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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48화 (148/210)

148화

밤사이 이 사태에 대한 소식이 사방으로 퍼졌다.

가장 먼저 황궁으로, 귀족들과 유력한 평민들에게도.

날이 밝았을 무렵, 이 끔찍하고 불길한 사태는 황도 전역에 알려져 있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현장에서 황태자 부부의 시신이나 유품 등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갑론을박이 심했다.

“두 분이 돌아가셨다고 단정할 수 없어요! 아직 시신이 발견 안 되지 않았습니까!”

“아니, 하지만 황태자 전하의 혈흔은 발견되었다 하지 않습니까. 황제께서 직접 용혈의 흔적이라 확인하셨고요.”

“게다가 신전이 어떤 꼴인지 당신도 봤지 않소!”

신전 붕괴와 화재로 현장은 엉망이었다.

“그것만으로는 확언할 수 없다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황통에 관련된 문제인 것을!”

국무회의 자리에서 서로 멱살 잡고 싸울 기세인 이들을 내려다보며, 황제는 옥좌에서 그늘진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이 와중에 퍼지는 소문이 또 있었다.

몇 안 되는 신전 측 생존자들을 통해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기적적으로 비가 내려서 화재가 커지지 않았다며?”

“잘못해서 평원 전체에 불이 옮겨붙었으면 올해 수확은 다 망칠 뻔했다지 않아?”

“그야말로 기적이군. 감사할 일이야. 아르타누스 님께…….”

“예끼! 이 사람, 제대로 못 들은 모양이군. 갑자기 왜 아르타누스 님 타령이야.”

“그야 평원의 주인이시니까…….”

“드래곤이 비를 내린다는 소리 들어 봤나? 오히려… 이번 불이 드래곤의 분노가 아니었나 하는 소문도 있어.”

“설마…….”

“드래곤의 숨결은 꺼지지 않는 불이라지 않나.”

“그런 거면 비에도 꺼지지 않아야지.”

“특별한 비라서 재앙을 막았다고 하던데?”

“특별한 비?”

“귀한 분이 눈물로 빌었더니, 하늘의 신께서 비를 내려 우리를 구해 주셨다고 말이야!”

이 소문은 바닥부터 퍼지기 시작해, 마치 들불처럼 번져 갔다.

* * *

수척한 얼굴의 빌헬름 필레르모는 에반젤린에게 간단히 보고했다.

“소문은 순조롭게 퍼지고 있습니다. 벌써 에반젤린 님을 축복 어린 비의 성녀라 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 말에 에반젤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가면을 바꿔 쓰듯 표독스러운 분노를 터뜨렸다.

곁에 선 천주신의 대주교 비오를 향해서였다.

에반젤린은 얼굴을 가린 검은 베일을 뒤집어 보였다.

“내 얼굴은 대체 언제 완전히 낫는 거야?”

아르파드에 의해 공격당한 상처는 상당히 빠르게 아물었다.

대주교와 다른 천주신의 신관들이 최선을 다한 결과다.

그 큰 상처가 겨우 며칠 만에 아물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에반젤린은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처음의 끔찍한 고통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살이 당겼고, 딱지가 지고 새살이 돋기 시작한 피부는 지독하게 가려 웠다.

건드리면 흉이 크게 남을 거라는 말에 함부로 손댈 수도 없었다.

그저 짜증만 낼 뿐.

에반젤린은 화병을 들어 대주교의 바로 옆에 던졌다.

쨍그랑!

“역대 가장 강력한 신성력을 가진 신관이라고? 이따위 상처도 제대로 치료 못 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빠른…….”

“닥쳐! 내 흠 없는 피부에 이런 흉측한 게 남아 버렸는데!”

그녀가 하녀처럼 부리는 신관이 건네준 거울도 내던져 깨 버렸다.

며칠간 천주신의 신전과 루스 후작저, 그리고 황후궁 곳곳의 거울 수십 개가 박살 났다.

에반젤린은 발을 구르며 분노했다.

“이래서야 성녀로서도, 황태자비로서도 제대로 얼굴을 보일 수가 없잖아!”

차가운 목소리로 에반젤린의 앞서 나간 말을 지적한 건 황후였다.

“황태자비라고 할 순 없지 않니? 너는 아르파드와 혼인한 적이 없으니.”

그러자 에반젤린의 눈매가 샐쭉해졌다.

“어쨌건 아르파드의 아이를 가질 거고, 그 아이를 황위에 올릴 테니까 황태자비이고, 미래의 황후인 거죠.”

에반젤린은 다시 강력하게 요구했다.

“일을 망쳐 놓으신 건 어머니이니까, 이번엔 제대로 도와주셔야죠. 백금 열쇠를 되찾게 해 드린 건 저잖아요?”

“아니. 내 일을 방해한 건 너지.”

모녀 사이의 분위기는 한층 험악해졌다.

두 사람이 갈등이 시작된 것은 신전에서의 사건 이후였다.

앞뒤 상황을 맞춰 보던 두 사람은 서로가 비밀리에 아르파드를 대상으로 흉계를 꾸몄다는 걸 알게 되었다.

황후는 아르파드의 광증을 폭주시키려는 음모를.

에반젤린은 아르파드를 유혹해 아이를 가지려는 음모를.

그리고 황후가 벌인 일의 결과, 아르파드가 광증으로 폭주하며 에반젤린의 음모가 망가진 것이다.

‘게다가 내 얼굴에 이런 흉터까지 남아 버렸는데! 저렇게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있다니…….’

아르파드의 폭주 때문에 얼굴에 상처를 얻은 에반젤린의 원한은 강렬했다.

반면 황후 역시 딸이 괜한 짓을 벌여 자신이 방해받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에반젤린이 괜한 짓만 안 했어도 아르파드와 그 지독한 것의 시체를 함께 볼 수 있는 건데.’

혼란스러운 와중에 태평하게까지 느껴지는 질문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정말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죽은 게 맞나?”

사방에서 부정적인 시선이 모였다.

이 눈치 없는 발화자는 바로 마탑주 가스팔이었다.

“무너진 신전과 주변까지 몇 번을 수색했지만 시신 발견이 안 됐잖아. 신관들하고 달리 말이야.”

비오 대주교가 버리고 탈출한 지모신과 천주신의 신관들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힐리아와 아르파드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염려하는 바이기도 했다.

‘만약 두 사람이 살아 있다면? 그리고 돌아와 우리의 음모를 공개적으로 밝히려 든다면?’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가정이었다.

에반젤린이 대꾸했다.

“그럴 거면 왜 지금까지 안 나타났겠어요? 그 둘 입장에선 당장에라도 모습을 드러내는 게 더 유리할 텐데!”

이건 맞는 말이었다.

두 사람이 사라져 나타나지 않는 상황 덕분에 이들이 계획을 이어 가는 게 가능한 거였다.

황태자가 실종되며 에반젤린은 그의 아이를 가졌다고 주장할 기회를 얻었다.

또한 황태자비가 실종되며, 자연스럽게 백금 열쇠는 황후에게 되돌아왔다. 연금 역시 풀렸다.

황제는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지만, 크게 충격받아 흔들리고 있었다.

대주교가 황후와 마탑주에게 물었다.

“두 분이 아신다는 그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황제까지 광증으로 폭주시키면 황위는 완전히 공석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황후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건 안 돼!”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지른 황후는 곧 감정이 드러난 표정을 지우며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는 살아서 모든 걸 다 잃어봐야 해.”

새파란 원한 서린 말이었다.

대주교는 개인적인 복수심을 내세우는 황후가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황후의 도움은 꼭 필요했고, 따로 회유하는 것도 불가능했기에 한발 물러설 뿐이었다.

마탑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그는 정치적인 문제나 개인적인 분노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나저나 ‘그거’ 언제 시작할 거야? 하루라도 빨리해야 하지 않아? 그래야 발표도 빨리할 수 있지.”

마력 회로가 번쩍거리는 손가락들이 초조하다는 듯이 끼릭끼릭 움직였다.

“빨리 약속을 지켜. 안 그러면 당장 황제에게 달려가서 진실에 대해 폭로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숫제 협박이었다.

결국 대주교는 마탑주에게 협조해야 했다.

에반젤린이 약속했기 때문이다.

“신력과 마력을 함께 이용해 만들어 낸 드래곤과 인간을 섞은 호문클루스, 실험해 보고 싶지 않아요?”

이건 빙의자가 읽은 원작 내용을 바탕으로 한 말이었다.

지금보다 나중에, 신전이 마탑의 도움을 받아 내세울 가짜 황족을 만들려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마탑과 신전 양측 모두 다른 이유로 황족의 혈통에 관해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신전 측 주도로 협력이 이루어졌다.

‘황족의 혈육과 드래곤의 신체, 그리고 보통 인간의 혈육을 섞어 만든 호문클루스.’

마탑에서는 꾸준히 황족의 혈육으로 이러한 실험체를 만들려 했으나, 신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지며 실패했다.

거기에 신력을 섞어 안정시키는 것으로 가까스로 성공시켰다며 마탑주가 직접 말하는 부분이 있었다.

에반젤린은 그걸 자신이 생각해낸 것처럼 말했다.

물론 마력과 신력이 반발하기에 그걸 안정화하는 건 어려운 일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신력을 활용해 보는 건 나쁘지 않은 발상이긴 해. 모든 생명체는 마력과 신성력을 다 가지고 있으니.’

가스팔의 입장에서 이건 드래곤의 재현이라는 목표에 한발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이었다.

온갖 재료가 모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황족의 피와 살.

루드비히의 것은 과거 충분히 확보해 두었고, 이번 사건에서 아르파드의 피 역시 얻었다.

그리고 황실에 내려오는 드래곤의 신체들. 하트와 뼈, 비늘 등등.

“순도 높은 드래곤 하트가 필요합니다.”

“어머니. 황후의 보관에 드래곤 하트가 있었죠?”

그것이 마탑주 손에 있다는 말에 가스팔에게 시선이 모였다. 당장 내놓으라는 압력.

하지만 가스팔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다 써 버렸는데.”

“뭐라고?!”

“그 강력한 드래곤 하트를?!”

“내 손에 들어온 드래곤 하트가 지금까지 남아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이 말에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결국 드래곤 하트는 더 작고 순도가 낮은 것으로 대체되었다.

새로운 실험에 즐거워하며, 가스팔은 생각했다.

‘흐음. 이럴 줄 알았으면 팔지 말 걸 그랬나…….’

* * *

너무 놀라면 도리어 침착해질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설마 아르타…누스?”

내 몸보다 거대한 머리가 쑥 다가왔다.

너무 현실감 없는 광경이라 공포심마저 잊어버렸다.

-그대는 틀리지 않았느니라. 신부여.

머릿속을 왕왕 울리는 목소리가 너무 컸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인 게 있었다.

정신이 들었으니 아르파드부터 찾아야 했다.

다행히 그는 내 바로 옆에 쓰러져 누워 있었다.

그의 상태를 확인하는 척 깨우려 했다.

“아르파드! 일어나요!”

“…….”

하지만 그는 눈을 뜨지 못했다. 혹시 잘못되었나 싶어 확인해 보았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저 깨어나지 못할 뿐.

낯선 광경이었다.

그는 늘 예민하고 날이 서 있어서 이렇게 의식을 잃은 건 본 적 없기 때문이다.

깊이 잠들었어도 내가 부르거나 건드리기만 해도 깨어났으니까.

‘왜 이러지? 아, 혹시 광증의 부작용인가?’

그때였다. 혼자만 가진 의문에 제멋대로인 대답이 들려온 것은.

-광증 때문은 아니니 걱정 말아라. 신부여.

나는 고개를 들어 거대한 드래곤의 금빛 머리를 올려다보았다.

목이 꺾어질 것 같다.

“제 생각을 읽으실 수 있는 겁니까?”

-그러하다. 신부여.

드래곤이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건 처음 알았다.

이어진 말에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깨우려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 아이는 내가 재워 두었으니.

머릿속에 벼락처럼 두려움이 내리꽂혔다.

‘드래곤의 신부.’

나의 존재가 아르파드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

혹시나 다른 드래곤에게도 내가 ‘신부’라면?

“잡아먹으려 들거나… 혹은 몸을 섞으려 할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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