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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31화 (131/210)

131화

나는 복잡한 기분으로 붉은 달빛을 밟으며 지하 묘지로 향했다.

벨테인 경은 내 명령을 받고 델핀저로 가 있었고, 아론 역시 키엘른 대공저 일로 자리를 비웠다.

다른 황실 기사들도 있었지만, 조금 꺼려졌다.

아르파드가 괜히 측근인 율켄에게도 용병왕 신분을 숨긴 게 아닐 테니까.

그래서 이번엔 변장을 한 채 나 혼자 카타콤으로 향했다.

물론 만약을 대비해 헤페스에게 받아 놓은 호신용 마도구를 챙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큰 위험은 만나지 않았다.

나는 싱거울 정도로 수월하게 카타콤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반년 전 아르파드를 처음 만나러 왔을 때와 달리 오늘 카타콤에는 문지기도 없었다.

그나마 한 번 안내를 받아 와 본 길이 아니었다면, 거대한 묘지 안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눈앞에 있는 문을 보고 의아해졌다.

‘뭐야? 왜 문이 안 열리지?’

전에 왔을 때는 노크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가까이 온 걸 느끼고 아르파드가 직접 문을 열어 줬기 때문이다.

그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 내가 접근한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나는 의아해하며 하나같이 모두 낡아 빠진 카타콤에서 유일하게 새것인 무쇠 문을 두드렸다.

쿵쿵!

마치 관이 내려앉는 듯한 소음이 불길하게 울렸다.

하지만 안에서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그를 불렀다.

“아르파드?”

“…….”

대답이 없어 문을 열 방법을 찾아 헤맸다.

문고리에 들고 온 등잔을 들이댔을 때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한 건지 깨달았다.

이 문은 안에서 잠그는 문이 아니었다.

밖에서 잠그는 거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한 문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걸 막기 위한 문.

그러니 밖에서는 열쇠 같은 것이 필요 없었다.

잠금을 풀고 문고리를 돌리면 그만.

이 사실은 불길한 예상을 내 머릿속에 떠오르게 했다.

‘이건… 꼭 맹수를 가둔 우리 같잖아.’

모든 것이 낡고 먼지가 보얗게 쌓인 곳에서 유달리 새것인 문.

쇠로 만들어진 단단함.

이건 그만큼 위험한 존재가 안에 갇혀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지금은 진홍월이 뜬 밤.

나는 회귀 전 몇 번 보았던 최악으로 망가진 아르파드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시체마저 실험체가 되었던 모습.

그리고 광증을 이기지 못하고 폭주한 끝에 부친에게 살해당했던 모습 등등.

공포가 온몸을 사로잡았다.

본능과 이성이 함께 외치고 있었다.

‘열지 말고 돌아가.’

‘너무 위험해. 어떤 모습일지, 이성을 가지고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

‘저 남자 손에 살해당하고 싶어?’

‘난 살고 싶어서 저 남자를 이용하려 한 것뿐이잖아.’

‘위험할 걸 뻔히 알면서 뛰어 들어가서 어쩌려고? 그 손에 죽으면 대체 회귀는 왜 한 건데?’

‘도망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미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지하 묘지 가장 깊은 곳의 동굴 같은 방 안에는 내가 전혀 예상 못 한 모습의 아르파드가 있었다.

“…아르파…드?”

사슬이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가 들고 있는 등잔불에 비친 쇠사슬에서 둔탁한 광택이 비쳤다.

벽에 단단하게 고정된 쇠사슬의 굵기는 내 엄지 두 개를 합친 것 같았다.

그 사슬이 아르파드의 목과 팔다리를 모두 묶고 있었다.

아르파드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경악을 애써 눌렀다.

‘이건… 꼭 마탑에서 실험체가 되었을 때 같잖아?’

그때 아르파드는 이미 죽은 뒤의 시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곧 해답을 알 수 있었다.

‘스스로… 한 거구나.’

부친인 황제라 해도 아르파드를 이렇게 구속해 둘 순 없었다.

굵은 사슬들은 아마 마법적 처리가 된 것일 터다.

그때 어둠 속에서 천천히 아르파드가 고개를 들었다.

무서울 정도로 표정이 없는, 마네킹 같은 얼굴.

다만 눈은 달랐다.

혈관이 다 터져서 흰자까지 붉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완전한 붉은 눈.

저걸 나는 이미 본 적 있었다.

광증에 완전히 잡아먹혀 폭주하기 직전의 모습.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심각했지만 말이다.

그렇다 해도 지금 아르파드가 위험한 상태인 건 분명했다.

두려움이 발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치솟았다.

첫 생에서 경험한 폭주한 아르파드의 난폭함과 잔인함.

그리고 세 번째 생에서 마주했던 아르파드의 시체로 만들어진 실험체가 주었던 공포.

문 앞에서 떠올랐던 이성과 본능의 외침이 다시금 경종을 울렸다.

어서 도망치라고.

저 위험한 맹수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라고.

주먹을 쥔 나는 앞으로 한발 내디뎠다.

“아르파드?”

“…….”

스스로 사슬에 묶인 채 어둠뿐인 지하에 갇혀 있는 그를 도저히 그냥 두고 돌아설 수가 없었다.

이건 혼자 상상해 본 아르파드의 모습 중 그 어떤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그저 쓸쓸하게 지하 묘지에서 홀로 앉아 있는 정도를 생각했을 뿐이다.

이런, 이렇게 비참한 꼴은… 차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이 잘못될 경우, 아르파드는 죽은 뒤에도 이용당하게 될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 있는 그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의 아르파드와.

그리고 나는… 아르파드를 광증으로부터 구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용의 신부. 너에게 그것보다 어울리는 별명은 없어.”

분명히 가스팔은 그렇게 말했다.

내 뜻이 아니었던 회귀 전 그 끔찍했던 경험들로 난 한 가지를 알고 있었다.

광증에 사로잡힌 용혈의 소유자는 미친 듯이 신부를 갈구하게 된다.

머릿속에서 이성이 끊임없이 경고 등을 울렸다.

‘위험해. 날 죽이고 잡아먹으려 들지도 몰라.’

이건 내가 아르파드를 볼 때의 본능적인 공포였다.

“용은 자신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신부를 취하려 해.”

“방법은 여러 가지야. 가장 원시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이라면, 역시… 잡아먹는 거겠지.”

나를 향해 달려들어 미친 듯 피를 핥던 모습과 가스팔이 했던 말이 그 증거였다.

그 앞에서 나는 맹수 앞에 선 피식자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뒤로 물러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대는 나도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걸 잊어버린 모양이야.”

이런 말을 하며 아르파드가 내게 보여 준 표정이 떠올랐다.

상처받은 눈빛도.

오로지 내게만 보여 줬던.

진홍월이 다가오자 나를 두고 가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대를 다치게 하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그래.”

그 말을 믿지 못한 건 아니다.

처음 그에게 약탈혼을 제안했을 때처럼 경계하고, 불안해하기만 하며 아르파드를 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고마움을 많이 느꼈다. 정도, 꽤 들었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이렇게까지 끔찍하고 비참한 꼴로 스스로를 금제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분명히 반년 전 여기 와 봤었다.

하지만 그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곳의 ‘진짜’ 용도를.

아니, 알았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안타깝고 가슴이 아리진 않았을 거다.

반년간 곁에서 지켜봐 온 아르파드라는 한 인간을 알고, 정이 들었기에 느끼게 된 감정.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르파드는 약속을 지켰다. 나를 지옥에서 꺼내 주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나는 호신용으로 가져온 작은 단검으로 손바닥을 베었다.

핏방울이 바닥으로 투둑 떨어지는 순간, 멍하던 아르파드의 눈에 잠시 빛이 돌아왔다.

나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조금 전의 두려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빛이 돌아온 듯했던 아르파드의 눈빛은 다시 멍해졌다.

그의 지척으로 다가가, 손에서 흐르는 피를 입가에 흘려 주었다.

하지만 대체 어떤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건지 여전히 멍한 아르파드는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결국 나는 피를 입 안에 머금었다.

가스팔이 나를 보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들도 나를 보면 먹으려 들까요?”

“혹은 몸을 섞으려 들 수도 있겠지.”

감옥 바닥에 눌어붙은 핏자국처럼 기분 나쁜 목소리.

“그러니까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게 좋아.”

나는 알고 있는 것과 반대로 행동했다.

각오는 이미 되어 있었다.

입 안에 피를 머금은 채,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 * *

피비린내 나는 키스는 더없이 탐욕스러웠다.

그는 힐리아의 피와 상처, 숨결까지 모조리 삼켜 버릴 듯 굴었다.

따끔한 통증이 있었지만, 힐리아는 입술을 떼지 않았다.

사슬이 잘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정신없이 방 안을 울렸다.

입 안에 들어온 피 한 모금을 삼키려던 순간.

아르파드는 정신을 차렸다.

“…!”

눈빛에 이성이 돌아온 순간, 그는 힐리아를 휙 밀치고 피를 뱉었다.

힐리아는 억울해서 외쳤다.

“그걸 왜 뱉어요? 아깝게!”

“당신이 여기 왜 와 있는 거야? 분명히 내가 위험하다고……!”

힐리아가 아는 아르파드의 말투 그대로였다.

그녀는 어째선지 울컥하는 걸 애써 억눌렀다. 눈가가 뜨거웠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어딜 가든, 어디 있든 그건 자신 마음이다.

힐리아는 아르파드를 끌어안으며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그는 조금 전처럼 차마 그녀를 밀어내지 못했다.

사슬에 매인 두 팔이 힐리아의 어깨와 허리를 감싸 안았다.

더더욱 깊고 짙게 숨결이 서로를 얽었다.

아르파드는 힐리아를 천천히 바닥에 눕혔다. 어깨를 안은 손길이 더욱 강하게 밀착했다.

힐리아는 조금 움찔했으나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두 팔을 뻗어 아르파드의 목과 어깨에 매달렸다.

숨결이 가빠졌다. 상대방의 체온만이 어둠 속에서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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