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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00화 (100/210)

100화

아론 뮤젠은 정신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쇼핑을 했다며 즐거워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으니 당연했다.

온몸이 부풀어 오르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한눈에도 상태가 위중해 보였다.

그런데 마치 장난처럼 끼어든 여자가 있었다.

유달리 짙은 향기의 꽃 넝쿨 위에서 고개를 내민 여자.

그녀는 마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응했다.

아론은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미심쩍음은 모친의 안위에 대한 걱정 앞에서는 하찮았다.

아론은 알지 못하지만, 이는 회귀 전에도 동일한 첫인상이었다.

물론 이 감상은 에반젤린이 공작 부인의 목숨을 구해 주며 반전되었지만 말이다.

처음 의심한 만큼, 아론은 더더욱 에반젤린에게 헌신했다.

아론은 그 여자를 무시한 채 수행원들을 지휘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의원을 수배해! 아니, 위치만 확인해라. 내가 직접 모시고 가겠다!”

마차보다 그가 직접 어머니를 안고 달리는 게 몇 배는 빨랐다.

그는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오러를 다룰 수 있는 기사였으므로.

그때였다. 옆 건물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던 여자가 계단을 사뿐사뿐 걸어 내려온 것은.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은 채 아론에게 말했다.

“귀부인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아론은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딱 봐도 귀하게 자란 귀족 영애였다.

의술에 조예가 깊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아론의 품속에서 공작 부인이 거의 숨넘어가는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헉! 끄억!”

아론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에반젤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당황한 청년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제가 잠시 돕게 해 주세요. 제 어머니가 비슷한 증상을 보이신 적이 있어요.”

그 사이 금발의 여자는 모자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다.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론은 모친을 마차 밖으로 옮겼다.

그녀는 잠시 공작 부인의 상태를 살피더니, 품속에서 물약을 하나 꺼냈다.

그러고는 공작 부인에게 물약을 먹이려 했다.

아론은 놀라서 물었다.

“그건 대체 무슨 약입니까?!”

“이런 증상을 가라앉혀 주는 약이에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 어머니가 이런 증상을 보이신 적이 있어서, 비상약으로 가지고 다닌답니다.”

쉽게 믿기 힘든 말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걸 미리 안 것처럼 약을 가지고 있다고?

그녀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 약을 드시면 한 시간 정도 후에는 증상이 가라앉으실 거예요. 만일 부인께 문제가 생기면 제가 루스 후작가의 이름을 걸고 책임을 지죠.”

귀족이 가문의 이름을 거는 건 가벼운 의미가 아니었다.

아론은 미심쩍어하면서도 결국 그녀가 모친에게 약을 먹이는 걸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잠깐만.”

근처에 멈춰 서 있던 마차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내려섰다.

유달리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라고, 아론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마치 때를 잊은 듯 흐드러지게 핀 봄 벚꽃 같은 여자가 서 있었다.

아론은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이건 회귀 전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그때 힐리아는 에반젤린에게 눌려 자신감이 부족하고 빛바래 보이는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치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다.

* * *

회귀 전에도 에반젤린은 물약으로 공작 부인을 구했다.

이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저 약이 무엇인지 알았다.

‘알레르기 치료제야.’

갑자기 온몸이 붓고 호흡 곤란으로 쓰러진 건 심각한 알레르기 증상 때문이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조금 전 에반젤린이 몸을 드러냈던 테라스를 보았다.

붉은 꽃 덩굴이 자연스럽게 흰 대리석 난간을 휘감고 있는 곳.

‘저건… 루피스 꽃.’

남부나 수도 인근에서는 잘 기르지 않는 꽃이다.

주로 서부에서만 자라는 식물.

회귀 전 공작 부인이 쓰러진 장소와 시간은 세 번 모두 달랐다.

하지만 사건 자체는 반드시 일어났다.

내가 목격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사건이 벌어지게 만드는 요소는 셋.

공작 부인과 루피스 꽃.

‘그리고 에반젤린.’

이게 우연일 리 없다.

수도에서는 드문 루피스 꽃에 뮤젠 공작 부인은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알레르기가 있었다.

이번에도 에반젤린이 똑같은 사건을 재현해, 뮤젠 공작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 거라는 건 짐작했다.

뮤젠 공작가 정도로 중요한 가문의 공식적인 움직임은 아르파드가 확보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수한 고용인을 통해 뮤젠 공작가의 움직임을 에반젤린에게 일부러 흘렸다.

역시 에반젤린은 내 예상대로 행동해 주었다.

공작 부인도, 그 아들도 저 꽃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건 몰랐던 모양이다.

한국에서는 알약이나 흡입기로 바로 치료할 수 있지만, 이곳은 다르다.

아주 비싸고 희귀한 약초를 특수한 마법으로 정제해야만 알레르기 진정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에반젤린이 막 공작 부인의 입에 그 귀한 물약을 먹이려는 찰나였다.

내가 마차 문을 열고 내려서며 말했다.

“잠깐만.”

“…!”

에반젤린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그녀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네가 왜 여기에?’하고 말하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이성으로 소리 내는 것을 막은 듯했다.

나는 에반젤린을 무시하고 공작 부인에게 다가갔다.

“내가 상태를 보도록 하죠.”

그러자 아론이 나서기도 전에 에반젤린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먼저예요!”

그러자 아론이 어이없다는 듯 에반젤린에게 물었다.

“당신이 먼저 왔다고 무슨 권리라도 있는 줄 아십니까?”

공작 부인의 상태는 매 순간 악화되고 있었다.

옆에 붙어 있던 에반젤린이 나를 노려보더니, 공작 부인의 입을 강제로 열고 약을 먹이려 했다.

“끄읍!”

공작 부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보다 못한 아론이 바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탓!

에반젤린의 손에서 물약 병을 빼앗은 것이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신의 어머니를 구하려고 하는 거라고요!”

“그렇게 험하게 굴면서 말입니까?!”

내가 나타나자 에반젤린은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회귀 전과 달리 무리하게 굴다가 아론의 반감을 샀다.

그사이 나는 아론과 공작 부인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병 하나를 아론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걸 써 보세요.”

향수병처럼 생긴 투명한 액체가 담긴 병. 그걸 보고 아론이 당혹한 표정을 했다.

아론의 당혹감과 경계심을 보고, 나는 망설임 없이 입을 벌리고 안쪽으로 약을 뿌렸다.

칙, 향수처럼 작은 입자 형태인 액체가 입 안에 분무됐다.

이건 알레르기 반응으로 부은 기도를 바로 가라앉혀 주는 즉효성 약이었다.

녹음 마도구를 만든 제작자에게 의뢰해 향수처럼 뿌릴 수 있게 미리 준비해 두었다.

직접 입 안에 뿌리고도 아무 이상이 없는 걸 보여 준 뒤 나는 약병을 아론의 손 위에 놓았다.

그리고 간단히 설명했다.

“독성이 없는 건 방금 내가 보여 줬으니 알 거예요. 내가 한 것처럼 부인의 입을 벌리고 목 안쪽으로 뿌려요.”

“…?”

“이건 바로 효과가 있을 거예요. 효과가 없으면 다른 의사를 찾거나…….”

나는 눈동자만 움직여 에반젤린을 보았다.

“…!”

에반젤린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듯 파리해졌다.

“저 약을 먹여 보거나, 원하는 대로 하세요.”

아론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무리도 아니다.

‘어머니가 쓰러졌는데 갑자기 처음 보는 여자 둘이 나타나서 자기 약을 써 보라고 난리니.’

황당할 수밖에.

하지만 그는 내가 건넨 약병을 내동댕이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말을 더하지 않고, 그대로 뒤돌아 마차로 향했다.

계속 내 옆을 지키던 벨테인 경의 에스코트를 받아 마차에 오르면서 흘긋 길 건너편을 보았다.

넋이 나간 에반젤린이 보였다.

공작 부인의 옆에서 붙어 있던 하녀가 비명을 질렀다.

“마, 마님의 숨이 멈추셨어요!”

“!”

경악한 아론은 결국 내가 준 약을 모친에게 사용했다.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

회귀 전 공작 부인을 구할 때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이전에도 예상보다 공작 부인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고, 그대로 호흡이 멈췄다.

에반젤린이 준비한 약은 효과가 도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당황한 에반젤린은 임기응변으로 공작 부인에게 인공호흡을 시행했다.

그걸 보고 나는 놀랐다.

‘이 세상에도 인공호흡이 있는 건가?’

나중에 내가 물어봤을 때 에반젤린은 의사에게 배운 방법이라고 대충 넘겼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빙의자라 가진 지식을 활용했던 거야.’

조금 늦게 에반젤린이 정신을 차리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 내가 응급 처치를 할 수 있어요! 비켜 봐요!”

그때와 달리, 지금 에반젤린이 빙의자로서 지식을 활용할 기회는 없었다.

“하아……!”

공작 부인의 호흡이 빠르게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에반젤린을 향해 조소를 잠시 보여 준 뒤 마차에 올랐다.

* * *

에반젤린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지금 여기서 힐리아가 나온단 말인가.

게다가 기다렸다는 것처럼 공작 부인의 알레르기 증상을 완화할 약을 주고 가 버렸다.

에반젤린의 약은 입으로 섭취하는 것이다.

당연히 흡수되고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힐리아가 아론에게 주고 간 건 입과 목구멍에 직접 분무하는 형태.

효과만 확실하다면 즉각적으로 약효가 돌 것이다.

에반젤린이 인공호흡을 시도할 새도 없이 아론은 힐리아가 주고 간 약을 사용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공작 부인이 바로 숨을 편하게 쉬기 시작했다.

“어머니! 정신이 드십니까?”

“아, 아론?”

아들을 부르는 목소리도 안정적이었다. 피리 소리가 나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는 상황 앞에서 에반젤린이 굳어 있는 사이.

아론이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은인의 이름을 아십니까, 레이디?”

“…!”

에반젤린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이건 아니었다. 그녀가 예상하고 계획한 상황이 아니었다.

감사하고 감동한 표정의 아론은 자신의 이름을 물어야 했다.

그녀는 마치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조연이 된 것 같았다.

지독한 모멸감이 에반젤린의 온몸을 짓눌렀다.

‘이건 말도 안 돼.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마치, 마치… 힐리아가 이 일을 미리 다 알고 있었던 것 같잖아.’

‘원작’을 읽은 자신처럼 말이다.

소름이 쭉 끼쳤다.

* * *

외출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나를 기다린 것은 의외의 소식이었다.

율켄이 입가를 가린 채 와서 직접 아르파드의 말을 전했다.

“전하께서는 피치 못할 중요한 일로 잠시 황태자궁을 비우신다고 합니다.”

“피치 못할 중요한 일? 그게 뭐지?”

“말씀드렸다간 전하께서 절 죽이실 겁니다.”

“…?”

“어쨌건 전하께서 잠시 궁을 비우신 동안, 비 전하께서 자리를 잘 지켜 주시리라 믿는다 말씀하셨습니다.”

율켄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는데,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있어서 소용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이상하게 실실 웃으며 말했다.

“어쨌건 비 전하께 절대 나쁜 일은 아닐 테니 걱정 마십시오.”

고개를 갸웃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물었다.

“잠깐! 그럼 자기 일 다 나한테 미뤄 놓고 간 거 아냐?”

율켄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십시오. 일주일간 문제없을 정도로 전부 처리해 두고 가셨으니까요.”

“…?”

더더욱 영문을 알 수 없었다.

* * *

자리를 비운 아르파드는 황도 동부 깊은 산맥 속에서 발견된 유적 앞에 서 있었다.

유적을 지키는 괴수가 ‘카아악!’하는 괴성을 내질렀다.

아르파드는 무덤덤하게 칼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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