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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88화 (188/210)

188화

‘뭐지? 내가 어떻게 비 전하께서 궁을 나가시는 걸 막지도 않고, 신경도 전혀 안 쓰고 있었지?’

<운명의 서>의 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율켄은 그저 당혹스러워할 뿐이었다.

실제 일어난 적 없고, <운명의 서>에 적혀 있었을 뿐인 두 사람의 이혼에 대한 건 당연히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율켄에게는 하루아침에 힐리아가 사라지고, 자신을 비롯한 주변인이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말도 안 되는 상황.

깊이 생각하려 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헝클어졌다.

잠시 혼란에 빠져 있던 율켄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자신은 지금 아르파드를 막으려 하던 차였다.

“아, 잠깐! 전하아!”

하지만 이미 아르파드의 인영은 저 멀리 사라져 버린 뒤였다.

시야의 끄트머리에 먼지구름이 일었다.

그 잠깐 사이에 얼마나 멀리 달려간 건가?

율켄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쳤다.

“지금 황궁 전체가 대관식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주인공이 사라져 버리면 어쩌시려는 겁니까?!”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던 율켄은 곧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지금 그들이 해 온 대관식 준비는 아르파드 혼자만의 것이었다.

보관, 예복을 비롯한 모든 준비는 아르파드에게 맞춘 황제의 것뿐이었다.

응당 황제의 옆자리에 서야 하는 황후를 위한 준비가 너무나도 미흡했다.

율켄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대관식 준비에서 황후의 것만 빠져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황제가 양위 의사를 밝힌 직후, 대관식 준비가 시작되었을 때는 당연히 황후를 위한 것들도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황제는 황후궁을 아예 힐리아의 취향에 맞춰 수리하라고까지 말한 차였다.

어찌 보면 아르파드보다 힐리아를 위한 준비가 먼저 시작되었다고 봐도 좋았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인가 황후를 위한 준비는 멈춰 있었다.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손을 놨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경악은 잠시였다.

율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펠릭스 율켄이라는 남자는 지극한 현실주의자였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나중에 고민하고 따져 봐도 될 문제였다.

분명한 건 대관식에 황후의 자리가 비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아르파드가 사라진 동쪽을 보며, 율켄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렇게 흉흉한 분위기로 달려가셨으니 어떻게든 함께 오시겠지.’

제발 대관식 전날까지만 돌아와 달라고 빌면서 율켄은 벌떡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녀장! 시녀장님을 모셔오고! 데임 로렌(애니)과 벨테인 경…은 없지. 뮤젠 경, 이세핀 영애에… 으악! 모르겠다! 있는 대로 다 불러와!!!”

아르파드에게 사직을 청했지만, 허락받지 못하고 대관식 준비 중이었던 뮤젠 공작 부인.

그리고 당연히 자신이 아르파드의 기사라 생각하면서도 계속 위화감을 느끼고 있던 아론.

황태자궁에 들를 때마다 이상한 허전함을 느끼곤 했던 악시온 대공비.

또 프리다(이세핀)는 힐리아의 대관식 드레스를 만들다가 중간에 이혼 소식을 듣고도 손을 놓지 않았다.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지 못하면서.

이혼 사실이 지워져 버린 지금, 이들은 당혹감과 이질감을 가진 채 황태자궁으로 달려왔다.

“왜 준비가 하나도 진척이 안 되고 있었던 거죠?!”

율켄은 환하게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되겠군요.”

뮤젠 공작 부인이 당혹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일정상 도저히 무리 아닌가?”

율켄은 환하게 웃었다.

“걱정 마세요. 안 자면 어떻게든 됩니다.”

“저어, 그런데 비 전하께선 어디 계신 거죠? 한 달 넘게 저희도 못 뵈었는데…….”

“아, 그건 걱정 마세요. 황태자 전하께서 알아서 하실 겁니다.”

선명한 광기 어린 미소였다.

* * *

“…….”

너무 놀라니 말문이 막혔다.

임신? 임신이라고?

3번의 회귀와 그 이전까지 모두 포함해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내가 멍하니 앉아 있자 의사가 식은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모르셨던 모양이군요.”

“전혀…….”

“어지럼증과 구역감이 심하시지요?”

“그렇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건 전형적인 임신 증상이었다.

‘최근 2, 3주간 몸 상태가 너무 안 좋긴 했는데, 상상도 못 했어.’

회귀 때문에 나는 아예 처음 경험하는 일에 대한 면역이 약했다.

어떤 일이든 회귀 전 경험을 기반으로 가늠하고 짐작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마차를 너무 오래 타서 멀미하는 건 줄 알았는데.”

“얼마나 오래 마차 여행을 하셨기에 그러십니까?”

검은 뱀이 냉큼 끼어들었다.

“2주 넘었네.”

의사는 혀를 찼다.

잠깐, 검은 뱀 저 인간은 갑자기 왜 끼어드는 거야?

하지만 지금 닥친 현실의 충격이 너무 커서 검은 뱀에게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달 손님이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그러니까…….”

머리가 안 돌아갔다. 애니가 대신 대답해 준다.

“지난달에 없긴 하셨습니다.”

“그러면 2달이 좀 안 되셨을 겁니다. 임신 초기에 너무 무리하셨군요. 앞으로는 조심하십시오. 자칫 잘못될 수도 있었습니다.”

의사의 경고에 나도 모르게 아직 판판한 배에 손을 가져가게 된다.

의사의 말이 맞다고 주장이라도 하듯, 그리고 나를 조금 혼내려는 듯 배가 저릿했다.

‘설마 정말로 잘못된 건 아니겠지?’

더럭 겁이 났다.

다행히 통증은 더 없었다.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나는 깨달았다.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이 아이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의사는 절대 안정하라고 신신당부한 뒤 몸을 보할 약을 지어 주고 돌아갔다.

“…….”

“…….”

잠시 여관방 안은 괴괴한 침묵에 지배당했다.

나는 아르파드 걱정에 더해 갑자기 닥친 몸 상태 대한 경악으로 정신이 없었다.

애니와 벨테인 경은 경악하는 한편 나에 관한 걱정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제가 좀 더 챙겼어야 했어요.”

“아니야. 고집을 부린 건 나잖아. 애니.”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셔야 했는데…….”

“벨테인 경은 최선을 다했어.”

이 두 사람의 표정에 곧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임신 사실에 경악하고 나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이어, 현실 인식이 고개를 든 모양이다.

내가 임신했다면 아이의 아버지는 한 명일 수밖에 없으니까.

애니와 벨테인 경의 표정이 복잡해지고 또 창백해졌다.

하지만 먼저 이에 대해 언급하지는 못했는데, 중간에 낀 외부인을 신경 썼기 때문이다.

이 유일한 외부인이 무신경하게 그것부터 지적해 버렸다.

“그러면 레이디의 아이는 지금 거의 유일한 황손 아닌가?”

“…!”

애니와 벨테인 경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이 남자의 신분이나 정체를 모르는 두 사람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체를 다 아는 나는 더더욱 왜 이 인간이 지금 여기 끼어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이 인간부터 좀 치우자.’

거슬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특히나 만난 지 얼마 안 된 낯선 남자 앞에서 너무 내밀한 사정까지 알려져 버린 상황도 싫었다.

나는 애니의 도움을 받아 겨우 침대 등받이에 등을 대고 비스듬히 앉을 수 있었다.

애니는 꿀을 탄 허브티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다 마시셔야 해요.”

“알았어.”

잔을 두 손으로 쥐자, 온기가 온몸에 퍼졌다.

달콤한 차를 조금 마시고, 겨우 기운을 내 대화를 시작할 엄두를 낼 수 있었다.

“크라우 경.”

애니와 벨테인은 이 남자의 정체를 몰랐다.

그래서 별명이나 성이 아니라 그냥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검은 뱀은 살짝 웃으며 나를 보았다.

상쾌한 미소가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의외다.

아마 마탑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덕분에 살맛이 나서 그런 모양이지.

“드디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인정해 주시는군. 감격했어.”

“의사를 데려와 준 건 고마워.”

“별말씀을.”

“그러니 이걸로 빚은 전부 갚은 걸로 하자.”

“…뭐?”

왠지는 모르겠는데, 남자의 하나뿐인 눈이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내가 당신을 한 번 도와줬고, 이번에 당신이 날 도와줬잖아. 그걸로 된 거지. 이제 더는 연관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게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나아.”

이제 좀 꺼지라는 나의 축객령이었다.

그런데 검은 뱀은 내 말에 수긍하고 따르는 게 아니라, 전혀 예상 못 한 폭탄을 던졌다.

“그보다 필요하지 않나?”

“뭐가?”

“아이 아빠.”

“…뭐?”

손에서 잔이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와장창! 도자기가 박살 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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