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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05화 (105/210)

105화

아르파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자수정 세트를 가리켰다.

“저게 바로 뮤젠 소공작이 당신에게 바쳤다는 물건인 모양이군?”

“아, 들었어요? 공작 부인이랑 소공작이 함께 왔어요.”

귀환 직후 율켄에게 들은 대로였다.

율켄은 분명히 공작 부인과 소공작이 함께 바쳤다고 말해 줬지만, 아르파드의 머릿속에서는 ‘소공작이 바친 것’으로 변형되어 있었다.

아르파드는 은근슬쩍 외간 남자의 선물을 깎아내렸다.

“소공작의 심미안이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는군. 당신에겐 더 좋은 물건이 어울려.”

하지만 힐리아는 아르파드의 의도를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감사의 표시라면서 주고 갔어요. 제가 공작 부인을 좀 도와줬거든요.”

“도움?”

“네. 목숨을 구해 줬죠.”

힐리아는 가슴을 내밀고 뽐내듯 말했다.

“시녀장 직도 수락했어요. 당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뮤젠 공작가 회유를 끝냈다고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입을 맞추고 싶은 걸 참고 아르파드는 감탄한 듯 말했다.

“대단해. 역시 당신다워.”

아르파드의 칭찬에 힐리아의 표정이 또 이상해졌다.

“당신 진짜 뭐 잘못 먹은 거 아니죠?”

“아니야. 내 눈은 멀쩡해.”

콩깍지가 좀 끼긴 했지만, 시력 자체는 이상이 없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힐리아의 의심스러운 표정은 변함없었다.

아르파드는 화제를 돌리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나저나, 마음에 드나? 내 선물.”

그제야 반지의 존재를 다시 깨달은 힐리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맞다! 당신 이거 어떻게 구한 거예요? 이거 그거잖아요! ‘스타틸리아의 별’!”

“알아봐 주니 기쁘군.”

아르파드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짙어졌다.

아무리 개수가 많아도 저 자수정보다는 스타틸리아의 별이 몇 배는 나은 게 객관적 사실이었다.

절대 얼굴도 모르는 뮤젠 소공작 따위를 견제해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 * *

아르파드가 내게 끼워 준 건 연보라색 보석이 선명한 은빛 반지였다.

나는 이게 뭔지 알고 있었다.

‘스타틸리아의 별!’

여신의 축복을 받은 다섯 보석 중 하나.

내가 아르파드에게 준 아그리피나의 눈물과 비슷한 것이다.

그리고 에반젤린이 나중에 얻어서 가장 아끼던 보석 중 하나였다.

대륙 제일의 기사, 아론 뮤젠이 에반젤린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구해 바쳤다 했다.

지금 발견될 타이밍도 아니고, 내게 올 물건도 아니다.

아르파드 역시 가지고 있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아르파드가 내 손에 끼워 준 이 반지는 분명히 ‘스타틸리아의 별’이다.

내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연보라색 보석이 부담스럽게 번쩍거렸다.

보석의 별명처럼 속에 빛나는 별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결혼반지를 받아 본 건 처음이 아니다.

내 회귀의 원인이 되었으리라 짐작되는 그 반지는 매번 내 것이었으니까.

‘잠깐, 그러고 보니까 그 반지 조금 전에 아르파드가 빼앗아 가지 않았나?’

이 의문은 손가락 위에서 반짝거리는 여신의 별 앞에 잠시 잊혔다.

아르파드는 어딘지 모르게 재수 없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직접 구해 왔지.”

“이걸요?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들은 적 없었는데?”

“검은 용병단에서 일주일 전에 정보를 얻었어.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여신의 신물들을 찾고 있었으니까.”

“아.”

지금 아르파드의 손목에 걸린 아그리피나의 눈물이 그 증거이긴 했다.

내가 의뢰 선금으로 주었던 그 진주 목걸이를 아르파드는 손목에 두 번 감아서 끼고 있었다.

내가 반지를 낀 손으로 아르파드의 손목을 건드리자, 아그리피나의 눈물이 반짝였다.

우웅, 두 신물이 각기 다른 신성력을 발하며 공명했다.

스타틸리아의 별이 진품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이거 찾으려고 일주일간 다녀온 거였어요?”

“그렇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음? 그렇지만 이제 신물이 당신 광증에 소용없다는 건 알고 있는데, 왜 간 거예요?”

이걸 구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짐작이 갔다.

그런데 아르파드가 왜 갑자기 이걸 나 주겠다고 그 위험한 길을 자처해서 다녀온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 물론 아르파드는 미래의 아론 뮤젠보다 몇 배는 강하니까 위험하진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내 질문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아르파드는 조금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당신에게… 주고 싶어서.”

마치 조금 수줍어하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 속으로 부정하며 일부러 발랄하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음, 왜요?”

“…….”

아르파드의 붉은 눈이 선명한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 * *

아르파드는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건지 귀를 의심했다.

바보처럼 되물은 건 그 때문이었다. 너무 당황해서.

“지금, 내가 왜 그대에게 이걸 주는지 물은 게… 맞나?”

“네.”

힐리아는 당연한 질문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잠시 할 말을 잃고 힐리아를 멍하니 보던 아르파드는 겨우 정신을 수습했다.

“결혼반지야. 그대에게 예물다운 예물을 주지 못해서…….”

힐리아는 더 의아해했다.

“음? 결혼반지는 있잖아요? 별궁에서 받은 거.”

“그건 제대로 된 게 아니지. 별궁에 있던 보석 중에서 적당히 고른 거였으니까.”

“황태자궁에도 이미 보석과 액세서리는 충분히 차고 넘치게 있는데요?”

“…….”

아르파드는 새삼스레 양심이 찔리고 말문이 막혔다.

사실 약탈혼부터 입궁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본인도 그때 결혼반지로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힐리아가 그걸 지적하며 비꼬거나 원망하는 말투라면 좀 나았을 거다.

하지만 아니었다.

순수하게 진짜 왜 이걸 자신에게 주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마치 힐리아는 ‘우리가 이런 걸 주고받을 관계는 아니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르파드는 멍하니 바보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대가 내 아내니까……?”

그가 충격으로 굳은 사이.

힐리아는 아르파드가 어째서 이런 귀한 보석을 주는지에 대한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조금 초점이 엇나간 판단이었다.

‘아, 내가 일을 너무 잘했구나!’

막 감정을 깨달은 아르파드의 입장에서 결혼반지를 준 건 고백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힐리아는 이걸 조금 비틀어서 받아들였다.

이른바.

‘당신을 황태자비로 인정합니다.’

파트너로서, 황태자비로서 충분한 능력을 보였으니.

그에 대한 대가 혹은 상으로 아르파드가 이걸 주었다, 라고 판단을 내렸다.

아르파드가 알면 허탈하다 못해 바닥에 쓰러질 정도의 생각이었다.

두 보석은 공명했지만, 주인들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힐리아는 이해한 듯 말했다.

“고마워요.”

“…아니야. 내가 좀 더 일찍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아르파드는 조금 안도했다. 도자기처럼 하얗던 뺨에 희미한 홍조가 어리려 했다.

분위기가 겨우 조금 로맨틱하게 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건 순식간에 박살 났다. 다시 한번 힐리아에 의해.

손에 반지를 낀 채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던 그녀는 양손 주먹을 꽉 쥐었다.

꼭, 아르파드를 응원하는 듯한 자세였다.

“더 힘낼게요!”

“…응?”

이게 결혼반지 받고 나올 대답인가?

아르파드가 잠시 혼란에 빠진 사이였다.

그의 의문을 힐리아가 해결해 주었다.

“당신의 의뢰주로서, 파트너로서 더 힘내라고 주는 거죠?”

그다지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었다. 아르파드의 표정이 더더욱 멍해졌다.

힐리아는 더없이 진지하고 또 신이 나 있었다.

“하긴, 내가 좀 잘하긴 했죠.”

“잘, 했지. 너무 잘해 줬지.”

아직 제정신을 수습하지 못한 아르파드의 머릿속에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말을 곱게 하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더는 입으로 업보를 쌓지 말자고 결심한 건 지켜야 한다.

그는 최대한 곱고 긍정적인 대답을 내놨다.

덕분에 힐리아가 ‘이건 일 잘한 보너스죠?’라고 한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꼴이라는 걸 아주 늦게 깨닫게 되었다.

아르파드의 정신이 빠지든 말든 힐리아는 신이 나 있었다.

에반젤린의 것이었던 신물이 자신의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게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힐리아는 당당하게 웃었다.

“앞으로도 이 반지 값 이상은 할게요.”

“…….”

안 해도 돼, 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 제대로 고백하면 힐리아는 엄청나게 부담스러워할 거다.

그리고 도망치려 들지도 몰랐다.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나았다.

그날 밤, 아르파드는 잠든 힐리아를 안고 침대에 누워서 곱씹었다.

‘차였군.’

고백해 보기도 전에 차인 셈이다.

그리고 일을 이렇게 꼬아 놓은 건, 바로 멍청한 과거의 자신.

절대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건 힐리아는 지금 그의 아내였고, 스타틸리아의 별을 손에 끼고 있었다.

깨달았으니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최선을 다해 유혹해 주지.’

그야말로, 동상이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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