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203화 (203/210)

203화

드래곤에게도 잡을 멱살이 있었다면 좋을 거다.

하지만 눈만으로도 내 키보다 큰 거대한 파충류를 잡고 흔드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드래곤 앞에서 앵앵거리는 하루살이처럼 외치는 것뿐이었다.

“내 아르파드를 내놓으라고!”

그러자 등 뒤에서 아르파드가 나를 다정하고 따스하게 안았다.

눈앞의 도마뱀과 세상 전체에 대한 분노로 잠시 눈이 돌아간 나는 아르파드에게도 화를 냈다.

“왜 막는 거야?! 조상님이라고 편이라도 들려고?”

아르파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대가 다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 아르타누스가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그대가 손을 조금만 잘못 휘둘러도 크게 다칠 수 있어.”

아르파드의 다정하고 상냥한 말이 나를 더 분노하게 했다.

“말투! 저 도마뱀 따라가지 말랬지!”

“…아! 당신이 걱정되는 거야.”

“그것만이 아니야!”

“뭐?”

아르파드는 ‘내가 또 뭐 실수한 게 있나?’ 이런 표정이었다.

“아르타누스가 아니라, 빌어먹을 도마뱀!”

애초에 이 말은 아르파드가 먼저 부르던 것이다. 내가 그걸 따라 하는 것이고.

그런데 내 앞에서 아르파드가 저 도마뱀을 아르타누스라고 부르는 건 보기 싫었다.

‘나의 아르파드로부터 더 멀어지는 것 같아서.’

아르타누스에 대한 격렬한 증오와 거부감은 나보다 아르파드가 더했으니 말이다.

호칭 정리가 끝나고 내가 겨우 거칠게 몰아쉬던 숨이 조금 고르게 되자 아르타누스가 입을 열었다.

-드디어 간절히 원하던 때가 왔구나, 나의 후계자여. 이제 오랜 시간 동안 내 어깨에 지워져 있던 짐을 가져가 다오. 나의 남은 모든 힘을 거둬 가서 나를 무로 돌려보내 다오. 내 신부의 곁으로.

아르타누스, 아니, 망할 도마뱀은 부드럽게 웃는 표정으로 긴 목을 아르파드에게 들이밀었다.

아르파드는 거부감 없이 손을 내밀었다.

자신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어쩐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아르파드와 저 도마뱀이 접촉하면 내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질 거라는.

그래서 나는 아르파드를 향해 외쳤다.

“아르파드! 손!”

말과 동시에 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르타누스를 향하던 아르파드의 손이 순순히 방향을 바꾸었다.

착한 강아지처럼 내 손 위에 얹힌 아르파드의 손과 나를 거대 도마뱀이 번갈아 보았다.

황당해하는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우리를 방해하려는 것인가, 신부여?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방해하는 건 ‘너희’가 아니라 ‘너’뿐이야. 멋대로 아르파드를 네 편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그는 나의 후계자다.

“그 전에 내 남편이거든!”

나와 비만 도마뱀의 아웅다웅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르파드는 혼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에게 도마뱀 놈이 마수를 펼치려 들었다.

-아르파드. 나의 후계자여. 너도 느끼고 있지 않나? 내 힘은 이제 대부분이 너에게로 가 있다. 네가 이제 이어받을 것은 껍데기뿐인 자리. 그러나 그것은 이 세계에 더없이 중요하고 고귀한 것이다.

아르파드가 혓바닥 긴 도마뱀의 주장에 대꾸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끼어들었으니까.

“그렇게 고귀한 자리라면 당신이 계속 지키고 있으면 되잖아! 떠넘기려고 아르파드를 헤아릴 수 없는 회귀로 밀어 넣을 게 아니라!”

내 계속된 방해에 아르타누스는 마침내 거부를 드러냈다.

-이건 나와 후계자 사이의 일. 네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다. 신부여.

“웃기지 마!”

순간 참지 못하고 비명처럼 외쳐 버렸다.

‘그 일’이 며칠 전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 시간? 아니 몇십 분도 지나지 않았다.

나는 손이 떨려 올 정도로 선명한 그 광경을 기억했다.

내 눈앞에서 빠르게 심장이 멎어 가던 아르파드의 모습.

그리고 내가 결국 그를 살리기 위해 무슨 짓을 해야 했는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고, 숨을 쉬기 힘들었다.

시야가 부옇게 흐려졌다.

나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변화한 아르파드를 앞에 두고 보인 과장된 내 말이나 행동, 아르타누스 앞에서도 이어진 내 격한 어투.

이 모든 것의 이유를.

‘이렇게라도, 억지로라도 나를 밀어붙이지 않으면 무서워서, 무너져 버릴 것 같아서…….’

영영 아르파드를 잃게 되어 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충격받거나 상처받아 멈춰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런 건 아르파드를 되찾고 나서나 하면 된다.

나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입 안에서 피 맛이 났다.

두 눈을 치뜨고 거대한 존재를 올려다보며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주장했다.

“아르파드를 완전한 용으로 각성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나에게 저주까지 걸어 놓고는, 이제 와서 자격이 없으니까 빠지라고?!”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내가 그대에게 건 것은 저주가 아니다.

“나에겐 저주였어! 세상에 둘도 없을 끔찍한 저주!”

-그것은 그대가 필멸자이기에 느낀 한계이다. 그대의 짝을 필멸자의 육체에서 벗어나 영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건 도리어 축복일터.

드래곤은 달콤한 말로 나와 아르파드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그대도 이미 느끼고 있지 않은가. 나의 후계자여. 그대에게 아직 남은 미약한 필멸자의 껍질에서 벗어나, 이제 진정한 영원을 손에 넣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너와 너의 신부에게 진정한 축복이 될 것이니.

내가 뭐라고 더 외치려 했으나, 아르타누스가 막아섰다.

그저 드래곤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일부 드러내어 내 정신을 살짝 누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나는 순간적으로 압도되어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타누스의 거대한 머리가 아르파드의 앞으로 다가왔다.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거대한 드래곤이 그대로 입을 열어 아르파드를 집어삼키려는 듯 위험한 광경으로 보일 것이다.

사실상 내가 보기에도 비슷한 광경으로 보였다.

아르타누스가 나의 아르파드를 빼앗아 가려는 상황이라는 점은 똑같았으니까.

아르타누스가 말했다.

-자, 나의 후계자여. 이제는 마지막 단계만이 남았다. 손을 뻗어, 나의 이 육신을 남김없이 가져가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끝난다고?”

나와 아르타누스의 언쟁에 밀려 가만히 있었던 아르파드가 처음으로 드래곤과 대화를 시작했다.

-바로 그대로다. 이제 네가 이어받을 것은 이 육신뿐. 그러면 너는 세계를 지탱할 기둥으로써 나의 뒤를 잇게 되리라.

“…네가 뭘 말하는 건지 알 것 같아.”

아르파드는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내가 꼭 쥐고 있는 것과는 반대쪽 손.

그것을 쥐었다 펼치며 잠시 내려다보다 아르파드는 고개를 들었다.

“너에게 손을 뻗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겠어. 거대한 존재가 되어 세상을 내려 볼 수 있겠지. 네 말대로 이 세상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 신들의 힘에마저 저항할 수 있을 터.”

-그대로다. 그것이 바로 네 운명이다. 아르파드.

드래곤은 희열에 차 있었다. 이제 계승의 순간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와 있다고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이는 사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절히 아르파드의 손을 붙잡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체념해 버리려는 약한 마음이 일었다.

그걸 애써 억누르며 나는 다시 한번 그를 부르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드래곤은 방해를 용납하지 않았다.

-네가 신부이기에 잠시 자비를 베풀었으나 이게 한계다.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잠시 안전한 곳으로 보내 주지. 기다리고 있어라.

“…싫어!”

하지만 내 미약한 저항이 소용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이제 계승의 마지막 단계만 남겨 둔 껍데기뿐이라지만, 상대는 드래곤이었다.

스스로 말한 대로 신의 힘에마저 저항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였다.

그 앞에서 나는 개미와도 같았다.

속절없이 이 공간에서 쫓겨날 거라는 걸 직감하고 눈을 감았다.

분노와 억울함이 흘러넘쳤다.

‘이건 너무해!’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여전히 이 공간 안에 서 있었다.

드래곤과 그 후계자만이 허락된 공간 안에.

아르타누스의 거대한 눈에 당혹감이 어리는 게 보였다.

-…!

나는 깨달았다.

나 혼자만 매달리듯 그의 손을 잡고 있던 게 아니라는 걸.

그 역시 계속해서 내 손을 쥐고 있었다. 절대 놓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이 공간에서 쫓아내려 한 아르타누스를 막을 수 있는 이는 한 명뿐이었다.

눈을 뜨자 아르파드의 얼굴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는 드래곤을 등지고 선 채, 오롯이 나만을 향하고 있었다.

당혹한 드래곤의 부름이 공간 전체를 울렸다.

-나의 후계자여……!

“알아. 내가 당신의 후계자라는 건. 손만 뻗으면 세상을 발아래 둘 거대한 힘이 내 것이라는 것도.”

-바로 그러하다, 그러니…….

“아마, 그 힘을 손에 넣는 건 꽤 기분이 좋겠지. 지금도 내 안에서 본능이 속삭이고 있어. 당장에라도 가지라고. 나는 그러기 위해 태어났다고.”

-그런데 어찌하여……!

비통하다 못해 처참하게까지 들리는 드래곤의 호소를 뒤로한 채 그는 나만을 보고 있었다.

아르타누스를 향해 뻗었던 손이 방향을 바꾸어 나에게로 다가왔다.

이제 두 손이 모두 내게로 와 있었다.

아르파드는 나도 모르게 축축해진 내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절대적인 진리를 추종하는 맹신자처럼.

“하지만 지금 내 신부가 울고 있는걸.”

설사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그보다 중요한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듯 아르파드가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