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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81화 (181/210)

181화

그때 아르파드가 내 왼손을 덥석 쥐어 왔다.

아르타누스의 용언 마법이 새겨진 바로 그 손을.

잘 참고 숨겨 왔으면서도 아르파드가 왼손을 잡은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을 뿌리치고 말았다.

탁!

내가 더 놀랐다.

“아, 미안…….”

“…….”

아르파드는 동그란 눈을 하고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내 왼손을 커다란 손으로 감쌌다.

“싫어?”

“아니. 아니야.”

“싫으면 언제든 이야기해.”

아르파드는 정말 그답지 않게 부드럽게 말하고 있었다.

“뭐라도 좋으니까 내가 털끝만큼이라도 싫거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말해 줘.”

“…그런 거 없다니까.”

“뭐든 다 고칠 테니까. 당신에게 맞출 수 있어.”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아르파드가 제 감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드러난 날것 그대로의 표정을 보았다.

“그러니까, 이혼만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돼.”

“…!”

이번만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은 내가 계속 숨기고 싶어 하는 약점을 찌르고 있었으니까.

나는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웬 이혼 얘기야? 혹시 그사이에 진짜 애인이 생긴 건 아닐 테고.”

내가 몇 번이나 그에게 했던 말을 언급했다.

과거 나는 아르파드에게 곧 연인이 생길 거라고 믿고 있었고, 어이없는 말을 들으면 이렇게 반응하는 게 나다웠으니까.

아르파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한순간도 존재한 적 없는 애인 소리는 오랜만에 듣는 기분이군.”

이번에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뜰 차례였다.

“진짜 없어?”

“이제 와서 갑자기 의심병이 도진 건 아니겠지? 애인이 없다는 걸 이제 당신이 더 잘 알잖아.”

회귀에 대해 고백하면서 이것도 말해 줬었다.

내가 왜 그에게 애인이 생길 거라 확신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아르파드는 꽤 억울해했다.

“그런 이유로 내가 당연히 불륜할 남편 취급을 받아 왔던 거야?”

“미안.”

“…아니. 아니지. 이 경우엔 당신이 지금까지 본 ‘남편’의 문제가 커. 루드비히 놈이 당신이 이상한 선입견을 품도록 난잡하게 굴었을 테니…….”

아르파드의 분노와 살기는 다시 한번 그 자리에 없는 루드비히에게 향했다.

실종된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르파드는 회귀에 대해 들은 뒤 루드비히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산채로 씹어 먹을 것처럼 굴고 있었으니까.

여하튼, 아르파드에게 애인이 있을 리 없다는 건 이제 잘 알았다.

아르파드도 그걸 잘 알고 있으니 저렇게 억울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거겠지.

나는 아르파드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나 말이야.”

“…뭐?”

“내가 당신 애인 아니야?”

아르파드의 눈이 톡 건드리면 데굴데굴 굴러갈 듯 커졌다.

곧 그는 씩 웃었다. 나는 이 표정을 이제 안다.

내가 그가 아주 좋아하는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보이곤 하는 것이다.

그는 침대 위에 걸터앉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래. 당신 말이 맞군. 나에게는 애인이 있었어.”

입술끼리 살짝 마주 닿았다가, 그의 숨결에 밀어(蜜語)가 스며들었다.

“바로 여기에.”

분명 숨결에도, 단어에도 맛은 없을 거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달콤할까.

우리는 다시 한번 뜨겁고 애절하게 사랑을 확인했다.

아르파드는 빈틈없이 나를 꼭 끌어안은 채 애달프게 속삭였다.

“나는 계속 악몽을 꿔.”

“어떤… 악몽?”

“당신이 나를 버려두고 사라지는 꿈. 깨고 나서 당신이 옆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안심할 수 있는 거지.”

나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평온함을 얼굴에 덮었다.

그리고 아르파드의 뺨에 키스했다.

“바보네. 꿈은 그냥 꿈인 거야.”

내가 그에게 남긴 단 하나뿐인 거짓말이었다.

* * *

이제 남은 건 단 하나였다.

‘아르파드의 광증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것.’

그건 우리가 정말로 서로를 사랑한다는 증명이며, 내가 그를 떠나도 된다는 확언일 테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진홍월의 시기가 왔다.

내가 그를 만나고 세 번째로 떠오르는 진홍월이었다.

밤이 되고, 기묘한 붉은 달이 높이 떠올랐다.

상아의 침실 테라스에서 우리는 진홍월이 떠오르는 걸 기다렸다.

이후 붉은 달빛 아래에서 아르파드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스스로의 상태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아르파드는 자신의 광증이 사라졌으리라는 걸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달빛 아래 그것이 증명되자, 신기하고 벅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고마워.”

“응? 뭐가?”

그가 기뻐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왜 나에게 고맙다고 하는 건지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게 새삼 벅차고 믿어지지 않아서…….”

그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명을 손에 넣은 셈이었다.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반대로 내게도 확증이 주어졌다.

아르파드도 날 사랑한다는.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형태로 손안에 들어오니, 기쁘고 가슴이 벅찬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나만은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다.

광증이 사라졌다는 것은 내가 그의 곁을 떠나도 된다는 증명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서글프고 씁쓸한 깨달음이었다.

이 감정을 잊고 싶어서 나는 아르파드를 침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힐리아?”

그를 침대에 눕힌 다음 무릎 위에 타고 오르자, 아르파드는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갑자기 왜…….”

“당신이야말로 왜 갑자기 순진한 척해. 매일매일 침대 위에서 그렇게 난폭한 짐승처럼 굴었으면서.”

“그거야…….”

나는 무의식적으로 상반신을 일으키려는 아르파드의 어깨를 눌렀다.

커다랗고 단단한 남자의 몸이 내 가벼운 손길에 순한 양처럼 다시 누웠다.

나를 올려다보는 시선이 마치 홀린 듯 보였다.

그가 그렇게 나를 우러러보고 있는 게 꽤 마음에 들었다.

아르파드의 침의 끈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래서, 싫어? 이런 건?”

그러자 이 잘생기고 늘 빈틈 없는 남자는 잠시뿐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얼굴을 했다.

“아니, 너무 좋아.”

우리는 진홍월이 뜨는 기간 동안 침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 * *

진홍월이 끝난 아침.

아르파드는 상아의 침실에서 눈을 떴다.

시트는 난잡하게 구겨져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평소와 다른데.’

아르파드 혼자 자고 일어난 침대는 그가 누운 자리만 빼고 늘 반듯하고 깨끗했다.

그는 길게 잠들지도 않고, 한번 잠들면 죽은 듯 반듯하게 누워만 있었으니까.

이런 상황은 꼭…….

아르파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지난 일이었으니까.

어쩌면 오랜만에 상아의 침실에서 잠들어서 느끼는 위화감일지도 몰랐다.

어쩐지 미묘하게 불쾌하고 거슬리는 기분 그대로 아르파드는 방을 나섰다.

곁방에서 대기하던 시종들이 다가와 그의 단장 시중을 들었다.

그들 사이에 거슬리는 얼굴 몇이 끼어 있었다.

시녀들 사이에서 정중히 서 있는 애니카 로렌.

그 여자가 남기고 간 사람이다.

“?”

아르파드는 갑작스러운 위화감에 잠시 우뚝 멈춰 섰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하지만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던 위화감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역시 상아의 침실에서 혼자 잠든 게 안 좋았던 모양이다.

그때 율켄이 조심스레 물었다.

“…상아의 침실을 정리해 두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젠 주인이 없으니까요.”

맞는 말이긴 했다. 게다가 곧 아르파드는 대관식을 치르고 나면 본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될 터였다.

전 주인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게 정리해 두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키지 않았다.

“…아니. 굳이 그런 데 낭비할 인력이나 시간도 없지 않나. 놔둬.”

“…예. 전하.”

아르파드는 다시 치솟는 위화감과 불안감을 지르밟으며 천천히 상아의 침실을 나섰다.

‘누군가’의 배웅 없이 이렇게 혼자 방을 나가는 것은 어째서인지 매우 기분이 나빴다.

* * *

다행히 황궁 내부는 큰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 빠져나와 있음에도 말이다.

지금 내 손안에 쥐어진 신물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된다.

빛으로 짜인 책, <운명의 서>를 펼쳐 한 페이지를 내려 보았다.

거기에는 지난 새벽 내가 피로 써서 추가한 문장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힐리아와 아르파드는 혼전의 합의대로 무사히 이혼했다.」

그리고 이 내용은 대부분 사람에게 인식되고 있었다. 당연한 사실인 것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아르타누스의 용언을 부수는 데 실패했던 <운명의 서>는 내가 아르파드를 떠나는 것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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