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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25화 (125/210)

125화

빛이 감도는 목걸이에서는 루드비히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법정을 울린 건 천박하고 노골적인 욕설이었다.

-XXX! 누가 너 따위 X에게 진짜 미련이 있어서 이러는 줄 알아?! 너 때문에 내가 무슨 꼴을 당했는데! XXX!

절로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저질적인 욕설들.

지성과 품위를 덕목으로 치는 귀족들이라면 절대 제정신으로 공식 석상에서 말할 일도, 들을 일도 없었다.

에반젤린의 손에 쥐여 있던 부채가 뿌득,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녹색 눈에 불길이 일었다.

‘저, 멍청한 루드비히! 내가 분명히 녹음 마도구를 주의하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미 녹음 마도구 때문에 에반젤린은 큰 고역을 치른 바 있었다.

그 때문에 루드비히에게도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었다. 말을 조심하라고.

특히나 멋대로 황태자궁에 다녀온 직후에는 따로 물어보기까지 했었다.

“힐리아를 만나서 뭐라고 한 거야? 설마 우리 계획을 발설하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내가 미쳤다고 그러겠어?”

“그 여자는 녹음 마도구를 가지고 있어. 네가 말실수 한번 잘못하면, 그게 고스란히 우리 발목을 잡을 수 있어.”

“나도 알아! 그 마도구, 못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물건이던데. 주변에 그런 건 없었다고!”

루드비히는 호언장담했다.

에반젤린은 그가 제대로 숨기진 못했더라도, 녹음 마도구를 신경 썼다는 건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말도, 말도 안 돼! 저 목걸이가 녹음 마도구라고? 그건 벽에 세워 둘 정도로 큰 물건이잖아!”

루드비히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걸 확인한 순간, 에반젤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해선 안 될 말을 한 거구나.’

그녀의 예상이 맞다는 건 연이어 쏟아지는 루드비히의 욕설 어린 말들이 증명해 주었다.

-XX! 잘 생각해. 지금이라도 얌전히 내게 돌아오면, 적어도 이혼한 여자로 끝날 수 있어.

-내가 왜, 사랑하는 남편과 이혼하고 당신에게 가야 한다는 거예요?

힐리아의 가련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협박하던 당시 루드비히는 갑자기 힐리아의 말투가 바뀌었던 것을 기세가 눌리고 두려워서라 생각했다.

자신이 그만큼 힐리아를 확실하게 짓눌렀던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힐리아는 철저히 계산적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겁먹은 여인을 연기한 거다.

-사랑은 무슨! XX! 내가 이미 더럽혀진 너도 받아 주겠다고 하고 있잖아!

-더럽혀지다니, 우리는 정식으로 신 앞에서 맹세한 부부예요!

-그래, 그 덕분에 내가 아주 온 제국 내에 웃음거리가 됐고 말이지.

루드비히는 욕설을 또 몇 마디 주워섬기더니, 본론을 말했다.

-어차피 아르파드도 네가 델핀저에서 황궁에까지 남자를 끌어들인 부정한 여자라고 알게 되면, 널 버릴 거야.

-난 그런 적 없어요.

-하긴, 너 같은 숙맥이 남자를 홀릴 줄 알 리가 없지.

루드비히의 비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넌 세상에서 가장 부정한 여자가 될 거고. 법정까지 끌려가서 처참하게 망신당하게 될 거야. 아르파드가 아무리 눈이 멀었어도, 그런 너까지 받아 주진 않겠지.

-…….

-기회는 지금뿐이야. 응? 다시 내가 아는 착한 힐리아로 돌아와. 그러면 살려 줄게.

-거절하겠어요.

녹음 마도구는 그대로 작동을 멈췄다.

지독한 충격이 강타한 법정 안을 불편한 침묵이 지배했다.

* * *

방금 녹음된 루드비히의 말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자기 입으로 내가 정말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믿은 것도 아니면서, 몰락시키기 위해 일을 벌였다고 말이다.

이보다 더한 증거나 증인은 있을 수 없었다.

‘루드비히의 파멸은 이제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야.’

나는 승리의 미소를 감춘 채, 침착하게 법정 안을 돌아보았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듯한 안색의 루드비히는 할 말을 잊어버린 건지 뻐끔거리기만 했다.

변호사는 그야말로 썩은 표정이었고.

판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와 목걸이, 루드비히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옆에서 아르파드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때 화를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군.”

“그러니까, 내 말 들으면 절대 손해 안 본다니까요.”

내가 루드비히를 만나겠다고 했을 때 아르파드는 반대했었다.

“그놈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아나!”

“그러니까 더더욱 만나야죠.”

“뭐?”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고, 루드비히 성격상 나와 단둘이 있으면 그걸 절대 못 숨길 가능성이 높아요.”

숨기려 들어도, 내가 유도할 수도 있고 말이다.

“확실한 증거를 손에 넣어야 하니까.”

아르파드는 내 말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내 안위가 걱정된다며, 옆방에서 대기하다가 딱 적절한 때에 나타나 루드비히를 쫓아냈다.

루드비히는 흰 붕어 같은 얼굴로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아니, 나는 녹음 마도구가 없는지 분명히 확인을…….”

이건 연회 때 처음 녹음 마도구를 사람들 눈앞에 내놨을 때부터 계산했던 거였다.

마도구 제작자 헤페스는 그동안 연구해서 만들어 놓은 마도구 중 커다란 녹음 마도구를 콕 집자 당황했었다.

“예? 그, 그런 물건을, 그렇게 비싸게 주고 사시겠단, 말씀입니까……?”

그는 훨씬 크기도 작고 성능이 더 좋은 개량 버전을 보여 주며 말했다.

“저, 저, 저건 시제품입니다! 여기, 더 작고 서, 성능은 선명하게 개량한 물건들이 있는데……!”

“물론 이것만 사겠다는 건 아니에요. 개량품도 함께 살 거예요.”

나는 제작자 헤페스가 내놓은 녹음 마도구 개량품 중, 꽤 커다란 연수정을 골랐다.

‘이거라면 목걸이 같은 장신구로 가공하기 쉽겠네.’

거의 사람 키 정도 크기의 녹음 마도구 시제품을 본 사람들은 당연히 그것을 경계할 것이다.

훨씬 작고 평범한 물건이 같은 성능을 가졌다는 건 상상도 못 하겠지.

그 때문에 나는 지난번에 일부러 시제품을 쓰고, 이 개량품은 숨겨 두었다.

“시제품을 경계하게 만들면 그게 없을 때는 좀 더 안심하고 할 말 못 할 말을 더할 수 있을 테니까.”

그 뒤로 에반젤린은 가까이서 만날 일이 없었지만, 루드비히는 제 발로 찾아왔다.

그리고 증거를 만들어서 내 손에 쥐여 주고 간 것이다.

나는 이제 파멸 외에 어떤 길도 남아 있지 않은 루드비히에게 최대한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제 내가 그를 마주 볼 일은 별로 없을 거다.

판사는 당연한 판결을 내렸다.

“제국법의 수호자, 황제 폐하의 대리인으로서 판결을 내립니다. 황태자비 전하에 대한 고소는 무죄. 파혼에 대한 책임은 키엘른 대공 측에 있습니다. 따라서, 대공 본인이 요구한 것과 같은 수준의 배상금을 황태자비께 지급하시오.”

나무망치가 두드려지는 소리가 너무나도 경쾌했다.

루드비히가 비명을 질렀다.

“말도 안 돼! 웃기지 마!”

몇 번이나 부정하고 저항하려 했으나 사방에서 조롱과 비난이 쏟아졌다.

“세상에, 자기가 더럽게 놀아났으면서 정작 무고한 분을 괴롭히다니…….”

“결국 재산이 탐났던 거죠.”

“게다가 아까 욕설 들었죠? 너무… 천박해서 깨던걸요.”

“그래도 황족인데, 저렇게까지…….”

“역시 출신은 어쩔 수가…….”

루드비히는 바쁘게 짐을 정리해서 자신의 곁을 떠나려는 변호사를 잡으려 했다.

“어, 어딜 가는 거야? 날 혼자 두고!”

“저는 이미 임무가 끝났습니다.”

“네가 책임을 져야지!”

“대공께선 제 고용주가 아니십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

변호사는 얍삽하게 빠져나갔다.

루드비히는 하나 남은 동아줄을 찾는 것처럼 참관객석을 돌아다녔다.

“에바! 에바! 어디 간 거야?!”

놀랍게도 루드비히가 완전히 파멸하는 게 결정이 나자, 에반젤린은 나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사라졌다.

결국 루드비히는 버려진 채 혼자 남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에게 걸어 놓은 횡령과 명의 문제는 당연히 내가 이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루드비히에게는 나에 대한 배상금을 물기 위한, 노역 형 외에 다른 결말이 있을 수 없었다.

“아아아악!!!”

끝을 예감한 남자의 짐승 같은 비명이 법정 안을 가득 채웠다.

* * *

“하, 상쾌하다.”

말 그대로였다. 그야말로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루드비히에게 꽤 대갚음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맺힌 게 많았던 모양이다.

파멸을 목전에 두고 절망에 울부짖는 꼴은 꽤 보기 좋았다.

내가 신이 나 있자, 마차 옆자리에 앉아 이상하게 조용히 굴던 아르파드가 사근사근하게 물었다.

“나중에 루드비히가 노역 형 하는 데 함께 구경 갈까?”

“그건 좋지만…….”

나는 눈을 또르륵 굴렸다. 아르파드의 배려심 넘치고 다정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잠시 지켜보다가 물었다.

“당신 요즘 왜 이래요?”

“뭐가?”

“이상하게… 내가 하는 말 다 들어주고, 비꼬는 말도 안 하고… 보호해 주려고 하고… 위로해 주고……?”

뭔가 내가 말할수록 점점 더 기분이 이상해졌다.

하나같이 아르파드와는 안 맞는 표현들이다.

게다가.

‘뭔가, 좀 조심하는 거 같지 않아?’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아르파드라니. 그와 지나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설마?’

나는 미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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