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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207화 (207/210)

외전 2화

인적이 아예 없는 깊은 숲속의 오두막은 아르파드가 마련해 둔 안가 중 하나였다.

용도는 황궁 지하의 카타콤에 있는 아지트와 비슷했다.

그의 광증이 도졌을 때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는 곳.

달빛이 닿지 않는 곳.

카타콤을 주로 썼으나 그 외에도 대륙 곳곳에 안가를 준비해 두었다.

황태자 아르파드로서만이 아니라, 용병왕 제랄드로서도 행동할 때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안가 중 가장 외지고, 오기 쉽지 않으며, 주인 외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곳을 택한 건 충동적으로 힐리아를 약탈혼 한 직후였다.

“어딜 가는 거예요! 놓아줘요! 제발!”

힐리아는 납치당하는 신부답게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아르파드는 새삼 실감이 났다.

루드비히의 아내를 약탈했다는 게.

동시에 지긋지긋한 깨달음도 연달았다.

‘미친 도마뱀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나 보군.’

아르타누스가 자신에게 내린 반복되는 회귀의 저주(적어도 아르파드는 그렇게 믿었다)가 정말 효과가 있었다는 것도.

하지만 다행스럽다거나 기쁘다는 감상은 들지 않았다.

루드비히 놈의 고간을 걷어차 졸도시키고 납치해 온 이 여자가 바로 그가 헤아릴 수 없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기억의 원흉인 것이다.

이 가벼운 무게와 코끝을 스치는 꽃향기가…….

기절한 여자를 안고 도망치면서 아르파드는 조금 놀랐다.

여자가 너무나도 가벼워서.

‘이렇게 하찮은 여자 하나가 대체 뭐라고, 나는 그 끔찍한 길을 걸어야 했던 거지?’

-신부는 너를 완전케 할 것이다. 나의 후계자여.

후계자니, 신부니 하는 말에는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그는 오래전에 미쳐 있었다.

미친놈에게 자신을 미치게 만든 원흉이 쥐여진 것이다.

해야 할 일은 하나뿐 아닌가?

애처롭게 비명만 지르다 기절한 여자를 안은 채 아르파드는 꽤 오래 갈등했다.

여자의 목은 가늘어서 한 손으로 감아도 틈이 남았다.

부러뜨리는 건 어렵지 않다.

오히려 다치지 않게 행동하는 게 더 어려웠다. 신중하고 조심해서 힘을 써야 했으니까.

이 시점에서 아르파드는 깨달았다.

처음 납치할 때는 당연히 죽일 생각이었다.

그 시체를 아르타누스 앞에 던져 주고 조롱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 여자를 손에 넣고 나니, 안 죽일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배알도 없는 제 꼴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결국 아르파드는 힐리아를 죽이지 못했다.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곳에 가둬 두는 것을 택했다.

‘죽이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어.’

* * *

여자는 가녀리고 섬약해 보였다.

몸을 이루는 선도, 이를 물들인 색도 어느 것 하나 강렬하거나 선명하지 않은 여자다.

부드럽고, 가냘프고, 나약해 보였다.

하지만 외모와 성격이 늘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아르파드는 약탈혼 이틀 만에 깨달았다.

“약탈혼이라니! 야만적이야!”

“미치려면 좀 곱게 미치라고요! 왜 하필 나야!”

“이 좁아터진 집은 또 뭔데? 명색이 황태자면서 사람을 납치해서 이런 데 처박아?!”

여자는 아르파드가 생각한 것처럼 가냘프고 심약하지 않았다.

물론 예상 그대로인 부분도 있긴 했지만.

“꺄악! 버, 벌레!!”

겨우 사흘 만에 아르파드의 예상을 알뜰살뜰하게 부숴 준 힐리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용감하게도 탈출 시도를 했다.

여전히 웨딩드레스를 입고 흰색의 불편한 구두를 신은 그대로 말이다.

며칠간 준 식사와 간식을 조금씩 떼어 내어 꼬물꼬물 숨기고 있는 것도 진작 눈치챘다.

탈출용 식량 준비겠거니 했다.

“…….”

하지만 그걸 만약을 대비한 길 찾기 표식으로 삼아 뿌리고 걷고 있는 걸 보니 조금 놀라웠다.

그리고 어이가 없었다.

‘저런 건 새나 벌레들이 바로 먹어치울 텐데.’

도망치는 힐리아의 뒤를 여유 있게 밟으며, 아르파드는 제 예상이 맞는 걸 확인했다.

여자가 뿌리고 간 빵 쪼가리와 쿠키 부스러기를 노리고 오는 온갖 새와 벌레 등의 생물들.

아르파드는 마력을 내뿜어 그것들을 쫓아냈다.

여자가 걸어간 길에 마치 자신을 찾아 달라고 흩뿌려 놓은 듯한 그 부스러기들이 사라지는 건 어쩐지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르파드는 그 흔적을 느긋하게 밟으며 힐리아의 뒤를 따랐다.

* * *

결국 탈출에 실패한 힐리아는 얌전히 아르파드에게 안겨 있었다.

하지만 정신은 그녀답게 자유로웠는데, 입이 쉬지 않았다는 소리다.

“악당! 납치범! 야만인!”

힐리아를 끌고 온 뒤 며칠 동안 수도 없이 들어온 말들이었다.

아르파드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창의성이 모자라. 좀 더 신선한 표현을 찾아보길 추천하지.”

“…!”

힐리아는 더더욱 약이 올랐는지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 떨림이 두 팔 가득 선명하게 전해져서 웃겼다.

…웃었다?

아르파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웃었다니? 남을 조롱하거나, 자조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미쳐서 내지르던 광소(狂笑)가 아니었다.

내면의 순수한 즐거움이 자연스레 입가로 번진 것이다.

너무나도 어색하고 이질적이라, 아르파드는 그대로 굳었다.

그러자 힐리아도 이상 상황을 눈치챘다.

“뭐야? 왜 멈춰요?”

조금 전 약이 올라 파들파들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꼭 지금은 그를 걱정하기라도 하는 듯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제 처지를 알기는 하는 건지.

아르파드는 다시 오두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조용해져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안 그래도 무거운 짐짝이 시끄럽기까지 하니까 귀찮았거든.”

그러자 다시 여자의 얼굴 가득 분노가 터져 나왔다.

“누가 무겁다는 거예요?! 안 그래도 결혼식 때문에 식이 조절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걸 다 망쳐 놓고는! 게다가 그 뒤로 식사도 부실해서 살이 붙을 여유도 없었다고!”

아르파드의 입꼬리가 다시 미미하게 올라갔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당신 혹시 미각 없어요? 어떻게 삼시 세끼가 다 건량에 건빵에, 음료는 물이 다예요?! 황태자잖아!”

말을 이어 가다보니 불만과 억울함이 끊이지 않은 모양이다.

“이건 인권 유린이야! 포로나 볼모라도 이것보단 제대로 대우해 줘야 할 거 아니에요!”

분노와 하소연은 길고 또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이것도 레퍼토리가 떨어지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새로운 걸 말할 기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힐리아는 결국 최대한 짤막한 단어들을 내뱉는 것으로 제 감정을 표출했다.

당연히 그 단어들은 힐리아가 아는 가장 부정적인 표현들이었다.

“…사디스트! 변태!”

그때였다.

거침없이 이어지던 아르파드의 걸음이 멈췄다. 신이 나서 떠들던 힐리아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은 지금 극악무도한 납치범에게 안겨 있는 주제에 온갖 욕을 하는 간 큰 짓을 한 것이다.

잠시간의 어색하고 불편하고 불길한 침묵 끝에 아르파드가 물었다.

“그거 아나?”

“뭐, 뭘요?”

숲을 헤맬 때의 고통에 비해 아르파드에게 안겨 이동하는 것의 안락함을 그녀는 이미 알아 버렸다.

적어도 도착할 때까지는 이 자리를 잃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진짜 화가 나서 걸어오라고 하거나, 바닥에 내던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런데 아르파드가 한 말은 그보다 더욱 무시무시한 거였다.

“그대는 지나치게 겁이 없어.”

“내, 내가…요?”

“그 극악무도한 범죄자 품에 안겨 있다는 걸 전혀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이 훅 다가왔다.

베일 듯 오뚝한 콧날이 뺨에 닿는다.

시선은 정면에서 그녀를 꿰뚫어 버릴 것만 같다.

마치 뱀 앞에 선 생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힐리아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죽이기라도 하려고요?”

“결론이 왜 그쪽으로 가지?”

“그야 당신이 변태 사디스트 악당 납치범이니까?”

“…역시 너무 겁이 없단 말이야. 그 정도면 화내 달라고 나에게 애원하는 걸로 들려.”

그러자 힐리아는 조금 쪼그라든 기세로 대꾸했다.

“그건, 아닌데요…….”

정말이지 이상한 여자였다.

이럴 때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용혈의 소유자 앞에서 나약해지고 두려워하는 평범하디 평범한 여자.

하지만 자신은 왜 이 여자가 보이는 사소하고 다양한 모든 면에 이렇게 마음을 기울이게 되는 것일까.

어째서… 지루하고 끔찍하기만 하던 순간순간이 즐겁게까지 느껴질까.

정말로 더는 미칠 수 없을 데까지 미쳐 버려서 그런 것일까.

그는 부러 낮은 목소리로 여자를 자극했다.

“내 취향은 단번에 목숨을 끊는 게 아니야. 오래 두고두고 괴롭히는 거지.”

“…!”

힐리아의 가벼운 몸이 다시 파들파들 떨렸다.

“우선은 이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바닥에 내던진 다음, 오두막까지 알아서 걸어오게 하는 사악한 짓부터 할 수도 있지.”

힐리아의 어깨가 지금까지 중 가장 크게 움찔거렸다.

다음 순간, 아르파드의 어떤 예상이나 예측과도 다른 일이 벌어졌다.

힐리아가 두 팔로 아르파드의 목을 꽉 끌어안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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