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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201화 (201/210)

201화

‘너 누구야?’

이 말이 목구멍 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힐리아는 그 말을 내뱉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러면 정말로 눈앞에 있는 존재가 그녀가 사랑한 남자가 아니게 될 것 같아 두려웠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 왜 그래?”

“내가 뭘?”

“평소의 당신이라면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나섰을 거야. 그게 황태자이자 곧 황제가 될 이의 의무니까.”

그러자 아르파드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굳었다.

“그건… 그래. 그대의 말이 맞는 것 같군.”

의외로 나온 부드러운 수긍에 힐리아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숨 쉬는 것도 잊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괜찮아. 아르파드가 맞아. 내가 아는 아르파드야.’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들었다.

‘만일 내가 아는 아르파드가 아니게 되면… 어쩔 건데?’

지독하게 두려운 의문이지만, 지금은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깊이 고민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결론은 간단했다.

‘정말 그렇다면…… 빼앗아 올 거야.’

누구를 상대로든 자신의 남자를 빼앗아 올 것이다.

그게 재수 없는 도마뱀 아르타누스이든.

세상을 만들고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은 신들이든.

설사 더는 인간으로서의 부분을 잃은 아르파드 자신이라 해도.

힐리아는 지금 자책하거나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

의지를 불태우기도 바빴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는 약탈혼으로 결혼했는걸. 상대가 누구든 나는 아르파드를 되찾아 올 거야.’

아니, 약탈해 올 것이다.

반드시.

* * *

힐리아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있을 거야? 저 꼴을 보고도?”

힐리아의 손끝이 베네타 성하 거리의 아비규환을 가리켰다.

시선이 손끝을 따라가다 아르파드는 한 걸음 다가가 힐리아의 손을 감싸 안았다.

힐리아는 잠시 희망을 품었으나, 곧 배반당했다.

아르파드는 힐리아의 손이 가리킨 베네타 내부의 상황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힐리아의 손끝만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다쳤군.”

그야 당연했다.

조금 전 아르파드와 가스팔의 격전 와중에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고, 어떻게든 안 끌려가려고 바닥을 긁기도 했으니까.

손톱 몇 개가 깨지고 뒤집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르파드는 엉망이 된 힐리아의 손끝에 일일이 키스했다.

쪽, 쪽. 가벼운 소리가 울리고, 압도적인 마력이 상처를 치료한다. 손끝에 열이 돌고 간지러웠다.

피가 멎었고, 부러진 손톱이 재생되며, 새살이 돋아 올랐다.

순식간에 깨끗해진 힐리아의 손끝을 보며 아르파드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목숨이 쓸려 나가는 지금, 상처 하나를 더 신경 쓰고 안타까워하는 건 자신이 아는 아르파드가 맞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바로 그다음이다.

“이다음에 당신이 할 일 있지 않아?”

아르파드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곧 미소를 지으며 깨달았다는 듯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지려는 키스를 힐리아는 두 손으로 막았다.

“…왜, 싫어?”

“싫진 않지만,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니까.”

“왜 아닌데?”

이 말이 힐리아의 인내심을 뚝 끊었다.

“그게 내 아르파드니까.”

“…뭐?”

아르파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연달아 물었다.

“하지만 미친 황태자, 언제 사람을 다 죽일지 모르는 비정한 인간, 그게 아르파드 이스트리트 아니었나? 그대도 그렇게 생각했잖아.”

힐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두려워하고, 경계했었지.”

“그런데 왜?”

“그땐 나도 잘 몰랐으니까. 하지만 제대로 알게 된 당신은 달랐거든. 진짜 피를 본 건 광증 때문에 스스로를 통제 못 하거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때뿐이었어.”

실제로 아르파드는 암살자를 처리한 걸 광증 핑계를 대곤 했었다.

“그대가 알지 못하는 회귀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피를 아무렇지 않게 봤는지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힐리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말했잖아? 광증 때문에 스스로를 제어 못 했을 때는 제외하고라고. 어차피 심신 미약이니까 무효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종종 말하는 이세계의 말이라는 건 짐작이 가지만.”

“그것만 알면 돼. 아니, 사실 알 필요도 없어.”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으니까.

“나는 당신이 사실 자비롭다거나 선량한 인간이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야! 진짜로 아니니까!”

힐리아는 고개를 들고 가슴을 쭉 폈다.

그리고 치료된 손끝으로 아르파드의 가슴팍을 눌렀다.

조금 전 그녀가 그를 살리기 위해 칼날을 찔러 넣은 바로 그곳을.

“언제나 비비 꼬인 말만 해대서 사람을 열 받게 만들고, 경계심 많고 쪼잔한 인간이었지! 쓸데없이 질투심만 많고!”

“지금 욕…을 하자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니까 그냥 입 다물고 들어!”

놀랍게도 아르파드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도 정작 나한테는 약해서 마음이 넓은 척, 모르고 넘어가는 척하면서 뒤로는 온갖 감시에 꿍꿍이에 음모를 다 짜고 있었고!”

“…….”

“내가 당신 살리려고 도망치니까, 미쳐 버릴 위험으로 자신을 내던져서 나를 붙잡으려고 드는 무모한 멍청이!”

“확실히 지금 나는 그런 존재가 맞는 듯한데. 혹시 내가 그대의 아르파드가 아니라고 생각해?”

힐리아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신은 내 아르파드 맞아.”

“그런데 왜 그렇게 울어?”

힐리아의 눈에는 맑은 눈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아르파드의 손끝이 더없이 조심스레 그녀의 눈물방울을 훔쳤다.

“하지만 내 존재가 없었더라도, 당신은 저 바깥의 꼴을 봤으면 달려나갔을 거야. 자비롭거나 사람을 가엽게 여겨서가 아니라, 그게 황족으로서 태어나 자라 온 당신의 의무니까.”

“아마 그랬겠지.”

아르파드는 이번에도 순순히 수긍했다.

“하지만 더는 그럴 필요를 못 느끼겠어.”

힐리아는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외쳤다.

“바로 그 부분이 문제야! 나는 그 오만하고 재수 없는 고고함과 의무감까지 포함해서, 당신의 전부를 사랑하는 거라고!”

“…!”

“당신이 질투가 많은 것 이상으로 나는 욕심이 많아. 내 것은 일부라도 빼앗기거나 사라지는 건 용납 못 해. 그런 당신의 일부분까지도 전부 내 거라고!”

힐리아의 두 팔이 아르파드를 붙잡았다.

“내놔!”

힐리아의 열정적인 억지에 아르파드는 잠시 멈춰 있었다.

“…….”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잠시 이어진 침묵 끝에, 아르파드는 더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을 내놓았다.

“미안해. 어떻게 해야 당신이 말하는 부분을 그대에게 되돌려 줄 수 있는지 모르겠어.”

“…!”

이 순간 힐리아가 가장 듣고 싶지 않고, 절망적인 대답이었다.

* * *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놀라서 바닥을 구르는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럽고 원통해서 울고 있었다.

내 남자를 온전히 돌려 달라고 외치면서.

휘잉.

바람이 불었다. 아르파드는 여전히 무감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성 밖에서는 비명과 괴성이 엇갈리는 중.

나는 딱히 자비롭거나 착한 인간이 아니다.

저 밖의 끔찍한 재앙에도 지금 내 눈앞의 아르파드가 제 일부를 잃은 게 더 가슴 아프고 화가 났다.

밖의 상황을 해결하고 사람을 구하려는 건 측은지심이나 도덕심의 발로는 아니었다.

다만 나나 아르파드가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소를 잃지 않기 위한 발버둥에 가까웠다.

내가 보아 온 아르파드는 태어나면서부터 보관을 손에 쥔 인간 특유의 오만함이 흘러넘쳤으니까.

그는 당연한 제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고, 미쳐 버리지 않는 한 그 자리에 어울리는 의무는 지키려 했다.

성하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외면한다는 건 곧 그가 나 외에 다른 것에 연연하지 않다는 의미다.

아마도… 드래곤처럼 거대한 존재에게 인간의 목숨이 가지는 의미가 그러한 것처럼.

나는 그걸 견딜 수가 없었다.

아르파드가 아득바득 지키고 싶어 한 인간으로서의 미련과 이기심을, 거대한 존재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정을 내렸다. 모험하기로.

그가 나를 붙잡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졌던 때처럼.

몇 걸음 뒤로 물러나자, 내내 석상처럼 변화가 없던 아르파드의 표정에 동요가 보였다.

“위험해.”

나는 승리를 예감하며 선언했다.

“알아. 아니까 하는 거야.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대로 뒤로 몸을 내던졌다. 성벽이 박살 난 뒤쪽은 허공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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