얼굴로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네 입으로 나나가 너와 친하다지 않았나.”

“그건…….”

“처음부터 거짓을 고한 네가, 감히 내 것한테 거짓을 들먹여?”

대공의 분노를 직면한 루이스는 덜덜 떨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이게 마기?’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겁에 질린 루이스의 바지춤이 축축해졌다.

“루이스. 너 이게 무슨!”

대공을 따라 나온 고위 사제가 새파랗게 질려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이 황금 같은 기회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할망정 무슨 짓을! 거기다 말도 안 되는 추태까지!”

“사제님. 그게 아니라요…….”

“조용.”

대공은 소란이 거슬린다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요란을 떨던 고위 사제부터 루이스까지 모두 조용해졌다.

대공이 턱짓으로 루이스를 가리켰다.

“내가 저놈의 말을 신전의 뜻이라 여겨도 되겠나?”

자칫하면 슬라데이체와 신전의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신전이 슬라데이체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라.”

긴장한 고위 사제가 침을 꿀꺽 삼켰다.

“슬라데이체 대공님. 저 아이는 당장 파문하겠습니다.”

“사, 사제님! 파문은…….”

“넌 방금 신전과 슬라데이체의 갈등을 조장했다! 사제의 본분은 침묵. 사소한 것 하나 지키지 못한 놈이 무슨 사제가 되겠다고 하느냐!”

앞길이 완전히 막혀 버린 루이스의 눈동자에 절망이 서렸다.

루이스가 좋은 집안의 자식이라 해도 그는 차남이다. 파문당한 이상 그가 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나나. 안 다쳤나?”

대공이 주저앉은 나를 안아 들었다. 내 몸을 안아 드는 손이 아주 섬세했다. 소중한 것을 대하듯이.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그저 안기는 것만으로도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녜. 갠차나여.”

“앞으로 저놈은 네 앞에 나타나지 못할 거다. 방으로 가서 쉬어라.”

고위 사제가 대공의 품에 폭 안긴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공님. 나나 사제의 방이라는 건, 설마 저희 쪽에 돌려보낼 생각이…….”

“지금 누구 덕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지 모르는 건가?”

고위 사제를 보며 픽 입꼬리를 올린 대공이 싸늘하게 말했다.

“이제 이 아이는 내가 데리고 있겠다.”

“……!”

“가서 신전에 전해라. 앞으로 오는 놈들은 모두 사지를 찢어 자비로운 신의 품으로 보내주겠다고.”

말을 마친 대공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대공가의 기사들이 고위 사제와 루이스를 대공가에서 빠르게 끌어냈다.

품에 안긴 나는 고개를 빼꼼 들어 대공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침 대공 역시 시선을 내려 눈이 마주쳐 버렸다.

‘앗. 눈이 차갑다. 무서워.’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대공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원래 저놈이 저렇게 괴롭혔느냐?”

“나나 쓰모 엄써서 그러씀미다. 앗, 그래두 대곤밈한텐 쓰모 만슴미다(나나 쓸모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앗, 그래도 대공님한테는 쓸모 많습니다)!”

아기의 몸이라 그런지 벌써 눈꺼풀이 꾸벅꾸벅 떨어졌다.

‘루이스를 만난 게 많이 힘들었나?’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던 대공의 얼굴이 슬퍼 보이는 것 같다고 느낀 찰나.

“슬라데이체는.”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꼬르륵 기절해 버렸다. 어쩐지 단단한 손이 내 등을 토닥여 주는 것처럼 포근했다.

“쓸모없다고 해서 갈 데 없는 어린애를 버리는 가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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