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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209화 (209/210)

외전 4화

오두막에 처음부터 있던 침대는 두 사람이 눕기엔 비좁았다.

사실 평범한 이인용이지만, 아르파드가 너무 큰 게 문제였다.

그리고 바득바득 함께 침대에 구겨져 들어가려 하는 아르파드가 또 문제다.

힐리아는 바둥거리면서 외쳤다.

“바닥에서 자라니까!”

“집주인도, 침대 주인도 나야. 그리고 부부가 한 침대를 쓰는 건 당연한 일이지.”

“난 당신을 남편으로 인정한 적 없거든요?”

“나는 당신을 아내로 인정했어. 그러니 문제없지.”

“문제밖에 없거든요! 뭐라는 거야, 진짜?”

어이가 없었다.

사실 더 어이가 없는 건 다른 것이었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리고 가까이 있을수록 점점 커지는 자신의 반응이다.

멀미를 닮은 기이한 울렁거림, 혹은 가끔 갈피를 잃고 빨리 뛰는 심장의 고동 같은 것들.

힐리아는 그걸 부정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말도 안 돼!’

스톡홀름 신드롬도 아니고 말이다.

그를 침대에서 밀어내려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하지만 아르파드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힐리아는 침대에서 발딱 일어나 걸어 나왔다.

“그럼 내가 바닥에서 자면 될 거 아니야!”

하지만 힐리아는 침대 밖으로 한 걸음 이상을 떼지 못했다.

단단한 팔이 허리를 휘감아 당겼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발이 바닥에서 떨어졌고, 푹신하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눈을 떴을 때는 아르파드의 붉은 눈동자가 코앞에 있었다.

힐리아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화내려는 건가.’

포로 주제에 지나치게 나대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건 납치당한 처지였고, 아르파드는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멋대로 대할 수 있었으니까.

억울함에 더더욱 뻣뻣하고 당당하게 굴고는 있었으나, 남자가 조금이라도 심사가 뒤틀린 듯 보이면 간이 졸아드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힐리아가 두려워하거나 각오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한참 힐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냥 여기서 자. 내가 아래에서 잘 테니까.”

“…!”

힐리아는 아르파드가 바닥의 적당한 곳에 몸을 누이는 걸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한참 아르파드의 커다란 등을 노려보던 힐리아는 아무런 말 없이 뒤돌아 누워서 이불 속으로 혼자 기어 들어갔다.

바닥에 혼자 누운 납치범의 등이 외로워 보이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이 미쳤거나, 저 남자가 미쳤…….

힐리아는 아르파드가 미친 걸로 유명하다는 걸 어렵지 않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저 남자는 미친 게 확실하니, 자신도 미쳤거나 세상도 미치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절대 없었다.

납치범에게 원망의 말이나 비꼼, 욕설을 내뱉는 건 쉬웠다.

하지만 옆에 와서 같이 누우라거나 이불이라도 덮으라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었다.

비록 단어가 혀끝에 걸려 있어도 꾹꾹 씹어 삼켰다.

이 교착 상태는 힐리아의 예상보다 길게 이어졌다.

단 둘뿐이던 오두막에 두 명의 침입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리고 끝까지 떠오른 말을 내뱉지 않았던 것을 마지막 순간 그녀는 후회하게 되었다.

* * *

열린 창문으로,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벚꽃 잎이 날아들었다.

빙글빙글 돌던 연분홍 꽃잎이 힐리아의 눈꺼풀 위로 떨어졌다.

희고 긴 손가락이 뻗어와 꽃잎을 조심스레 떼어 냈다.

잠을 깨울까 걱정하는 몸짓.

하지만 봄바람과 꽃잎이 속눈썹을 흔들었기 때문일까.

보석 같은 보랏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아르파드는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아침 인사를 건넸다.

“잘 잤어?”

그러자 잠시 멍하니 아르파드를 바라보며 두어 번 깜빡이던 여자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응.”

힐리아는 만개한 봄꽃처럼 웃으며 속삭였다.

“꿈을 꿨어.”

“무슨 꿈?”

“행복한 꿈. 하지만 아쉽고 후회되던 꿈.”

“…?”

아르파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힐리아는 웃으며 꿈속의 추억 속에서는 하지 못한 일을 했다.

반라의 몸 위로 이불을 덮어 주었다.

아래에서 자지 말고 침대로 올라오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함께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안 추운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르파드는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상아의 방 침대는 오두막의 침대처럼 비좁지 않았다.

거위 털 침구는 구름처럼 푹신했고, 사방에 드리운 레이스 커튼은 보드라운 안개 같다.

하지만 힐리아에게 오두막에서 함께 잠들었던 침대와 지금 이 침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누워 있으니까.

둘이 함께한다면 초원을 시트 삼고, 바람을 덮고 잠들어도 따스하고 행복할 테니까.

힐리아는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일을 하나 더 했다.

사랑하는 남자의 숨결을 제 입술에 가둔 것이었다.

외전 2. 황제 부부의 첫 번째 휴가

창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이 이제는 제법 부드러워져 있었다.

조금만 문을 열어도 날카로운 바람이 들이닥쳐서 속절없이 문을 닫아야 했던 한겨울과는 확실히 달랐다.

아르파드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아침나절의 짧지만 달콤한 순간을 떠올리자,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이제 상아의 방 침실 창문도 좀 편하게 열 수 있어서 다행이야.’

임신 이후 힐리아의 손발이 유달리 차가워져 겨우내 창문을 함부로 열지 못했다.

벽난로에 늘 불을 피우고, 큰 주석 주전자를 걸어 물을 끓이는 일반적인 난방은 당연히 계속했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이고 좋은 방법은 따로 있었다.

“내 손발은 과하게 뜨거워. 누가 시원하게 식혀 주면 좋겠어.”

“…지나치게 사심으로 가득한 거 아니야?”

힐리아는 샐쭉하니 눈을 흘기면서도, 거위 털을 가득 채워 넣은 이불을 들추고 손을 까딱거렸다.

아르파드는 희희낙락하며 침대 속으로 뛰어들었더랬다.

그야말로 달콤하고 따스한 추억.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가 흐무러질 정도다.

떠올리는 추억들이 달콤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현실은 냉혹했다.

훈훈한 봄바람이 스며드는 계절이 되었지만 그의 현실은 차라리 지난겨울이 따스할 지경이었다.

아르파드는 신경질적으로 서류에 서명하며 이를 갈았다.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시기에 휴가라니. 근성이 부족해!’

지나치게 혹사당하다 결국 사표와 휴가라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주군에게 강요한 끝에 승리하고 남쪽 해변으로 도망간 부하를 떠올렸다.

“아하핫! 안녕히 계세요, 폐하! 저는 모든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행복한 해변으로 갈 겁니다!”

물론 율켄이 저렇게 대담하게 외치고 도망칠 수 있었던 데에는 힐리아의 지원이 주효했다.

아르파드는 사표와 휴가계를 모조리 찢어 버리고 무시할 수 있었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다크 서클을 달고 두 분이 자리를 비운 동안 대관식 준비하며 본인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눈물로 읍소하는 율켄에게 힐리아는 깊은 동정심을 보였다.

“휴가는 직장, 아니, 신하의 고귀한 권리니까. 푹 쉬고 와.”

“감사합니다, 황후 폐하! 사랑합니다!!”

“방금 그 말만 아니면 휴가를 허락해 주려고 했는데.”

“아하핫! 협박하셔도 소용없습니다, 황제 폐하! 제겐 황후 폐하가 계시니까요!”

율켄은 광기 어린 웃음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 결과 아르파드는 임신 중인 사랑스러운 아내 곁에서 느긋하게 쉬지 못하고, 일에 붙잡혀 집무실에 박제되기에 이른 것이다.

아르파드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창밖의 지나치게 화사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런 날에는 소풍이라도 함께 가야 하는데.’

소풍은커녕 그들은 아직 약속한 신혼여행을 다시 가지도 못한 상태였다.

아침나절 힐리아가 깰 때까지 기다린 것도 무리한 거였다.

산처럼 쌓인 업무는 이 좋은 날씨에 아내의 곁에 있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젠장!’

신혼부부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환경이었다.

그때였다. 아르파드가 너무나도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진 것은.

“폐하, 황후 폐하께서 들르고 싶으시다고 청을 보내 오… 폐, 폐하?!”

비서관의 당황한 목소리가, 바람보다 빠르게 창문으로 내달려 사라진 주군의 등 뒤로 황망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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