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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89화 (189/210)

189화

“무슨 의미로 하는 소리야?”

나도 모르게 가시가 잔뜩 돋은 어조로 취조하듯 물었다.

그러자 검은 뱀은 빙긋이 웃으며 더더욱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대답이랍시고 내놓았다.

“혹시 아이 아빠가 필요하면 내가 어떻냐는 거지.”

천연덕스럽게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생각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입으로 나왔다.

“무슨 미친 소리야?”

그야 당연했다.

아이 아빠는 멀쩡히 살아 있는데, 왜 갑자기 이자가 그 자리에 입후보한단 말인가.

솔직히 찻잔을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저 웃는 얼굴에 던져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당연히 분기탱천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아가씨를 그따위 말로 모욕하다니, 당장 사과하지 못해요!”

“결투를 허락해 주십시오.”

“안 돼요, 벨테인 경.”

아무리 주시자의 눈을 쓰지 못하는 상태라 해도, 검은 뱀과 벨테인 경이 결투하는 건 위험했다.

소드 마스터 정도는 아니지만, 황도 뒷골목의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자니까.

단순한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명예가 걸린 신성한 결투라고 해서 정정당당하게 싸울 인간이 아닌 탓이 컸다.

‘그리고 지금은 모욕이니, 결투니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니까.’

아르파드는 지금도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거다.

그와 영혼이 한순간 밀접하게 이어졌다. 이제 그 느낌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가 어디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손에 닿을 듯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당연히 아르파드 역시 그러할 거다.

이곳의 위치는 이미 들켰다고 봐야 했다.

내 격렬한 거부에 놀랍게도 검은 뱀은 상당히 아쉬워했다.

“나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제안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까부터 미친 소리만 계속하고 있으면서 무슨 자신감이야?”

“그야 당신은 지금 황태자와 이혼하고… 음? 이혼…했었나? 뭐지……?”

그는 잠시 기억에 혼란을 느끼는 듯했다.

이혼에 대한 검은 뱀의 인식을 통해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운명의 서>에 써넣은 이혼 건은 아르파드의 저항으로 지워져 ‘없던 일’로 바뀌었다는 걸.

내 주변에 있는 검은 뱀이 이렇게 인식한다면, 다른 이들은 아예 이혼 사실 자체를 기억 못 할 수도 있었다.

잠시 혼란스러워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검은 뱀은 곧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이었다.

“어쨌든 지금 당신은 황태자를 떠난 상황인데, 아이의 존재가 알려지면 황실에서 그대로 놔둘 리가 없잖아.”

놀랍게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르파드는 내가 떠나는 걸 용납하지 않을 듯했는데, 임신 사실까지 알면 더더욱 날 놔주려 하지 않을 거다.

“당신이 아이를 황실에 보내 줄 게 아니면 방패로 쓸 아버지가 필요하지 않아?”

“그걸 너로 하라고?”

“응.”

검은 뱀은 산뜻하게 웃었다.

관련도 없으면서 뜬금없이 자기 아이로 받아들이겠다는 헛소리를 이 인간이 할 이유가 있나?

설마하니 나에게 반해 목을 매고 있어서 그런 걸 아닐 텐데 말이다.

무슨 꿍꿍이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나는 차갑게 대꾸했다.

“내가 마탑주의 주박을 없앨 때 당신 정신도 실수로 부숴 버렸나?”

그러자 검은 뱀은 곁눈질로 벨테인 경을 쓱 보았다.

“아, 혹시 이미 정해진 건가?”

너무나도 노골적이었다.

벨테인 경이 경악하고 당황해서 돌기둥처럼 굳은 게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저어 그를 난처함으로부터 구해 주었다.

“아니. 아까부터 헛다리 짚고 망상까지, 생각이 너무 앞서 나가고 있는데…….”

화를 내려다가 나는 곧 체력의 한계에 다다랐다.

숨을 거칠게 내쉬자, 애니가 나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아가씨는 쉬셔야 해요!”

나는 고개를 저으려고 하다가 지독한 어지럼증을 느끼고 낮게 신음했다.

“으윽.”

“확실히 임산부를 너무 무리시키면 안 되지.”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짜내어 말했다.

“됐으니까 그만 꺼지라고. 내가 도와준 은혜를 갚는 방법은 그거니까 얌전히 사라져 줘.”

그러자 검은 뱀은 한숨을 쉬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꺼져드리도록 하지.”

“…?”

정말로 순순히 꺼져 줄 줄은 몰랐다.

검은 뱀은 과장된 제스처로 우아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더니 방을 나갔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내 안도감은 박살 나고 말았다.

밖으로 나간 검은 뱀이 여관방의 곁문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황당해하며 물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그야 옆방이 내 방이니까?”

고급 여관 중에는 귀족이 수행원을 데리고 묵을 때를 대비해 두 개의 방이 작은 문으로 연결된 경우가 있었다.

이 여관도 그런데, 검은 뱀은 연결된 방 두 개를 빌리고 연결 통로 열쇠를 받아 두었던 것이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옆방으로 다시 돌아가 문을 닫으며 인사했다.

“그럼 푹 쉬시길.”

안 그래도 기분이 복잡하고 머리가 아픈데 검은 뱀이 내 화를 자극했다.

없던 힘이 치솟아 그대로 베개를 검은 뱀이 사라진 문에 내던졌다.

하지만 내 몸 상태가 지나치게 안 좋긴 했는지, 베개는 비실비실 날아가 문에 닿지도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축 늘어졌다.

“아아아…….”

애니와 벨테인 경이 걱정하는 말이 들려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왼손 약지에 끼워진 스타틸리아의 별은 어떤 빛도 내뿜고 있지 않았다.

‘아르파드가 괜찮으니 그런 거겠지?’

안도가 되는 한편으로 불안감도 앞섰다.

아르파드는 이 순간도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을 거다.

‘그가 오기 전에 하루빨리 떠나야 해.’

지금 내 몸 상태로 바로 일어서서 배를 타는 건 무리다.

하지만 나에게는 <운명의 서>가 있었다.

사람들의 인식과 의지마저 바꾸고, 존재하는 현실도 개변하는 압도적인 힘.

물론 모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운명의 서>에 내가 다른 대륙으로 이동했다고 적는 건 너무 효율이 안 좋아.’

대가가 상당히 많이 필요할 가능성이 컸다.

<운명의 서>가 나에게 준 지식에 따르면 물리적인 거리나 자연재해는 상위의 신, 천주 신과 지모 신의 영역이었다.

다섯 여신은 이 세계에 살아갈 존재인 인간을 창조했다.

그 때문에 그들의 힘이 집약된 신물 <운명의 서>의 영향력은 인간의 운명과 연관된 일에 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러니 나를 다른 대륙으로 옮겨 주는 것보다 모든 인간이 나와 아르파드가 이혼했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게 더 쉬웠다.

‘그렇다면 잠시라도 내 몸 상태를 좀 나아지게 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최소한 배를 타고 이 대륙을 떠날 때까지만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운명의 서>를 불러내려 했다.

그런데.

“…?”

<운명의 서>가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

스타틸리아의 별을 비롯한 다른 신물들도 역시.

곧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신물들과 내 몸을 모두 합쳐, 신성력이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설마… 아르파드의 의식과 접촉할 때 다 소진된 거야?’

그리고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나는 단순히 아르파드와 물리적 거리를 넘어 영혼의 상태로 접촉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광기에 빠질 뻔한 그를 구해 냈다.

이 역시 따지고 보면 이미 벌어진 현실을 ‘개변’한 것이라는 걸.

그 대가로 나와 신물의 신성력이 완전히 바닥날 정도로 힘을 다 써 버렸다는 것도.

<운명의 서>의 힘이 회복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가늠도 되지 않았다.

이 힘을 이용해 당장 베네타에서 떠나려던 내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다.

한숨밖에 안 나왔다.

‘지금으로서는… 황도부터 여기까지 아무리 빨리 와도 3주는 걸릴 거리라는 게 유일하게 기댈 점인가.’

* * *

말을 달리며 아르파드는 이를 갈았다.

‘너무 멀어!’

힐리아가 어디 있는지는 영혼을 접촉한 순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동쪽 끝의 항구도시 베네타.

게다가 힐리아는 그곳에서 배를 타고 타 대륙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그가 탄 말은 제국 내에서 가장 뛰어난 명마였다.

게다가 넘쳐흐르는 마력을 말에게까지 나누어 주어 근육을 활성화하는 미친 짓을 해서 속도를 두 배 이상 높였다.

하지만 부족했다.

자지도, 먹지도 않고 계속 말을 달린다 해도 베네타까지는 2주 가까이 걸렸다.

이대로는 아르파드가 베네타에 도착했을 때 힐리아는 이미 떠난 뒤일 게 분명했다.

지독한 갈망과 좌절이 아르파드를 괴롭혔다.

힐리아는 너무나도 잔인했다.

아르파드의 심장을, 그리고 영혼까지 약탈해 놓고는 떠나 버렸다.

뒤늦게 쫓아가고는 있으나, 그녀를 잡을 길은 요원해 보였다.

땅끝까지라도 쫓아가겠다 말했고, 실천할 생각이었다.

설사 다른 대륙 너머로 도망친다 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 잡을 거다.

하지만 힐리아와 떨어져 있는 기간이 늘어나는 게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물 한 모금 없이 사막 한가운데 내던져진 것보다 잔인하고 고통스러웠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의 곁으로 갈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떠한 대가라도 기꺼이 치를 수 있었다.

그 순간, 아르파드는 이상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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