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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50화 (150/210)

150화

내 질문에 대한 아르타누스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니. 내가 너를 회귀시킨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너까지 말려든 회귀가 시작된 원인 중 하나가 나인 것은 틀린 표현은 아니다.

회귀의 시작이 이 드래곤이라면, 결국 날 회귀시킨 주체가 맞다는 소리 아냐?

그런데 왜 아니라고 하지?

굳이 나에게 거짓말할 필요는 없을 텐데.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으면서 드래곤은 바로 대답을 주지 않았다.

다만 내 상체보다 커다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영문 모를 말을 이어 갈 뿐.

-나는 내 후계자를 살리길 원했다. 후계자가 이대로 죽으면 결국 또 긴 세월을, 다시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야 했을 테니.

-그 때문에 실로 300년 만에 날개를 펼치고 천공으로 날아올라, 태양과 달의 마력을 일시에 이용해 시간의 흐름을 역전시킨 것이다.

“…!”

나는 깨달았다.

저건, ‘용의 일식’을 말하는 거다.

-내 후계자가 죽음을 맞이하기 이전으로.

용의 일식이 사실은 회귀를 위한 의식이었다는 건가?

하긴, 시간을 거스를 정도로 큰 힘이라면 드래곤 정도 거대한 존재가 끼어 있어야 말이 된다.

한 가지 의문이 풀린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늘었다. 실타래가 복잡하게 엉키는 것처럼.

‘용의 일식은 내가 회귀하는 시점에서 한 달 이상 뒤에 벌어지는 일인데?’

시기가 맞지 않는다.

그것이 회귀의 의식이었다고? 말이 안 되지 않나?

곧, 깨달았다.

아르타누스는 꾸준히 한 가지를 말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회귀시킨 것이 아니라, 후계자, 즉 아르파드를 회귀시켰다고.

‘두 회귀가 별개인 거야.’

그렇다면 나를 회귀시킨 것은 누구인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내 무릎 위에 머리를 눕혀 둔 남자.

내 남편.

아르파드 이스트리드.

그의 가늘고 고운 머리카락이 내 손가락 사이로 스쳤다.

드래곤의 고요한 눈빛 역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자체가 ‘누가 나를 회귀시킨 것인가’라는 내 의문에 대한 답이었다.

“…….”

마음이 실타래처럼 헝클어지는 기분이다.

이건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좋은 기분인지 알 수 없었다. 지독하게 복잡했다.

연달아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정말 아르파드가 나를 회귀시킨 거라면, 대체 이유가 뭐지? 그러면 아르파드 역시 회귀 중이라는 건가?’

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나왔다. 직설적으로.

-나나, 설사 신이라 해도 세계 전체를 휘말리게 하는 거대한 역전을 한 번에 두 축을 기준으로 실행할 수는 없다.

‘그럼 지금 아르파드는 회귀하지 않는다는 건가?’

이건 꼭, 아르파드의 회귀가 나에게로 옮겨 왔다는 것 같잖아.

드래곤이 나를 회귀시킨 것이 아르파드라고 알려 준 것도 그렇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아르타누스의 육체에 빛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니, 빛으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뿜어져 나온 빛은 드래곤의 육체가 아니라 인간의 육체를 빚어 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땅에 끌릴 정도로 길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르파드와 많이 닮은 모습이었다.

달빛처럼 빛나는 백금발과 세로 동공을 가진 붉은 눈동자.

누가 봐도 아르파드와 피가 이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닮았다.

비인간적인 면은 도리어 아르파드의 친부인 황제보다 더 유사했다.

아마도 아르파드가 그의 후계자라는 말과 연관이 있지 않나 싶었다.

-나는 이 아이에게 회귀의 권능을 부여했다. ‘너’를 이곳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세계 자체를 돌리고 다시 돌려, 반복하고 또 반복한 끝에 거대한 인력을 만들어 네 영혼을 와야 할 곳으로 끌어 오기 위해.

-이 아이가 완전한 드래곤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지. 하지만 인간의 인지로는 헤아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여러 번 죽음을 반복한 끝에, 이 아이는…….

아르타누스의 손가락이 아르파드의 이마를 건드렸다.

가느다란 백금발이 살짝 흔들렸다.

-…미쳐 버렸다.

나는 세 번의 회귀를 겪었다.

그때의 모든 기억을 한데 모으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졌다.

그런데 헤아릴 수도 없는 회귀라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아르파드가, 당신을 증오한다는 건… 그것 때문인가요?”

-그래. 아이는 구원 없는 지옥 속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며 나를 증오했다.

-지금은 잊었지만, 나를 다시 마주하면 그 기억들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아르타누스의 손끝에 옅은 붉은빛이 맺혔다.

그것은 아르파드의 머릿속에서 뽑아 나온 실과 같은 빛이었다.

아르타누스는 그 빛의 실을 손가락 끝에 잡은 채, 내게 손을 내밀었다.

-네가 직접 보고 듣는 것이 낫다. 결국 이건 너의 일이기도 하니.

조금 두려웠다. 하지만 드래곤이 내민 손길을 나는 피하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드래곤의 손가락이 내 이마를 짚은 순간.

불현듯 머릿속으로 빛이 내리꽂히는 것처럼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아, 본 순간 알 수 있을 거라고 미친 도마뱀이 그러긴 했었지. 그런데 정말이었군. 빌어먹게도 말이야.”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망가져 버린 눈빛을 한 아르파드가.

* * *

기억이 나를 삼켰다.

때는 낮이었다. 그럼에도 기묘한 어둠이 사위를 덮고 있었다.

날카롭고 흐린 빛이 하늘 가운데 떠오른 태양의 너머로 비쳤다.

그 앞을 가린 것은 거대한 드래곤의 그림자.

지독하게 피폐한 눈빛을 한 남자가 거기 있었다.

용의 일식을 뒤로한 채 서서 그는 광기와 증오로 가득한 말을 씹어 뱉었다.

“미친 도마뱀 놈이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 보면… 그렇게 시간과 생을 엮어 가며 헤매다 보면, 결국 내 신부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을 때는… 역시 미친 도마뱀이 할 말은 미친 소리밖에 없구나 싶었는데.”

“…….”

“이상하긴 했어. 델핀 공작가에는 늘 딸이 없었고, 그 작위는 루드비히에게 돌아갔었지. 그런데 난데없이 델핀 공작의 딸이 나타나서 뭔가 했는데.”

아르파드의 안광이 불길하게 번쩍거렸다.

“정말 있었군. 그 신부라는 존재가.”

“그게 나라는 건가요?”

기억에 없는 내 목소리였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하지만 존재했던 시간대의 기억.

나의 회귀가 아니라, 길고 고통스러웠던 아르파드의 회귀 끝에서야 처음 나타난 ‘나’를 그가 만난 순간.

당연히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아르파드의 살의에 놀라고 당황해서 덜덜 떨며 중언부언할 뿐.

“하, 하지만 나는 평범한 여자예요. 델핀 가에 갑자기 나타났다니. 전 멀쩡하게 태어나서 자란 기억도 전부 있…….”

“입 닥쳐. 듣기 싫으니까.”

아르파드는 부러진 칼을 들어 내 목덜미에 들이대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그대로 내 목숨은 끊길 터였다.

아르파드는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 중얼거렸다.

“그 신부라는 걸 만나자마자 바로 죽여 버리겠다고 생각했어. 도마뱀 놈 앞에서 큰소리도 쳤지.”

잠시 나를 노려보던 아르파드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이번에도 날 지키려던 벨테인 경이 비통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대공비 전하!”

그렇다.

이때의 나는 이미 루드비히와 결혼한 후였다.

루드비히와의 신혼여행 이후 수도로 돌아와 처음으로 황궁으로 가던 길이었다.

그곳에서 회귀 직후 바뀐 상황을 인식한 아르파드에게 습격당했다.

“반드시 열 몇 번은 반복해서 죽여 버리겠다고 결심했었지. 그래 봤자, 넌 하나도 기억 못 하겠지만. 내 분풀이는 될 거 아니야. 그랬는데…….”

이번 생에 아르파드가 했던 말과 같은 맥락이었다.

결국 같은 사람이긴 하니까.

그는 신부라는 존재를 만나면, 증오하게 될 것 같다고 했었다.

절대적인 운명의 상대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었다.

반복된 회귀로 돌아 버린 그는 제 말을 지키기 위해 왔다.

그는 무한히 반복되는 회귀의 와중이었다.

나를 죽여도 다시 회귀하면 살아날 거라 생각했으리라.

본인의 삶도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타인의 목숨은 파리보다 하찮게 여기는 망가진 회귀자.

이때의 아르파드였다.

그리고 그는…….

챙강―!

내 목을 베지 못하고 부러진 칼날이 바닥에 떨어졌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아르파드가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도마뱀 새끼가 좋다고 쳐 웃겠군!”

그 얼굴이, 어쩐지 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뺨을 매만졌다.

손끝이 차가웠다.

“…당신 혹시, 나 못 죽인 게 억울해서 우는 거예요?”

“닥치라고! 죽고 싶지 않으면!”

“하지만… 못 죽였잖아요.”

나는 기억하지 못한,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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