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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49화 (149/210)

149화

-내가 그대를 원하거나 위험하게 할까, 두려운가?

아르타누스는 내 두려움을 정확하게 읽어 냈다.

소리 내어 표현하지 않았음에도.

아니, 아까부터 계속 이 상태이긴 했다.

-신부는 걱정할 필요가 없느니라. 본래 용과 신부는 서로가 유일하고 절대적인 존재.

-나에게 이스트리드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대에겐 그 아이가 유일하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동시에 심장이 말랑말랑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르파드와 내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라는 말을, 다른 것도 아닌 위대한 존재가 확언해 준 셈이니까.

그리고 이걸 아르파드가 못 들었다는 게 아쉬웠다.

‘함께 듣고 싶은데…….’

안심되는 것도 있었다.

아르타누스가 나를 잡아먹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소리니까.

나는 겨우 주변을 좀 둘러볼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어둠뿐이지만, 아르타누스의 몸체에서 뿜어지는 빛이 광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바닥과 천장, 벽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천연적인 동굴인 듯했다. 천장 곳곳에서 늘어진 종유석이 뾰족뾰족했다.

아르타누스의 거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광원의 위치가 바뀌었기에 종유석의 그림자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한계가 가늠되지 않는 공동 안에 아르타누스가 거대한 몸을 똬리 틀고 앉아 있었다.

환생 전 한국에서 본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온갖 보석과 보물을 깔고 있지는 않았다.

아르타누스만 제외하면 조금 김이 샐 정도로 평범한 동굴.

이번에도 드래곤은 내 생각을 읽은 듯했다.

-실망하였는가?

“아, 그렇게까지 기대한 건 아니에요. 굳이 제 기대에 부응해 주실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보다, 여긴 어디지?

-그대의 짐작대로 나의 거처이다.

…이건 편리한 건지, 불편한 건지 모르겠다.

-흠, 신부가 불편하다 하면…….

“목소리로 대화하도록 하지.”

거대한 신체의 크기에 비례해, 아르타누스의 목소리 역시 컸다.

거기에 큰 공동이 확성기 역할을 한 건지, 우렁우렁 울리며 소리가 훨씬 커졌다.

거의 온몸이 떨리는 느낌.

‘귀, 귀가 아니라 온몸이 아파!’

그러자 아르타누스의 목소리는 거대한 입과 성대를 통하지 않고 내 머리에 들어왔다.

-그냥 이쪽이 더 낫지 않은가?

나는 반론할 수 없었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

‘아르타누스를 직접 만나게 되다니. 두 번 없을 기회야. 어떻게든 최대한 정보를 짜내겠어.’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아르파드를 흔들며 드래곤에게 부탁했다.

“이 사람 좀 깨워 주실 수 있을까요? 아르파드도 아르타누스 님을 직접 뵙고 묻고 싶은 게 있을 것 같아서요.”

-아직은 깨워 줄 수 없다. 그대에 대한 내 용무가 아직 남아 있으므로.

용무?

나와 대화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 아르파드를 재워 놨다는 건가?

* * *

대주교가 신성력으로 에반젤린의 상처를 정성스레 치료했다.

신성력을 거의 쏟아붓다시피 하고 있었기에 상처의 붓기도 많이 줄었다. 멍은 아예 사라진 지 오래.

치료가 끝난 직후 에반젤린은 감사는커녕 분노만을 터뜨리기에 바빴다.

“아직도 완전히 안 나았잖아!”

“그래도 많이 회복하신 겁니다.”

“그러면 뭐 해! 이렇게 흉한 게 얼굴에 남아 있어서는, 남들 앞에 나설 수 없다고!”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모습을 드러내셔야 할 때쯤엔 화장으로 상처를 가릴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대주교의 말은 에반젤린이 바라는 게 아니었다.

어떤 흠도 없이,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매끄럽고 완벽한 피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길 바랐으니까.

하지만 대주교는 불가능한 걸 약속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불만 가득한 에반젤린에게 대주교가 심각한 표정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한데, 사도시여. <운명의 서>를 해독 중인데,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상한 부분?”

“예. 내용의 극히 일부분만 확인 가능했기에 지금까진 미처 몰랐던 부분입니다만. 중간중간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이 반복되는 장들이 있습니다. 혹시 짐작 가는 게 있으신지요?”

“반복?”

에반젤린의 표정이 굳었다.

* * *

“아르파드가 들으면 화낼 것 같은데요. 이 사람이 들으면 안 되는 말이라는 건 뭔가요?”

-매우 화를 내겠지. 그리고 그 아이는… 나를 아주 증오하거든.

“?”

의문이 치솟았다.

아르파드가 아르타누스를 증오한다고?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이다.

아니, 그 이전에 어감이 이상했다.

지금 아르타누스의 목소리는 내 뇌에 직접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해졌다.

그 때문에 숨겨진 의미 역시 바로 이해되었는데, 그게 기묘했다.

‘꼭… 아르파드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네?’

최소한 몇 번 이상 만나고, 직접 대화해 본 적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대의 생각은 옳다. 그 아이는 나에게도 매우 특별한 아이니까.

아르타누스의 말이 품은 의미는 점점 더 분명하게 내게 전달되었다.

그는… 아르파드를 정말 본인과 이스트리드 공주의 자식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크게 틀리지 않은 비유이구나. 그 아이는 나의 후계자니까.

“후계자?”

-나의 자리를 물려받아 세상을 지탱해야 할 존재이니, 후계자 외에 달리 맞는 표현이 없지.

드래곤의 후계자.

그러고 보면 아르파드는 역대 황족 중 가장 짙은 용혈을 타고났다는 평을 들었다.

아르타누스와 이스트리드 사이에서 태어난, 말 그대로 반인반룡이었을 초대 황제에게도 그런 표현은 붙은 적 없다.

지금까지는 이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기실, 그조차 명백한 이유가 있었던 거라면?

드래곤의 친자조차 받지 못한 후계자라는 표현이 아르파드에게만 붙은 이유가 있다면, 그건 뭘까?

-그대가 생각한 대로다. 그 아이는, 나의 뒤를 이어 드래곤이 되어 내 빈 자리를 채워 줄 존재. 그렇기에 나를 안식으로, 내 신부의 곁으로 보내 줄 존재이니까.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던 아르타누스의 거체가 천천히 움직였다.

산처럼 거대함에도 그 움직임은 극히 섬세해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는 어째서 아르타누스가 그렇게 조심스럽게 움직였는지 곧 알 수 있었다.

드래곤이 똬리를 틀어 소중히 품고 있던 것은 거대하고 투명한 수정이었다.

그 안에 무언가 분홍색 형체가 보였다.

한참 뒤에야 나는 그것이 크리스탈의 형태를 한 관이며, 그 안에 있는 것이 분홍색 머리를 한 여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르타누스는 방금 분명 ‘신부’를 언급했다.

그리고 이 드래곤이 소중히 품고 있는 관 안에 잠들어 있을 존재라면, 한 명뿐이다.

“이스트리드 공주…….”

약탈혼 전설 속 주인공이자, 드래곤의 신부이며… 또한 아르파드의 먼 선조 중 하나인 사람.

-맞다. 나의 이스트리드. 나를 완전하게 한 여인이며, 나의 아내. 내 영혼의 주인.

-나는 그녀의 곁으로 가야만 해.

내 뇌리를 울리는 그의 말 속에 의사와 의미는 담겨 있었으나, 감정은 없었다.

그것이 드래곤 나름대로 나에 대한 배려였다는 걸 알았다.

처음으로 뇌리를 헤집는 아르타누스의 말에 감정이 실리자,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조금 늦게 깨달았다.

아르타누스의 감정이 나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신체적인 반응마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드래곤에게 동조해 버릴 정도로.

-그대가 나의 신부는 아니나, 내 후계자의 신부이기에 더 강하게 동조되는 것일 터다.

눈물이 끝없이 흘렀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듯한 허무함과 그리움, 고통이 내 정신과 몸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다.

아르타누스는 나를 위해 제 감정을 다시 눌러 담았다. 내가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버릴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너희가 황가라 부르는 그 가문은, 그 아이를 얻기 위해 존재하는 가문이다. 나에게는 그 의미뿐이지. 이스트리드에게는 좀 달랐지만.

나는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아르타누스가 하는 말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탄, 한숨, 안타까움이 서린 말이 다시금 머릿속을 울렸다.

-하지만 내 유일한 후계자이자, 나에게 안식을 줄 존재는 제대로 각성하지 못한 채 죽었다.

-제 신부를 만나지 못했기에.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내가 회귀하기 전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내 첫 번째 삶.

폭주하여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흐르게 한 뒤 제 아비의 손에 살해당한 아르파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아니다.

지나치게 단호한 부정이었다.

‘뭐?’

-그때까지 이 세계엔 그의 신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완전해지지 못한 채, 죽어야 했지.

-나는 내게 안식을 줄 유일한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때 나는 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나 있었는데?

거대한 붉은 눈동자가 온전히 나를 향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걸 되돌리기로 한 거다. 몇 번이라도.

나는 망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당신이… 지금까지 나를 회귀시킨 장본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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