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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12화 (112/210)

112화

마력을 직접 다루지 못하는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격렬한 반응이었다.

흐릿한 빛에 감싸인 아론을 중심으로 회오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급격한 마력의 변화가 부르는 흔한 현상이다.

강력한 마법을 쓰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마력을 가진 이가 스스로 힘을 제어하지 못할 때.

예를 들어 소드 마스터 경지에 막 들어선 경우라던가…….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한 말이 효과가 있었던 거야.’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면서 말해 줬는데 정말 경지를 뚫어 버리다니.

그것도 회귀 전보다 2, 3년 빨리 말이다.

역시 천재들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게 당연한 듯했다.

어쨌건 아론이 깨달음을 얻은 여파가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휘오오―!

꽃잎과 정원수의 이파리, 작은 나뭇가지들 등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렸다.

“꺅!”

“엄마야!”

귀부인들의 치맛자락이 뒤집어지거나 모자, 보닛 등이 벗겨져 날아가기도 했다.

“아, 아론?”

뮤젠 공작 부인이 갑작스러운 아들의 상태에 놀라 다가가려 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를 잡았다.

“안 돼요, 공작 부인.”

“하지만 제 아들이……!”

“기사나 마법사가 새로운 경지에 이를 때 잠시 망아(忘我)의 상태가 된다고 들은 적 있어요. 지금 소공작이 그래 보이네요.”

“네? 그럼?!”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파리하게 물들었던 공작 부인이 화색을 띤다.

나는 일부러 고개를 들어 아르파드에게 물었다.

“당신이 보기엔 어때요? 내 말이 맞는 것 같나요?”

전 대륙을 뒤져 봐도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건 현재 아르파드와 황제뿐이다.

그러니 그 경지에 대해 말해 줄 사람도 이들뿐.

물론 두 사람은 드래곤의 혈통을 이어 유리했지만, 어쨌든 소드 마스터이니까.

그가 긍정해 주면 공작 부인도 조금은 안심할 터였다.

아르파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론을 바라보다가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말이 맞아. 지금은 건드리거나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겠군.”

“그러면 설마… 아론이 소드 마스터 경지에 들어섰다는 말씀인가요?”

공작 부인이 두 손을 모아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르파드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자 주변에 격렬한 놀라움이 퍼졌다.

“세상에, 그럼 정말로?”

“그럼 우리는 지금 소드 마스터의 탄생을 직접 지켜보게 되는 건가요?”

아르파드는 굳이 필요 없는 말을 덧붙여서 분위기에 초를 치려 들었다.

“무사히 의식이 돌아올 경우의 이야기지만.”

나는 아르파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주변에서 듣지 못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잔소리했다.

“좀 긍정적인 얘기를 해 줘요!”

“나는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야. 저 단계에서 못 돌아오면 평생 의식을 못 차리는 경우도 있다고.”

“공작 부인 앞에서 굳이 그래야겠어요!”

아르파드의 옆구리를 더 팍팍 찔렀다.

하지만 아르파드의 강철 같은 근육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세게 찌르다가 내 손만 아팠다. 아야야!

그때 아르파드가 턱을 매만지며 낮게 중얼거렸다.

“설마… 깨달음을 준 은혜를 갚겠다고… 달라붙는 건 아니겠지?”

본인을 귀찮게 할 걸 걱정하는 건가?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더 좋은 거 아니에요?”

아르파드의 표정이 갑자기 흉흉해졌다.

“…뭐?”

근데 그 흉흉함이 내가 아닌 아론을 향했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아론에게 뭐라고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소드 마스터가 된 기사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당연히 좋은 거잖아요.”

“…그 얘기였나?”

왠지 모르게 짜증 나 보이던 아르파드의 분위기가 좀 풀렸다.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놈이 왜 나를 따르겠어?”

소용없겠지만, 아르파드의 옆구리를 다시 찔렀다.

“아무리 작게 말하고 있어도 ‘저놈’이 뭐예요. 조심해요. 공작 부인이 들으면 어떡하려고!”

“들으라고 해. 이 정도로 화낼 거면 당신 시녀장 자격 없어.”

나와 아르파드가 아웅다웅하고 있는 사이.

아론을 둘러싼 공기가 천천히 안정되기 시작했다.

회오리치던 바람이 잠잠해지고, 아론의 몸 주변에서 요동치던 빛이 흡수된 것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마침내 아론이 눈을 떴다.

옆에서 조마조마하면서도 잘못될까 봐 끼어들지 못하고 있던 공작 부인이 아들을 불렀다.

“아론, 괜찮니?”

아론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긴 꿈을 꾼 듯 눈을 껌뻑거리고, 양손을 이리저리 쥐었다 폈다 할 뿐이었다.

그리고 모친에게 물었다.

“어머니,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겁니까?”

“응? 얼마 안 됐단다. 20분에서 30분 정도?”

아론은 의아한 표정을 했다.

“몇 시간, 아니, 몇 달, 아닌가? 몇 년은 지난 듯한 기분인데…….”

횡설수설하는 아들을 보고 공작 부인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정말 괜찮은 거니?”

아까 아르파드가 한 말이 떠오른 모양이다.

못 깨어나거나 잘못될 수도 있다던 말이.

그가 무사히 소드 마스터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나도 아론이 헛소리해 대자 좀 불안해질 정도였다.

‘괜찮은 거, 맞겠지? 내가 괜히 말해 준 거면…….’

다행히 나와 공작 부인의 걱정은 필요 없었다는 게 밝혀졌다.

잠시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아론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그러더니 부러진 검을 다시 손에 쥐었다.

아르파드에 의해 검막이가 부서지고 칼날 중간이 부러진, 이제 쓸 수 없게 된 검.

아론은 거리낌 없이 양손으로 반쪽짜리 검을 쥐었다.

다음 순간.

우웅―!

칼날이 울었다. 그와 동시에 짙은 푸른 빛이 튀어나와 날이 반만 남은 칼을 감쌌다.

마치 빛으로 만들어진 칼날 같았다.

“오러!”

“소드 마스터다!”

“세상에! 정말로 뮤젠 경이 소드 마스터가 되었군요!”

사방에서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나와 아르파드를 빼고 모든 이가 그랬다.

나야 미리 알고 있어서였고, 아르파드는 태어날 때부터 저 경지에 이미 도달한 초인이었으니까.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아론을 보았다.

그때 내 귓가에 혀를 차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쳇.”

뭐야?

의아해하며 돌아봤을 때 아르파드는 내가 아니라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이 인간이 갑자기 왜 또 이러는 거야… 에서, 내 상념은 끊겼다.

아르파드만이 아니라 모든 이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 역시 곧 알게 되었다.

오러를 발현하여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음을 증명한 기사, 아론이 내 앞에 다가와 있었다.

“…어, 뮤젠 경?”

내가 당혹스러워하는 사이, 아르파드가 길게 내쉰 한숨이 내 어깨에 앉았다.

그는 이를 갈면서도 내 귓가에 속삭였다.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 중요한 자리야.”

“…어? 네?”

이게 무슨 헛소리지?

아르파드는 나를 끌어안았다 놓으며 내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아론의 앞에서 곧고 당당하게 서도록 말이다.

“내가 그대의 남편이라 참는 거야.”

저 말의 의미가 머릿속에 다 들어오기도 전에 아론 뮤젠이 내 앞에 칼을 꽂았다.

오러에 감싸인 칼날은 바닥의 대리석을 부드럽게 가르고 박혔다.

그와 동시에 아론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기사 아론 뮤젠. 일생 이 검을 오로지 비 전하께 바치겠습니다.”

기사의 맹세였다.

나는 당황했다.

‘아니, 그걸 왜 나한테 해?’

나는 아론이 아르파드에게 충성 맹세를 할 거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회귀 전에도 아론은 에반젤린에게도 기사의 맹세를 안 했었다고!’

루드비히가 황태자가 되자 충성 맹세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뮤젠 가의 후계자로서였다.

기사로서, 그리고 아론 개인으로서는 아니었다.

기사의 맹세는 충성 맹세보다 더욱 중요하고 무거운 맹세다.

한 기사가 자신의 검을 일생 바치겠다는 의미.

에반젤린의 추종자 중 하나였던 아론은 누구에게도 기사의 맹세를 하지 않았다.

이건 뮤젠 공작가의 후계자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공작이 기사의 맹세에 얽매여 있으면, 공작가 자체의 독립성까지 훼손할 수 있으니까.

그 정도로 기사의 맹세는 의미가 크고 무거운 것이다.

그런데 그걸 아론이 지금 내게 바치겠다고 말했다.

이 상황을 깨달은 뮤젠 공작 부인이 표정을 굳히며 아들을 불렀다.

“아, 아론!”

하지만 아론 뮤젠은 전혀 흔들림 없었다.

“비 전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제게 빛이 되었습니다. 그 빛에 의지하여 완성된 검을 그 주인께 바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

“부디 받아 주십시오.”

칼자루가 나에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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