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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90화 (190/210)

190화

본인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으나, 그의 심장을 중심으로 붉은색의 마력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명 아르파드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힘, 마력이었다.

하지만 그 힘이 전에 없이 압도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혼과 육체가 짓눌릴 듯한 압력.

비슷한 감각을 아르파드는 이미 느낀 바 있었다.

무의식 안에서, 회귀 이전의 모든 기억을 되찾았던 그때.

그 순간 아르파드는 깨달았다.

그가 되찾은 압도적인 양의 기억은 곧 강대한 마력이라는 것을.

이렇게까지 거대하고 압도적인 힘은 달리 있을 수 없었다.

‘아르타누스!’

드래곤 아르타누스는 후계자인 그에게 이미 자신의 힘을 넘겼다.

무한히 반복되는 회귀의 형태로.

이는 아르파드가 아르타누스의 정당한 후계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르파드는 힐리아를 살리기 위해 이 힘을 넘겼다.

이어진 세 번의 회귀.

그 끝에 맞이한 것이 지금의 삶.

이는 자신이 그녀에게 준 반지에 담을 수 있었던 힘의 한계다.

그렇다면, 남은 드래곤의 힘은 어디로 간 것일까?

달리 갈 곳이 없을 테다.

그건 사실 처음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한 곳에 잠들어 있었다.

아르파드 자신의 안에.

기억을 모조리 되찾고, 힐리아의 영혼과 무의식에서 접촉한 이후 강렬한 힘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몸 안에 타오르는 태양을 품고 있기라도 한 느낌.

그 힘은 주인의 강렬한 염원에 반응해 형태를 바꾸었다.

아르파드는 이 힘에 자신을 온전히 맡겼다.

아르파드의 심장에서 뿜어지는 붉은 마력은 점점 더 색이 짙어지고, 더욱 커다랗게 퍼져 나갔다.

마침내 아르파드를 중심으로 마력 형태가 이뤄진 순간.

파아앗―!

금빛 드래곤의 환영이 아르타누아 평원 위로 날아올랐다.

두 날개를 편 용은 그대로 동쪽 끝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심장, 영혼이 있는 곳으로.

이 모습을 목격한 이들은 경악했다.

“세상에! 드래곤이시다!”

“아르타누스시여!”

황도부터 대륙 동쪽 끝에 이르기까지 드래곤의 비행을 목격한 이들이 끝없이 줄을 이었다.

그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절을 올렸다.

아르타누스와 이스트리드에 이어 새로운 신화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 * *

둥지 안에서 빈 껍데기에 가까운 몸을 말고 있던 거대한 금빛 드래곤 아르타누스는 천천히 거대한 머리를 들었다.

후계자의 각성이 막 시작되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수정 관 속에 안치된 제 신부를 내려 보며 속삭였다.

-얼마 남지 않았어. 나의 이스트리드. 내가 당신의 곁으로 갈 날이…….

동시에 아르타누스는 알 수 있었다.

-이제 각성의 실마리를 잡은 것뿐. 결국 용을 완전하게 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신부뿐.

결국 후계자와 그 신부는 아르타누스가 예언한 대로의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그것이 용이 완전하게 탄생할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를 해방시켜 줄 수단이었으니까.

아르타누스는 다시 긴 머리를 바닥에 뉘었다.

* * *

“헉! 허억!”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비강을 가득 채운 냄새와 입과 목구멍에서 치솟는 맛이 모조리 녹슨 쇠의 것인 걸 보면 지금 제 꼴을 알 만했다.

시야 역시 붉었다.

손으로 코와 입가를 훔치자, 검붉은 피가 잔뜩 묻어나왔다.

기침하자 핏덩어리가 바닥으로 왈칵 쏟아졌다.

지금 아르파드는 단 하룻밤 만에 베네타 근교에 도착해, 피를 줄줄 쏟아 내는 중이었다.

드래곤의 힘을 사용한 대가는 이토록 지독했다.

광증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 외에 아르파드가 이렇게까지 지독한 고통을 느껴 보는 건 처음이다.

생명 그 자체를 갈아 낸 기분.

온몸의 마력이 바닥까지 말라 버린 감각은 어머니의 배 속에서도 느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무리했다면 용혈의 소유자가 가지는 강력한 생명력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결국 해냈다.

막 떠오르는 태양을 등진 채, 대륙의 동쪽 끝 베네타에 도착했다.

힐리아가 배를 타고 대륙을 떠나기 전에.

그는 비틀거리며 나무에 기대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셔츠를 찢어 엉망이 된 얼굴을 닦아 냈다.

코피와 각혈로 얼룩진 얼굴로 힐리아를 만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실핏줄이 다 터져 핏발 선 눈은 어쩔 수 없었다.

나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찾아가는 것도 말이 안 되니까.

그는 본인이 한 말을 지켰다. 제 신부를 찾아 정말로 땅끝까지 쫓아온 것이다.

아르파드가 힐리아의 영혼과 접촉했을 때 알아낸 건 베네타의 부두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힐리아가 배를 타고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동대륙과의 교역 중심 항구인 베네타는 작은 도시가 아니다.

혼자서 도시 전체를 뒤져서 찾아내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고 비효율적이었다.

그 때문에 아르파드가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베네타 내에서 가장 큰 용병 길드 문을 걷어차 박살 내고 들이닥쳤다.

쾅―!

문이었던 것의 잔해를 보고 분기탱천해서 나선 용병 대여섯 명이 피떡이 되어 바닥에 나동그라진 뒤.

베네타 용병 길드 지부장이 아르파드 앞에 나타났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따위 행패를 부리는 건가?!”

아르파드는 아무런 말도 없이 품속에서 둥근 금빛 명패를 하나 꺼내 지부장에게 던졌다.

“…뭐야?”

지부장은 불쾌해하며 명패를 확인하다가 그대로 기절할 뻔했다.

“제, 제, 제랄드 님?”

제랄드라는 이름의 용병이야 대륙 내에 넘쳐 흘렀다.

하지만 황도의 용병 길드에서 직접 발행한 이 금빛 명패를 가진 이는 하나뿐이다.

용병왕 제랄드.

알려진 제랄드와 지금 아르파드의 외모가 다르다는 건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용병왕이 가면으로 얼굴과 정체를 숨기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제랄드가 제국 내 용병 길드를 장악하여 용병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후, 그를 사칭했다가 목숨을 잃은 자들이 기백이 넘었다.

이제 와서는 아무리 간 큰 자도 감히 용병왕을 사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저 금패는 위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부장을 비롯한 용병들은 순한 양처럼 아르파드 앞에 도열했다.

“어, 어찌 이런 누추한 곳에 용병왕께서 친히…….”

아르파드는 차갑게 말했다.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귀부인과 20대 중반의 젊은 기사, 그리고 비슷한 나이대의 하녀. 어제 베네타의 부두에 있었을 거다. 이 셋이 포함된 일행을 찾아내라.”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살기 어린 목소리였다.

* * *

용병 길드를 뒤집어 놓고, 그들이 정보를 물어 오길 기다리며 아르파드는 깨끗한 물로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셔츠를 새로 구해서 입었다.

‘재회를 엉망인 꼴로 할 순 없어.’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인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를 찾으라고 명령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들키지 않으려면 그것부터 바꿨을 거야. 염색이라도 했겠지.’

하지만 눈동자 색은 염색 같은 게 불가능하다.

물론 여신의 신물 하나를 사용하면 외모를 아예 다르게 보일 수 있었다.

아르타누아 신전에서 에반젤린이 힐리아인 체 했던 것처럼.

하지만 힐리아가 황궁을 나와 여행한 지 벌써 한 달 가까이 되었다.

그동안 내내 신물의 힘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는 건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그러니 눈동자 색까지는 바꾸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애니와 벨테인은 힐리아를 따라갔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셋이 포함된 일행을 찾는 것이 맞다.

물론 귀부인과 하녀, 기사로 이루어진 일행이 그들만 있을 리는 없지만, 적어도 보라색 눈은 희귀했다.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그는 곧 확인할 수 있었다.

두어 시간 만에 길드 지부장은 어제 부두에 들른 적 있는 여자 둘, 남자 한 명이 포함된 일행에 대한 정보를 찾아냈다.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 포함된 일행은 꽤 여럿이 있었습니다만… 보랏빛 눈동자의 귀부인은 한 명뿐이었습니다.”

아르파드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어제 부두에서 동대륙으로 가는 배를 타려다가 귀부인이 쓰러져서 일정을 미루고 여관에서 묵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외지인 남자가 한 명 더 합류했다고 하고, 그리고 귀부인께서 기이한 빛을 뿜는 이적을 보이셨다고 합니다.”

아르파드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하다.

힐리아다.

* * *

아르파드는 한달음에 힐리아 일행이 묵고 있는 여관에 달려왔다.

길드 지부장이 가져온 정보에는 묵는 방의 호실까지 있었기에, 아르파드는 헤매지 않고 직진했다.

그리고 안에서 걸쇠가 걸린 문을 맨손으로 잡아 뜯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힐리아!”

여관방 안에는 창백한 얼굴을 한 애니와 벨테인 경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은 경악했다.

“저, 전하?”

“어떻게 여기에?!”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지만 힐리아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르파드는 두 사람을 노려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힐리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르파드의 기대감을 망쳐 놓았다.

살기를 전혀 감추지 않은 채, 그는 힐리아의 두 신하를 추궁했다.

“…힐리아는 어디 있지?”

그러자 뱀 앞에 선 쥐처럼 굳어 있던 두 사람 중 애니가 두려움도 잊고, 왈칵 눈물을 터뜨리며 무릎을 꿇었다.

“아,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가씨께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어요!”

벨테인 경이 입술을 짓씹으며 연이어 설명했다.

“옆방에 묵었던 검은 뱀이 사라졌습니다. 그자가 비 전하를 납치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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