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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67화 (167/210)

167화

결국 황후의 보관은 내게로 보내졌다.

시종장이 공개적으로 나에게 황후의 보관을 들고 왔고, 황후궁의 수리와 정비 역시 내 몫의 일이 되었다.

“곧 네가 쓸 곳이니 직접 손대는 것이 좋겠지.”

황제는 나에게만 황후의 일을 맡긴 게 아니었다.

아르파드에게 상당수의 실권을 이양하며, 사실상 섭정에 가까운 권한을 주었다.

양위할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아직 칙서가 내리지 않았고, 일정이 구체화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덕분에 황태자궁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바빠졌다.

아르파드가 실권을 받으면서, 당연히 그 측근들에게도 일이 몰렸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우리가 아르타누스 때문에 자리를 비운 3개월간의 뒤처리만으로도 정신없는 상황.

거기에 양위 준비까지 더해지자, 정말 끔찍하게 바빠졌다.

우리가 침실에서 나가지 않은 사흘 동안조차 전혀 터치하지 않던 율켄의 인내심이 드디어 다했을 정도다.

율켄은 눈 밑이 시커메진 채로 아르파드를 잡으러 왔다.

아르파드는 저항했으나 소용없었다.

“나는 아직 사고의 후유증에서 다 회복하지 못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또 비 전하 괴롭히시려는 거죠? 적당히 하시고 함께 일 지옥으로 빠지시죠.”

아르파드가 뭐라고 하면 늘 꼬리를 말던 평소의 율켄이 아니었다.

“아하하. 저를 이런 일 지옥에 빠트리고 혼자만 행복해지시겠다니. 말도 안 됩니다. 아하하하하.”

그러면서 나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제발 황태자 전하 좀 쫓아내 주십시오, 비 전하. 저 죽겠습니다.”

“내 아내가 나를 버릴 리 없어!”

아르파드는 이미지나 체면 따윈 다 던져 버린 듯했다.

냉혹한 폭군 황태자는 어디 간 걸까?

나는 조금 당황했다가 웃으며 아르파드를 율켄에게 쫓아 보냈다.

“충신을 과로사하게 하면 안 되잖아요. 어서 다녀와요.”

“냉정해.”

아르파드는 한껏 유치하게 투정을 부리다가, 나에게 진한 입맞춤을 상으로 받은 후에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를 보내고야 겨우 조용하게 혼자 생각을 정리할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시녀들을 전부 물리고 홀로 앉아, 나는 새삼스레 절감했다.

조금 전 아르파드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가슴 저려 하면서.

그가 저런 안 어울리는 짓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앞에서만이었다.

다른 여자들의 앞에서는 늘 겨울 서리보다 차갑던 눈빛이, 내 앞에서만은 봄을 맞은 얼음처럼 녹아내린다.

노골적인 만족감이 비밀스럽게 가슴 한쪽을 물들였다.

가증스럽게 구는 아르파드가 귀엽고 안쓰러워 보이는 건 아마 내 눈에 단단히 콩깍지가 쓰여서겠지.

그러면서도 ‘나를 버릴 리 없어’라는 아르파드의 농담에 가슴이 살짝 덜컥거릴 뻔하기도 했다.

과하게 반응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의 마음을 확신하는 만큼 더더욱.

‘절대 내가 떠나는 걸 용납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

아르타누스가 나에게 건 용언에 대해 말하더라도 결과는 변함이 없을 거다.

언제 해칠지 모른다는 이유로 그가 나를 두려워하거나 멀리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건 싫어. 절대, 싫어.’

아르파드가 나를 꺼림칙하게 여기고, 멀리하는 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절대 괜찮지 않다.

나는 새삼스레 내 마음을 자각했다.

‘떠나고 싶지 않아. 사실 아르파드 옆에 계속 있고 싶어.’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예상한 것 이상으로 아르파드에 대한 마음이 더 깊다는 걸 나는 최악의 방법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어쩌지?’

지키기 위해서는 그의 곁을 떠나는 게 맞다.

아르타누스가 심어 둔 용언이 언제 아르파드를 헤칠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떠나기 위해서는 먼저 아르파드의 광증을 해결해야 한다.

곧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가 아르파드와 이어진 것은 광증만을 해결하기 위해서인가?

광증 문제가 아니었다면 며칠 전 첫날밤을 원하지 않았을까?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아니, 광증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그를 원했을 거야.’

지금 그를 원하는 것처럼.

나는 아르파드를 사랑한다.

이 사실은 나를 엄청난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도 같았으니까.

마치 나 자신이 두 갈래로 잡아 찢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 * *

갈등으로 머리와 가슴이 무거웠지만, 손은 할 일을 계속했다.

정신을 차리니 식사도 안 하고 꽤 많은 업무를 처리해 두었다.

아르파드는 저녁까지 집무실에서 밀린 일을 처리한 뒤 밤이 되자마자 상아의 침실로 달려왔다.

“나 왔어, 힐리… 읍!”

침실로 들어오는 그에게 매달리며 키스했다.

아르파드는 조금 놀랐지만, 그 이상으로 행복해하며 열렬하게 키스를 마주 돌려주었다.

“당신, 갑자기 왜 이래?”

“왜? 내가 밝히는 것 같아서 싫어?”

“그럴 리가. 오히려 너무 행복해서 좀 이상할 정도야. 매일 꾸던 꿈이 갑자기 현실이 된 것 같단 말이지. 사춘기 어린애도 아니고.”

나는 아르파드의 가슴팍을 찰싹 때리며 타박했다.

“무슨 야한 꿈을 매일 꾼 거야?”

아르파드는 목구멍 속을 깊이 울리며 웃었다.

“이런 짓 하는 꿈.”

그는 침대로 갈 여유마저 없다는 것처럼 갈급하게 나를 밀어붙였다.

우리는 신혼이었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직후였다.

서로에게만 열중하는 게 당연했다.

그것을 핑계로 결론 나지 않은 복잡한 마음을 잠시 옆으로 미뤄 두었다.

그리고 아르파드와의 달콤한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격정적인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아르파드는 여전히 예쁘게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잠시 아르파드의 잠든 얼굴을 감상했다.

어쩌면 곧 이 모습도 못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에게 빠져 있을 때는 잠시 잊을 수 있었던 무거운 생각이 다시 자라나 내 머리를 온통 지배했다.

불안과 걱정. 안타까움과 슬픔.

이 무거운 고민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나는 하나밖에 몰랐다.

아르파드의 체온.

알게 된 지 겨우 며칠밖에 안 되었건만, 중독되기라도 한 듯했다.

이런 의문과 걱정도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광증, 제대로 사라진 게 맞는 걸까?’

그를 열심히 만져 본다고 광증이 사라진 건지 확인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매만지게 된다. 손가락에 인격이라도 생긴 것처럼 제멋대로.

뺨을 콕콕 건드려 보고, 곧은 쇄골과 생각보다 감촉이 좋은 가슴팍을 매만지다가 놀라서 작게 비명을 질렀다.

“힉!”

아르파드의 손이 내 등을 더듬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맨 살갗에 닿는 감촉과 체온이 찌릿찌릿했다.

‘깼으면서 아닌 척 눈 감고 있었던 거야?’

내가 어이없어하자 아르파드가 장난스럽게 눈을 반짝 떴다.

붉은 눈동자를 품은 우아한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

그게 너무 약 오르면서도 또 사랑스러워 나는 입가가 흐무러지는 걸 참지 못했다.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서 퐁퐁 솟아오르는 안타까움을 꾹 눌러 티 내지 않았다.

‘신중하게, 들키지 않도록.’

표정을 감출 겸 눈가에 가볍게 입술을 누르자, 아르파드는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그의 입이 다시 열리며 나의 안타까움과 애잔함은 가볍게 조각났다.

“음, 역시 내가 아직 안 깬 건가.”

“무슨 헛소리야?”

“그게 아니면 밤새 날 잡아먹을 것처럼 적극적이던 당신이 믿기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달콤하게 키스하는 당신도 믿어지지가 않아.”

지난밤의 여운과 애달픔, 서글픔을 누구 덕분에 꾹 눌러 둘 수 있었다.

“누가 누굴 잡아먹어? 반대잖아!”

정말이지 이런 건 장점이라고 봐야 할지, 단점이라고 봐야 할지 헷갈렸다.

아르파드는 여전히 쓸데없이 잘생긴 얼굴에 멋진 목소리로 헛소리만 해댔다. 진짜 외모 낭비가 심한 인간이다.

“그야 당신이 날 잡아먹었지. 아주 한입에 호로록.”

나는 확 붉어진 얼굴로 뻔뻔한 소리만 해대는 남자의 어깨를 팍 쳤다.

돌덩이를 치는 느낌이라 오히려 내 손이 아플 지경이다.

“웃기지 마! 나는… 부러지는 줄 알았단 말이야!”

그러자 맨 등을 쓸어 올리는 손가락이 눈에 띄게 조심스러워졌다.

“지금도 부러질 것 같아?”

“그렇지는… 그런데 그건 왜 물어?”

아르파드는 놀라운 팔심으로 나를 휘감아 빙글 돌렸다.

덕분에 침대 시트 위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천장의 비단 벽지를 아르파드의 희고 아름다운, 그러나 열기로 들뜬 얼굴이 모조리 가려 버렸다.

그는 내 손등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술을 누르며 물었다.

“정말 부러지면 큰일이니까.”

“…!”

손등에서 슬금슬금 손목으로 입술이 더듬어 올라왔다. 팔을 거쳐 어깨에 닿는 입술이 뜨거웠다.

나는 두 팔을 벌려 그를 끌어안으며 작게 대꾸했다.

“안 부러지게 잘해 봐.”

“최선을 다하지요.”

곧 열기가 나를 휘감았다.

우리는 해가 뜨고 지는 것조차 잊은 채 서로를 탐닉했다.

나는 드래곤이 남긴 불길한 저주와 그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마저 잊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오로지 아르파드에게만 빠져들었다.

* * *

정식 양위 칙령이 내린 것은 한 달 뒤.

그리고 대관식은 신년 즈음으로 결정되었다.

그럼 신년제와 대관식이 겹치게 된다. 이는 반세기 만에 가장 큰 행사가 될 게 분명했다.

이 때문에 타국, 심지어는 타대륙에서도 대규모 사신들이 올 예정이었다.

당연히 제국 내의 귀족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여들었다.

이건 한 가지 의미였다.

그간 얼어붙은 빙하처럼 움직이지 않던 가문도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을 나는 창백한 안색으로 달려온 애니가 올린 정보기관 페니 테라스의 보고서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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