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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78화 (178/210)

178화

황궁 신전에서 아르파드가 마탑주의 육체를 죽이기 전 나는 충분히 대비해 두었다.

마탑주는 그 미친 행동이나 말투와 달리 신중한 자였다.

3회차 때 마탑에서 실험체로 생활하면서 나는 그가 육체를 갈아타는 걸 직접 본 적 있었다.

과도하게 주입된 마력 폭주로 호문쿨루스 한 개체가 폭발을 일으켰고, 나는 거기 휩쓸릴 뻔했다.

아마 가스팔이 제 몸으로 막아 주지 않았다면 죽었을 거다.

가스팔의 상체 절반이 날아갈 정도로 강한 폭발이었으니까.

기묘한 색의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 나는 돌처럼 굳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란 것도 잠시, 가스팔이 죽었다면 그대로 탈출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막 떠올리던 찰나였다.

철벅거리며 다가온 또 다른 가스팔이 귀찮다는 듯이 나와 본인의 시체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히익……!”

“아아. 이런 어이없는 사고로 예비 목숨을 하나 소모하다니. 이건 계산 밖인데…….”

나는 덜덜 떨면서도 그에게 물었다.

“왜, 왜 날……?”

“왜 널 살렸냐고?”

가스팔은 자신의 이전 육체에 남은 마력을 흡수하며 히죽 웃었다.

“그야 너는 아주 귀한 ‘신부’잖아? 그냥 놔뒀다간 갈가리 찢겨 죽었을 거 아냐. 내 목숨 하나 정도와 맞바꿀 가치는 있지.”

그는 본인의 육체와 목숨조차도 도구로 생각하는 자였다. 희귀한 실험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한 번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물론 한두 개 이상의 예비 목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때의 일로 나는 마탑주의 첫 번째 예비 육체가 마탑 내부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물론, 대략적인 위치도 알고 있었다.

그 밖에 예비가 더 있다는 사실을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위치에 대한 힌트 역시 마탑주와의 기억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이 기억을 바탕으로 사전에 가스팔의 예비 육체에 대한 정보는 최대한 미리 모아 두었다.

용병왕 제랄드의 용병 길드, 율켄이 이끄는 정보기관, 페니 테라스 등등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4번째 예비 육체까지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마탑주의 목을 날림과 거의 동시에 남은 예비 육체들을 파괴했다.

모든 곳에 믿을 만한 이들을 보내서 현장을 지휘하고, 뒤처리까지 하도록 명령해 두었다.

벨테인 경, 뮤젠 경, 아르파드가 엄선한 용병단의 부하들 등등.

이자벨과 에반젤린이 끌려가고, 가스팔의 목이 떨어진 이후.

나는 우선 마탑주의 예비 육체들을 제대로 처리했는지부터 확인했다. 뒤처리까지 이상 없었다는 보고까지 꼼꼼히 챙겼다.

물론 그렇다 해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사실 테슬란 공작을 만난 이유 중에는 이것도 있었다.

‘이자는 마탑주가 확실히 죽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가 나에게 진실만을 말해 줄 거라는 보장도, 그래야 할 의무도 없었다.

결국 어떻게 잘 구워삶느냐의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공작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대가를 내세우기로 했다.

테슬란 공작의 안대로 가려진 눈 안에 있는 ‘것’, 그걸 바로 찔렀다.

* * *

공작이 입을 열었다. 단어 사이사이에 이를 가는 소리와 살기가 진하게 섞여 있었다.

“내 안대 안에 뭐가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태도로군?”

반말로 바뀌었다.

이 순간 힐리아의 눈앞에 있는 건 테슬란 공작이 아니라, 검은 뱀이었다.

뒷골목에서 태어나 바닥을 구른 끝에 정점에 오른 남자.

그의 살기는 만만치 않았다. 아마 일반인이라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힐리아에게는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아론이 곁에서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없었더라도 힐리아의 태도는 여전히 평온했을 거다.

그녀는 이미 세 번의 죽음과 온갖 고난을 겪었다. 거기에 드래곤 아르타누스와도 대면해 보기까지 했다.

짙은 용혈의 소유자인 황제와 아르파드의 신경전 앞에서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정신이 있었다.

‘이 정도는 가렵지도 않지.’

힐리아는 태연한 웃음을 내세워 검은 뱀의 살기를 마주했다.

“그것도 모르면서 거래를 제안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서.”

힐리아의 태연함에 검은 뱀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의 살기 앞에서 이렇게까지 태연한 사람은 정말 드물었기 때문이다.

‘무성한 소문을 들었을 때는 과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는 그 이상이군.’

예상보다 대단한 여자가 그를 협박하고 있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좋았을 거다.

그것도 검은 뱀 본인과 마탑주 외에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어떻게 알고 약점을 찔러 오는 건지 모를 일이다.

당혹감을 넘어 미약한 경외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이런 감상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았다.

힐리아가 연이어 물었다.

“왼쪽 눈과 마탑주 가스팔 사이의 연결은 아직 남아 있나?”

“…정말로 알고 있군.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설마 가스팔 놈이 나불거리고 다닌 건 아닐 텐데.”

“대답해 줄 거라 생각하고 한 질문은 아니겠지.”

검은 뱀은 살짝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리고 외눈으로 그녀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역시 평범한 여자다. 물론 심상치 않은 미모야 누가 봐도 눈에 띄지만, 그는 그런 껍데기에 휘둘리지 않았다.

검은 뱀의 손이 왼쪽 눈을 가린 안대를 매만졌다.

‘역시 ‘이쪽 눈’으로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겠군.’

검은 뱀은 자신의 왼쪽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풀었다.

안대가 가리고 있던 남자의 왼쪽 눈에는 사람의 안구가 아니라 기묘하게 빛나는 물건이 끼워져 있었다.

붉게 빛나는 안구 모양의 둥근 광석에는 복잡한 마력 회로와 마법진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기괴한 광경에 아론은 잔뜩 경계하며 힐리아의 앞을 막아섰다.

“괜찮아요. 뮤젠 경.”

“비 전하!”

“저건 물리적으로든, 마법적으로든 살상력이 없으니까.”

검은 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상냥한 배려에 감사하며 잘 확인하도록 하지.”

검은 뱀의 왼쪽 눈이 날카로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안대에 가려진 그의 눈은 강력한 마도구, 주시자의 눈.

그는 마도구를 구동하게 만드는 살아 있는 마법진이자, 호문쿨루스라 할 수 있었다.

검은 뱀, 크라우 테슬란은 황도 빈민가에서 태어난 수많은 아이 중 하나였다.

가스팔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실험체를 확보했고, 그 장소에는 빈민가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빵 쪼가리에 현혹되어 끌려온 아이 중 살아남은 건 그 하나였다.

성인이 될 때까지 쓸모와 능력을 증명한 끝에, 가스팔과 거래하여 마탑에서 살아 나온 인간도.

“좋아. 놓아주도록 하지. 너로는 더는 새로운 데이터를 얻기 어렵기도 하고…….”

“할 만큼 실험을 다 했으니 놔주겠다는 소리라니, 역겨워.”

“그래? 그러면 지금까지의 다른 실험체들처럼 너도 표본으로 보관해 둘까?”

“…….”

“그래. 착하지. 물론 공짜는 아니야. 대가는 톡톡히 받을 거고. 아, 그리고 ‘안전장치’도 당연히 해 둬야지.”

검은 뱀이 안대와 온갖 방법으로 왼쪽 눈을 봉인하다시피 한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가스팔은 그를 놔주긴 했지만, 완전히 자유롭게 풀어 준 게 아니었다.

‘주시자의 눈’에 새겨 둔 강력한 마법 주박으로, 그의 위치를 감시하고, 행동을 제약할 수 있었다.

그의 목숨까지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목숨을 빌미로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부려 먹었다.

임시지만 눈을 봉인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아직도 마탑주의 주박에 걸려 있는 꼴이었으리라.

검은 뱀은 주시자의 눈으로 힐리아를 핥듯이 보았다.

이 마도구는 대상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력 한 방울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상 몸 안쪽까지 해부하듯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주시자의 눈을 발동시킨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저 흰색으로 빛나고 있을 뿐인 여자의 실루엣이었다.

어떤 것도 읽어 낼 수 없었다.

“뭐……?”

경악하여 잠시 굳은 순간, 힐리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더더욱 강해졌다.

마치 눈이 멀어 버릴 것처럼.

그와 동시에 검은 뱀은 왼쪽 눈을 가리며 뒤로 물러섰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렀다.

“이게 대체…….”

그제야 검은 뱀은 힐리아의 모습에서 무언가 이상한 걸 깨달았다.

그녀의 왼손 약지에는 분홍색 보석이 빛나고 있었다.

목에는 진주가, 그리고 브로치와 거울.

비밀스럽게 자신을 만나러 오는 것치고는 요란한 차림새라는 생각은 했다.

귀부인의 허영심 때문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여신의 신물이었나.”

다섯 여신의 보석.

조금 전 힐리아가 요구한 테슬란 공작가의 가보는 그 마지막 조각이었다.

레므네미아의 바늘.

이를 제외한 다른 신물들은 이미 힐리아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주시자의 눈을 발동시켜 힐리아를 보려 했던 걸 튕겨 내 타격을 준 것도 그 힘일 터였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네 개가 당신의 것이라 해서 내가 남은 하나까지 내줘야 할 이유가 있나?”

그는 안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절대 이 신물을 내놓을 수 없었다.

이 신물이 그를 지켜 주는 마지막 방패나 마찬가지였으므로.

힐리아는 이번에도 전혀 예상 못한 말을 했다.

“알고 있어. 네가 레므네미아의 바늘을 이용해 주시자의 눈을 봉인하고 있다는 걸.”

“…그걸 알면서도 내놓으라고? 신물의 힘이 없으면 나는 결국 또 가스팔 그놈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 해!”

가스팔은 크라우에게 언제든 당겨 조종할 수 있는 실을 남겨 두었다.

그가 북쪽으로 간 것도, 관심 없던 생부의 가문을 손에 넣은 것도, 결국은 이 신물을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가스팔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이대로는 영영 그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다!’

그 시점에서 크라우는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뭐지? 왜 내가 가스팔이 당연히 살아 있을 거라 생각을……!’

크라우는 신물을 손에 넣은 이후, 주시자의 눈을 봉인해 가스팔과의 연결을 강제로 막았다.

그 때문에 지난 3년 가까이 가스팔의 생각과 의지가 뇌리를 헤집는 감각은 느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살아 있었구나? 게다가 나를 위한 선물을 이렇게 많이 들고 오다니.”

눈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팔다리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라우는 원치 않은 방식으로 깨닫게 되었다.

마탑주 가스팔이 살아 있다는 걸. 그리고 지금, 가스팔이 그의 육체를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

거친 손길이 힐리아의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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