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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34화 (134/210)

134화

그 뒤로 우리는 한참 시간도 장소도 잊고 서로에게만 빠져 있었다.

아르파드는 아주 자연스럽게 바닥에 누운 채, 나를 제 몸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무서운 인간 시트를 깔아뭉개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이 시트는 따뜻하고 든든했으며, 또 의외로 푹신했다.

이 포근함을 느긋하게 즐기며 이대로 계속 누워 있고 싶을 정도로…….

그 시점에서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 맞다! 말없이 황태자궁을 빠져나왔었지!’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내가 화들짝 고개를 들려는데, 내 뒤통수를 끌어안은 채 정수리에 키스하는 아르파드 덕분에 방해를 받았다.

쪽, 하는 소리가 울리자 나는 새삼 부끄러워졌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내 아내가 너무 사랑스러운 걸 견디지 못하고 애정 표현 중.”

“…….”

손발이 오그라들어 사라질 것 같다.

그런데도 놀라운 건… 저 오글거리는 말이 싫지 않다는 거다.

지금까진 아르파드가 하는 말들이 나를 놀리거나 주변에 보여 주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나자…….

오글거리고 부끄럽긴 한데, 솔직히 조금… 좋았다.

아니, 자신을 향한 애정 표현이 싫은 사람도 있겠냐고!

이건 그냥 사람이니까 당연한 거야!

내가 새삼 부끄러워하는 사이, 아르파드의 빤한 시선이 내 한 곳에 집중되었다.

어디냐고?

…입술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아르파드의 입을 쭉 밀어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엉큼해!”

내 미약한 힘에 순순히 물러난 아르파드가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니, 내가 왜?!”

“눈빛이 불순하니까!”

“그건 지금까지 당신 손도 만만치 않았거든?”

내 손이 왜? 지극히 정숙하고 결백한 내 손이 어쨌는데?

그러자 아르파드는 놈팡이에게 농락당하고 버려진 가련한 처녀처럼 고개를 옆으로 처연하게 꺾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내 가슴을 열심히 만져 놓고는……!”

“그, 그건! 나는 그냥 시트라고 생각하고 만진 것뿐이거든요!”

절대 사심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다.

“하지만 당신은 엉큼한 생각을 가지고 내 입술 본 거잖아요!”

그러자 아르파드는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아니야! 그냥 순수하게, 많이 부어서 괜찮은가 하고 보고 있었을 뿐…….”

그게 엉큼한 거지 뭐가 아니라는 거야!

나는 용서 없이 아르파드의 옆구리를 꼬집어 주었다.

그러자 아르파드는 울상을 지었다. 누가 봐도 지어낸 표정이었다.

“아파.”

“하나도 안 아픈 거 알거든요?!”

뼈가 부러져도 이삼일이면 낫는 주제에.

그런데 아르파드는 의외로 진지하게 대꾸했다.

“아니, 이 시기에는 진짜 좀 안 좋아.”

“뭐라고요?!”

나는 놀라서 아르파드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댔다.

“진홍월 시기에 그런 문제도 있어요?”

“결국 광증은 용혈의 부작용이니까. 용혈의 강화 작용도 약해져.”

진짜야?

나는 놀라서 조금 전 꼬집은 곳을 살펴보려고 아르파드의 상의를 일부 끌어 올리려고 했다.

그러자 아르파드가 고개를 떨어뜨리며 세상 조신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서는… 싫어.”

“…뭐라는 거예요, 진짜?!”

나는 기겁해서 아르파드의 어깨를 퍽퍽 쳤다.

그러자 쿡쿡거리며 어깨를 떨던 아르파드가 나를 꼭 끌어안더니 진지하게 속삭였다.

“아, 이건 진짜 진심이야. 밤새 이런 곳에서는 안 된다고 내가 얼마나 허벅지를 찌르며 참았는지 알아?”

“…….”

이번엔 얼굴만이 아니라 온몸에 열이 오르고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나도 나름대로 각오하긴 했었는데…….

막상 큰일이 없어서 의외라고 생각… 아니, 그렇다고 아쉬웠던 건 절대 아니다. 절대!

아무튼 그랬는데 아르파드가 꽤 필사적으로 나를 소중하게 여겨 주고 있었다는 소리를 듣자, 마음이 몽글몽글 녹아내리려 했다.

새삼 내 왼손 약지에 끼워진 스타틸리아의 별이 보였다.

빛 하나 새어들지 않는 지하실에서도 혼자 빛나고 있는 보석.

그가 뭔가 할 말 많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보면서 끼워 줬던 반지.

지금은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아니,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반지를 아르파드의 앞에 들이밀며 물었다.

“이거, 어떤 의미로 준 거였어요?”

“그때 말한 그대로야. 우리 결혼반지.”

하긴, 그때 그는 이미 결혼반지라고 대놓고 말하긴 했었다.

명목상 썼던 것과 달리 제대로 된 걸 주고 싶었다고.

그걸 반 억지로 다르게 해석하려 한 건 나였지.

나는 대놓고 물었다.

“당신, 나 좋아해요?”

“응.”

망설임 없이 대답이 나왔다.

“…….”

그래서 되레 말문이 막힌 건 나였다.

나는 애써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수많은 감정이 머릿속과 가슴속에서 펑펑 날뛰고 있어서였다.

잘못했다간 이상한 단어가 튀어 나가 버릴 것 같아서.

파핑 캔디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돌며 팡팡팡, 터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르파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는 그대는 나를 좋아하나? 하고 묻고 싶지만, 지금은 참도록 하지.”

“…왜요? 안 궁금해요?”

“궁금해. 미칠 정도로.”

하지만 그는 질문과 대답에 꽤 신중한 태도였다.

“누가 계속 내가 다른 여자를 만들 걸 기본으로 생각하고, 말한 덕분에 말이지.”

“…….”

이건, 내가 잘못했네.

…하지만 회귀 전 아르파드에게 애인이 있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정설이었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었다.

그렇다 보니 나는 그걸 부정할 수 없는 명제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이뤄질 미래라고.

정작 그 정해진 미래를 바꿔 버리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었으면서.

당사자가 계속 아니라고 부정한 말을 안 믿고, 회귀 전 소문을 더 깊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사과받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는 건… 지금은 내 말을 믿어 준다는 소린가?”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 전 기억이나 소문 따위보다, 지금 이 뜨거운 체온과 단단한 몸으로 나와 맞닿아 있는 남자의 진심을 믿는 게 맞았다.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이것만은 내 섣부른 기억에 대한 믿음이나 편견 때문에 가지게 된 생각이 아니었다.

이 남자의 입으로 직접 들은 말이었으니.

“내가 그런 존재를 사랑해야 할까, 증오해야 할까?”

“증오하고 싶어질 것 같아서 그래.”

아르파드는 용혈을 타고 난 자신의 광증을 가라앉혀 줄 존재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너무 원했기 때문에 도리어 그 상대를 증오하게 될 것 같다고 대답했었지.

아르파드에게 내 능력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않은 데에는 그 이유가 컸다.

회귀 전 실험체가 된 그에게 습격당했던 트라우마도 있었지만.

결국 저 말대로라면, 아르파드는 나를 미워해야 하니까.

특히나 결혼하고서도 지금까지 사실대로 말해 주지 않았으니 더더욱.

이에 대한 대답은 두려운 것이지만, 꼭 확인해야 했다.

나는 솔직하게 물었다.

“당신은 왜 안 물어요?”

“…뭘?”

“내가 지난 새벽, 어떻게 당신의 광증을 가라앉혔는지.”

“…….”

“그리고 내가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면서 왜 숨겼는지.”

나는 아르파드가 정신을 차리면 그것부터 물을 줄 알았다

‘아니, 정확히는… 추궁하고 비난해도 할 말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지금 내가 대놓고 물을 때까지 아르파드는 비난은커녕, 의문을 확인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왜 안 물어봐요?”

나는 내가 제일 꺼리고 피하고 싶었던 부분까지 전부 드러냈다.

기왕 확인할 거면, 모두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나 안 미워요?”

아르파드의 눈이 커졌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아르파드의 입술이 열렸다.

어깨가 긴장으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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