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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24화 (124/210)

124화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들이 우르르 법정으로 들어섰다.

일부는 귀족 영애거나 미망인이었고, 부유한 젠트리 계층이거나 코르티잔인 경우도 있었다. 한 명은 이색적으로 수도사 옷을 입고 있었다.

벨테인 경이 자리를 비워 준 증인석에 여자 여섯이 쭉 줄을 섰다.

판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체 저들이 어떤 일과 관련된 증인이라는 것인가.

이건 변호사와 참관객들도 마찬가지로 의문스러워했다.

상황을 파악한 것은 루드비히과 에반젤린 뿐이었다.

루드비히는 안색이 흙빛이 된 채 굳었고, 에반젤린은 베일 안쪽에서 입술을 짓씹었다.

‘저 여자들은 분명히……!’

에반젤린 역시 루드비히의 애인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재판은 어디까지나 힐리아의 부정을 증명하는 것이라, 저들은 감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저 여자들이 증인으로 나온다는 건… 내가 붙여 둔 감시들에게서 전혀 얘기가 없었는데?’

이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사전에 힐리아가 이런 상황을 예측해서, 에반젤린의 감시들을 따돌려 저들을 증인으로 데리고 나왔다는 것.

에반젤린은 입술에서 불길한 쇠 맛이 나는 걸 느꼈다.

* * *

루드비히가 나를 고소했다는 사실을 듣기 전부터 이미 이들의 신원은 확보해 두었다.

이전 생의 기억으로 루드비히의 애인들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단 한 번도, 루드비히가 나나 에반젤린 외에 다른 애인을 만들지 않은 적 따윈 없었으니까.

그 때문에 저들 대부분은 아는 얼굴이었다.

일부는 에반젤린의 사주를 받아 나를 괴롭히는 데 손을 보탰었다.

“대공비께서 부군께 사랑받지 못하시는 건, 전부 비 전하 본인의 문제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정을 나눠 받아도, 에반젤린 님만 하겠어요.”

“사실 진짜 대공비는 에반젤린 님 아닌가요?”

그들에 대한 분노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에반젤린에게 매수되어 날 괴롭히는 데에 가담할 정도라면, 확실한 대가가 있을 경우 나를 위해서도 기꺼이 일할 수 있다는 소리다.

충성이나 신의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이익만 본다는 얘기니까.

상당한 보상과 신변 보호를 약속하자, 세 명의 여자들은 바로 넘어왔다.

다른 셋은 순전히 루드비히에 대한 원망과 악의로 나섰다.

각기 다른 이유로 나타난 여자 여섯은 줄 서서 차례대로 증언했다. 거의 릴레이 증언이었다.

“키엘른 대공은 약혼 기간 동안 저를 유혹했어요. 저는 가벼운 마음에 잠시 만났고요.”

“저기, 저 여자와 저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친 걸 알고 우리 둘은 서로 머리채를 잡았었죠.”

꽤 이름이 알려진 코르티잔 라시아와 퀴센 자작 영애가 싸운 사실은 소문이 조금 퍼져 있었다.

“하지만 그게 키엘른 대공 때문이었는지는 몰랐네요. 전혀 소문이 안 났거든요.”

“저는 둘이 오페라 가수를 사이에 두고 싸웠다고 들었어요.”

에반젤린이 관련된 소문을 전부 틀어막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저에겐 신분도 속이고 접근해서는… 어흑! 결혼하겠다고 속여서 저와 밤을…! 어흐흑! 나중에 약혼녀가 있는 남자라는 걸 알고, 저는 수도원으로 들어갔어요!”

유일하게 수도사복을 입은 여인은 증언하며 펑펑 울었다. 사방에서 동정이 쏟아졌다.

여섯 명의 여자 중 가장 적극적인 코르티잔 라시아가 외쳤다.

“그리고 대공 전하께서 제집에 드나드실 때 다른 애인도 함께 데리고 오곤 하셨어요!”

그녀의 손가락이 참관객석의 에반젤린을 가리켰다.

“바로 루스 후작 영애와 함께 말이죠! 두 분은 제 저택을 밀회 장소로 썼습니다! 당연히 지난 3년 사이, 대공 전하의 약혼 기간 동안이었죠!”

루드비히를 애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손님으로 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후원자를 가장한 손님으로 오는 귀족 남성들에게 적당한 대가를 받고 다른 여인까지 소개해 주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라시아는 가지고 온 장부를 내밀었다.

“제가 10년 동안 꾸준히 작성한 손님, 아니, 후원자 기록입니다. 여기에 대공 전하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나는 조금 감탄했다.

저 코르티잔은 에반젤린의 명으로 나를 괴롭히던 이들 중 가장 악질적인 여자였다.

‘상황이나 적이 바뀌어도 공격을 잘하는 건 똑같구나.’

회귀 전 에반젤린의 개가 지금 옛 주인을 물어뜯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코르티잔의 손가락을 따라 참관객들의 시선이 에반젤린에게 꽂혔다.

“잠깐, 그러고 보니 아까 황태자비 전하의 기사를 회유하려던 게 루스 영애였다고 하지 않았어?”

“왜 상관없는 사람을 걸고 넘어지나 했는데, 상관없는 게 아니었던 거네?”

“그러고 보니 전에 묘한 소문 돌지 않았어요? 델핀저에서 두 사람의 짐이 함께 나왔을 때…….”

“하긴, 그때부터 좀 이상하다 싶긴 했어…….”

참관객들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일시에 떠들다 보니 거의 용광로가 끓는 듯한 소음이 에반젤린의 주변에서 우글거렸다.

지금 에반젤린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베일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매 아래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건 잘 알겠다.

루드비히는 줄줄이 서서 릴레이 증언을 하는 여자들을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로 노려봤다.

증언 때마다 끼어들어 호통을 치려다 판사에게 몇 번이나 제지당했다.

그 옆에 선 변호사의 안색 역시 거무죽죽해져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다시 한번 발언을 요청했다.

“저와 키엘른 대공의 약혼이 파기된 계기는 약탈혼이었습니다.”

이 발언을 하며, 나는 의도적으로 아르파드를 바라보았다.

아르파드 역시 나를 마주 본다. 나는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나를 납치해 준 남편에게 더없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저는 이혼 재판을 신청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힐리아!!!”

루드비히의 분노한 외침이 재판정 안을 맴돌자 판사는 다시 제지했다.

아르파드는 노골적으로 사촌을 비웃었다. 나는 그런 건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아마 약탈혼이 없었더라도, 저와 키엘른 대공의 약혼은 파기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보시다시피, 대공이 약혼의 신의를 전혀 지키지 않았으니까요.”

사방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니 이번 키엘른 대공이 저에게 건 혐의는 모두 옳지 않습니다. 도리어 약혼 파탄의 책임은 키엘른 대공에게 있으며, 저는 그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판사가 물었다.

“이미 비 전하께서는 대공에게 횡령과 불법적인 명의 이전에 대해 고소하신 상태입니다. 거기에 약혼 파탄에 대한 배상도 추가하시겠단 말씀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공은 저에게 델핀가의 저택과 재산을 위자료로 요구했습니다. 그렇다면 저 역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해도 되겠지요.”

루드비히의 안색이 거무죽죽해졌다.

“확실히 제국법에는 한쪽이 배상을 요구하여 입증에 실패한 경우, 상대방에게 그만큼의 배상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존재합니다.”

일종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조항으로 이스트리드 제국법의 특징 중 하나였다.

판사는 덤덤하게 루드비히가 어떤 궁지에 몰려 있는지 말했다.

“이미 키엘른 대공가의 모든 재산에 대해 압류를 요청했지만, 이번 약혼 파탄 건에 요구하실 배상금이 더 크군요. 이 경우에는…….”

그러자 아르파드가 끼어들었다. 진짜 변호사라도 된 듯한 태도로.

“그럴 땐 노역형에 처해 배상금을 대신하게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뭐, 뭐라고?!”

루드비히는 더는 참지 못하고 외쳤다.

그런 건 보통 범죄를 저지른 거리의 부랑자들이 잡혀 와서 받는 벌이었다.

루드비히에게 노역형을 거론한 것 자체가 지독한 모욕이었다.

“나는 황족이야! 감히 황족을 노역형에 처하겠다고?!”

그러자 아르파드는 피식 웃었다.

“네가 고소한 내 아내 역시 황족이야. 그리고 황족이라 해서 제국법 위에 있는 게 아니지. 법 위에 있는 분은 오로지 한 분, 제국의 주인뿐이니.”

루드비히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의 속을 더 뒤집어 놓았다.

“걱정 마세요, 키엘른 대공. 횡령과 명의에 대한 고소에서 승소하시면 재산이 남아 있을 테니, 그걸로 이번 일에 대한 배상금을 낼 수 있을 거예요.”

당연히 양쪽 모두 루드비히가 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하는 말이었다.

예상한 바였지만, 루드비히는 순순히 승복하지 않았다. 그는 재판 초반 내세운 증인들을 다시 거론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든 저 여자가 기사와 뒹군 건 사실이야! 증인들도 이렇게 확실하지 않나!”

아르파드가 분노했다.

“네가 시궁창에서 뒹굴었다고 내 아내까지 그럴 거라 모욕하지 마라, 루드비히.”

그러자 루드비히는 입꼬리를 흉측하게 비틀면서 말했다.

“내가 약혼 기간에 저 여자들과 뒹굴었다는 증거가 있나? 너나 힐리아가 돈을 주고 매수해 온 거겠지!”

코르티잔이 기회를 엿보다가 끼어들었다.

“여기 장부가……!”

루드비히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따위 건 누가 못 써! 저걸 어떻게 증거라고 할 수 있겠나!”

루드비히의 상상 이상의 발악에 법정 안에 잠시 침묵이 내리깔렸다.

덕분에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추해.”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한 마디였다.

하지만 눈이 시뻘게진 채, 루드비히는 그야말로 ‘배 째라’ 식의 우기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섰다.

결혼반지 외에 내가 유일하게 하고 있던 장신구, 연수정 목걸이를 풀면서 말이다.

그것을 손에 쥔 채 나는 이 지루하고 추한 쇼를 끝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고소인이 직접 자기 입으로 한 말이라면 무엇보다 확실한 증언이자 증거겠지요.”

“어떤 말 말씀입니까?”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누명을 씌우겠다는 협박이죠.”

루드비히는 순간이지만 멈칫했다.

곧 어이가 없다는 듯 도리어 당당하게 외쳤다.

“웃기는군! 나는 그런 말을 한 적 없어! 그걸 누가 믿어 주겠어!”

루드비히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나는 목걸이를 발동시켰다.

목걸이에 빛이 몰려들며 꽥꽥거리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루드비히의 얼굴이 회귀까지 합쳐 내가 본 중 최고로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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