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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99화 (199/210)

199화

아르파드 역시 들었다. 저 괴물 따위가 감히 그의 아내에게 뭐라고 하는지 말이다.

‘신부? 누구의 신부라고?’

힐리아를 신부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겨우 그의 피 몇 방울을 받은 것에 불과한 놈이 힐리아를 본인의 신부로 칭한다고?

눈앞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당장에라도 감히 힐리아를 끌어안은 저 팔을 잘라 내고, 산산 조각내 버려도 부족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지금 자신은 괴물에게서 아내를 멋지게 구해 내기는커녕, 찔리고 걷어차인 충격으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입 안에서는 쇳내가 나고, 팔다리의 근육이 끊어질 듯 고통스럽다. 지나친 마력 고갈의 부작용이었다.

하나같이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감각.

그중에서도 가장 낯설고 또 아르파드를 당혹스럽게 하는 건 바로 무력감이었다.

그 순간.

귀를 찌르는 소리가 있었다.

“이거 안 놔?! 아르파드! 괜찮아? 아르파드!!”

그를 부르는 힐리아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입혀진 자신의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리곤 했다.

무채색의 사물에 색을 입히고,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불러들이는 사람.

그녀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마력 고갈 따윈 문제가 아니었다. 설사 이미 죽은 뒤라 해도, 온몸의 세포는 힐리아를 향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아르파드는 꼿꼿이 서 있었다.

괴물의 손아귀에 잡혀 있던 힐리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르파드!”

조금 전까지 걱정과 공포로 인한 눈물로 젖어 있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은 태양처럼 밝았다.

평소의 그였다면 힐리아에게 들은 다른 세계의 농담을 우스갯소리로 건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피를 훔친 괴물이 감히 자신의 앞에서 힐리아의 턱을 감싸 잡아당겼다. 명백히 입 맞추려 하고 있었다.

분노가 더 끓어오르진 않았다. 이미 한계를 넘어서 온몸의 작은 혈관까지 분노로 끓어 넘치고 있었으니까.

괴물은 그를 비웃었다.

“그 몸으로 잘도 서 있군. 하지만 그게 한계야.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 게 잘 보여. 오러는 꿈도 못 꾸겠지.”

아직 아르파드가 놓지 않은 검은 절반 즈음에서 잘려 있었다.

조금 전 오러를 일으킬 힘마저 없는 상태로 가스팔에게 달려들다가 무력하게 부러졌기 때문이다.

“그 부러진 칼이나 너나 매한가지인 상태지.”

조롱의 말이 쏟아진다.

“그대로 무력하게 지켜보고만 있으라고. 내가 신부를 맞이하는 모습을.”

가스팔에게 내동댕이쳐지면서도 칼자루를 놓지 않았던 아르파드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챙강!

바닥을 나뒹구는 반뿐인 칼을 보며 가스팔은 입꼬리를 찢어 올렸다.

“드디어 포기한 건가? 예상보다 빠른데? 생각보다 근성이 없는 남자였군.”

그 순간.

칼을 놓은 아르파드의 손아귀에서 붉은 칼날이 솟구쳤다.

“!”

오러는 아니었다.

불꽃처럼 피어나던 아르파드의 오러와는 비슷하지만 달랐다.

마치 상처에서 흘린 피와 같은 색.

핏빛의 마력이 훨씬 위태롭게 흔들거리며, 그럼에도 꼿꼿하게 형태를 유지했다.

다음 순간, 칼날만이 아니라 아르파드의 온몸이 붉은 마력으로 휩싸였다.

그리고.

“!”

꽤 멀리 떨어져 있었던 아르파드는 순식간에 힐리아와 가스팔의 지척에 도착해 있었다.

미처 가스팔이 인식하기도 전에.

힐리아를 제압하고 있던 가스팔의 왼팔이 잘렸다.

스컥―!

힐리아는 가스팔의 왼팔 째 뒤로 나동그라졌다.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선명하게 보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으니까.

눈앞에서 붉은 칼날이 괴물의 모습을 한 가스팔을 몇 번이나 베고 또 베었다.

하지만 산산조각 난 가스팔은 제 몸을 다시 이어 붙였다. 지겹도록 반복되어 온 광경이었다.

아르파드는 지체 없이 다시 핏빛 칼날을 휘둘렀다.

마치 광기에 휘둘리는 것처럼 조급하고 이성이 없는 움직임이었다.

* * *

산산조각이 난 몸을 이어 붙이면서 가스팔은 의아해했다.

분명히 지금 아르파드는 완전히 마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검은 뱀을 잡아 오며 ‘주시자의 눈’ 역시 되찾은 상태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저 마력은 뭐지?’

가스팔은 주시자의 눈에 마력을 퍼부어 아르파드의 육체를 해부할 듯 노려보았다.

그리고 바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가스팔이 휘두른 반쪽짜리 날개를 막아 내며 아르파드는 잠시 멈췄다.

덕분에 가스팔은 겨우 말할 수 있었다.

“죽을 작정인가 보군.”

카가각! 용의 비늘 위로 핏빛 마력의 칼날이 긁히며 불꽃이 일었다.

힐리아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뭐? 지금 무슨 소리야?”

가스팔은 힐리아를 비틀어 보며 다시 웃었다.

“말 그대로다. 지금 저자의 몸에는 남은 마력이 없어. 그런데도 저만한 검기를 뽑아낼 곳은 하나뿐이지.”

힐리아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심장.”

“그래. 저건 생명 그 자체를 뽑아낸 거다. 저 힘이 다하는 순간, 그대로 절명하겠군.”

가스팔의 얼굴에 낭패감이 어렸다.

“완전히 소진되기 전에 빨리 먹어 치워야겠군. 소중한 재료가 자멸하는 건 막아야지.”

힐리아는 충격과 걱정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만둬! 아르파드!”

그를 막으려 발버둥 쳐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르파드가 잘라 버렸음에도 아직 힐리아의 허리를 붙든 가스팔의 힘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이다.

가스팔의 몸체 일부는 여전히 힐리아를 구속한 채, 지금 벌어지는 격렬한 싸움에서 멀어지게 끌고 갔다.

힐리아는 저항했다. 손으로 바닥을 잡고 늘어지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아르파드!!!”

온몸을 비틀어 가며 외쳤다.

“안 돼! 그만해!”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나 놔두고 죽으면 절대 용서 안 할 거야! 내가 당신 살리려고 도망친 건데, 죽어 버리면 그게 무슨 소용인데!”

분노하다가 힐리아는 이제 빌기 시작했다.

“제발!!!”

기괴한 소음이 마치 힐리아의 절규에 대한 대답처럼 울렸다.

콰각! 키기기긱―!

거대하고 강인한 몸체가 온갖 방향으로 뒤틀리고 있었다.

인간과 드래곤을 어설프게 섞은 상태였던 가스팔의 몸체가 여러 형체로 변화하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촉수처럼 길게 늘어났다가 온몸의 비늘이 일시에 일어나 바닥을 긁기도 했고, 팔다리에서 여러 인간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했다.

힐리아는 가스팔의 몸에서 나타났다 사라진 얼굴들이 눈에 익다는 걸 알았다.

에반젤린과 비오 대주교를 닮은 것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밖에도 여러 사람의 얼굴들.

여러 생물체의 모습으로도 변화했다가 다시 바뀌고 있었다.

마치 어떤 형태를 유지해야 할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끄아아아악―!!!”

아르파드는 쇳소리로 목을 긁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미 한번… 목을 베고도 놓쳤다가 이렇게 됐는데… 두 번은 안 돼… 절대…….”

아르파드의 검기가 찌르고 있는 것은 가스팔의 거대한 몸체 속 검은색 구슬이었다.

“…네 역겨운 영혼을… 담은 그릇이겠지. 수…도 없이 움직여서… 잡기 귀찮았어.”

하지만 결국 잡아냈다.

아르파드가 칼날에 힘을 주자 구슬이 그대로 반으로 쪼개졌다.

구슬 안에서는 푸르게 빛나는 액체가 속절없이 쏟아져 내렸다.

예비 육체를 비롯해 그가 만든 모든 인형에게서 보이던 그 액체.

차이가 있다면 지금 구슬 안에서 빠져나온 액체는 훨씬 농도가 짙고 밝은 빛을 띠고 있다는 것.

그 액체 자체가 바로 가스팔이라는 존재의 핵이라 할 수 있었다.

이미 육체가 의미 없는 상태인 가스팔은 자신의 마력과 영혼을 이 코어 안에 담아 두었기 때문이다.

아르파드가 쏟아 낸 마력이 코어를 산산조각 내며, 내부를 채우고 있던 액체까지 완전히 불태웠다.

영혼이자 의식을 잃은 괴물의 몸체가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을 질렀다.

“끼에에에엑―!!!!”

듣는 사람의 정신을 조각내는 듯한 비명.

생명과 영혼, 이지를 모두 잃은 고깃덩어리가 된 괴물은 꿈틀거리며 자신을 죽인 존재에게서 도망쳤다.

본능적인 공포와 생존 욕구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말 그대로 단세포적인 행동이었다.

힐리아는 지금 그따위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겨우 자신을 잡아 두던 가스팔의 팔에서 벗어나 아르파드를 향해 달려갔다.

조금 전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나, 격렬함이 거짓말인 것처럼 아르파드는 우뚝 멈춰 서 있었다.

가스팔을 내려 보듯 몸을 조금 숙인 채로.

여전히 붉은색의 마력이 그의 온몸을 휘감아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힐리아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달려들었다.

아르파드의 마력이 자신을 해칠 리 없다는 굳은 믿음의 결과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르파드는 힐리아의 품 안으로 무너져 내렸다.

“아르파드!!!”

타오르던 불꽃이 마지막으로 빛을 내고 사그라드는 것처럼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붉은 마력도 픽 꺼져 버렸다.

힐리아는 아르파드를 안아 무릎 위에 올리고 얼굴을 보았다.

남자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 겨우 입술을 달싹였다.

“미…안…….”

이게 무슨 의미인지 힐리아는 바로 이해했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데 알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살리려고 죽으면 용서 안 할 거라고 한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고통이 비명처럼 쏟아졌다.

“웃기지 마! 누가 죽게 놔둘 줄 알아?!”

하지만 눈이 감겼고, 숨소리가 멎었다.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힐리아는 아르파드의 가슴팍에 귀를 대어 심장 소리를 찾았다.

아직 낮고 작게 울리는 고동이 귀를 두드렸다.

그러나 명백하게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다.

아르파드가 살아 있다는 증거는.

그 순간.

힐리아는 환상을 보았다. 지금 그녀는 어떤 신물도, 신성력 한 톨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 <운명의 서>는 절대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책장을 넘겨 가장 마지막 페이지를 보여 줄 수도.

그럼에도 힐리아는 보았다.

마지막 장에 적혀 그동안 그녀를 가장 괴롭혔던 ‘그 문장’을.

“네 의사와 상관없이 때가 되면 너는 아르파드를 죽여 완전케 하리라.”

「신부는 아르파드의 심장을 찔러 죽여 완전케 하리라.」

그 진짜 의미가 비로소 벼락처럼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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