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99화 (99/210)

99화

Chapter 11. 보랏빛 연구와 보석의 상관관계

뮤젠 공작 부인은 제국 출신이지만 결혼 후에는 황도에 자주 오지 않았다.

아들이 14세에 토너먼트에 참석했을 때 한번.

그리고 바로 지금.

이번 방문에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슬슬 아론도 때가 되었지.’

뮤젠 공작가는 제국에 병합된 이후 공작 부인 자리에 늘 제국 출신 여인을 앉혀 왔다.

공작가의 충성심을 드러내기 위한 방식이었다.

차기 뮤젠 공작 부인 역시 예외는 없었다.

그 때문에 이제 18세를 맞은 아들을 데리고, 공작 부인이 직접 상경했다.

공작 부인은 번잡한 걸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과 아들의 행방을 최대한 숨겼다.

물론 정식으로 아들을 데리고 무도회를 열거나, 참여하기 시작하면 안 알려질 수 없겠지만.

막 황도에 도착한 지금은 조용하게 지내고 싶었다. 최소한 며칠 정도는.

황도 인근에 도착했을 때, 한 가지 소문이 그녀의 귀에 들어왔다.

“이번에 아르타누스 홀에서 열린 연회 때 황태자비 전하께서 새로운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으셨는데, 그게 그렇게 아름답다네요.”

그 소문 안에는 공작 부인의 흥미를 바짝 잡아당긴 정보가 있었다.

“드레스 색이 처음 보는 신비로운 청보랏빛이었어요.”

그 말을 듣자 공작 부인은 참을 수 없어졌다.

황도 뮤젠저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이곳부터 달려올 정도로.

황도에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부에서 공작 부인의 보라색 사랑은 아주 유명했다.

본인의 침실과 응접실을 보라색으로 도배하고, 정원에도 보라색 꽃과 열매가 열리는 식물들을 심었다.

당연히 드레스룸을 가득 채운 것도 대부분이 보라색이었다.

너무 보라색 옷과 액세서리만 사들이는 게 아니냐는 남편의 말에 진지하게 반박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전부 같은 보라색인 것 같은데?”

“세상에 같은 보라색은 없어요! 전부 다 다르다고요!”

특이한 청보라색이라는 말을 듣자,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드레스를 만들었다는 의상실에 일부러 찾아갔는데, 설마 가짜였을 줄이야.’

황태자비의 시녀를 만난 덕분에 진짜를 찾아올 수 있게 되었다.

공작 부인은 연 지 얼마 안 된 티가 팍팍 나는 가게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프리다 웨스…라.’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다.

하지만 공작 부인은 애니가 들고 있는 손수건을 보았다. 심장이 반응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색깔이었다.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청보라색이었어. 대체 어떤 염색법을 쓴 거지?’

흥미와 소유욕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프리다 웨스의 의상실에는 손님이 없었다.

일견 가게 안은 평범했다.

바깥에 쇼윈도를 만들어 상품을 전시하는 게 보통인데 그런 것도 없었다.

가장 안쪽에 마련된 전시 공간에 토르소 하나가 놓여 있을 뿐.

그 토르소에는 그녀가 처음 보는 오묘하고 아름다운 청보라색 드레스가 장식되어 있었다.

그녀는 벼락 맞은 듯한 감동을 느꼈다.

“세상에!”

애니가 들고 있는 손수건을 봤을 때 그녀는 이미 흥분한 상태였다.

그런데 손수건보다 저 드레스의 발색이 훨씬 훌륭했다.

보자마자 가까이 다가갈 정도로.

공작 부인 일행이 들어선 후 조금 늦게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한 젊은 부인이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여기 주인을 불러오게.”

“제가 바로 주인인 프리다 웨스입니다.”

지금 뮤젠 공작 부인을 맞이한 사람은 미리 준비하고 있던 이세핀이었다.

힐리아가 미리 귀띔한 대로, 단단히 준비하고 기다린 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가발과 화장을 이용해 최대한 다른 모습으로 분장한 상태였다.

그것도 일부러 원래 나이보다 서너 살 정도 연상으로 보이도록.

가족이나 친구 정도로 가까운 이가 아니라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솔레누 후작가의 사람들이 영지로 내려간 지금, 악시온 대공비가 아니면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좋아. 내 첫 손님이다. 잘해야 해.’

힐리아는 웃으며 이렇게 단언했다.

“프리다 웨스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 이건 투자자로서의 대 확신이라고.”

이세핀, 아니, 프리다 웨스는 주인이자 투자자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첫 손님을 최고의 거물로 이끌어 준 힐리아의 수고에 최선을 다해 부응해야 했다.

‘꼭 거래를 따내고 말겠어!’

프리다 웨스는 친절하게, 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뮤젠 공작 부인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리고 뮤젠 공작 부인은 황도에 올라오자마자, 프리다 웨스의 의상실에서 드레스를 10벌이 넘게 주문했다.

둘의 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뒤따라 온 이들은 가게 안에 장식된 청보라색 드레스 샘플과 뮤젠 공작 부인이 통 크게 주문하는 것까지 보게 되었다.

당연히 소문이 안 날 수 없었다.

“그 말 들었어요? 황태자비 전하의 드레스를 만든 게 케멀 의상실이 아니래요.”

“나도 당연히 들었죠. 처음 듣는 의상실이었는데, 프리, 뭐였지? 아무튼 거기에 뮤젠 공작 부인이 갔다면서요?”

“프리다 웨스라고 했어요. 드레스 열 벌을 주문했다고 하던데요?”

소문은 발 달린 말보다 빠르게 수도 사교계를 강타했다.

당연히 케멀 의상실에 쌓였던 주문은 모조리 취소되어, 멜리사 케멀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그녀가 금 토르소를 아무리 외쳐도 믿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케멀 의상실이 망하고, 프리다 웨스의 의상실이 수도 사교계의 인기 있는 곳으로 떠오르는 데에는 하루면 충분했다.

* * *

막 만족스러운 쇼핑을 마친 뮤젠 공작 부인 모자가 프리다 웨스의 의상실을 나와, 퀴렐 거리로 들어선 찰나였다.

난데없는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마차 안에서 갑자기 공작 부인이 쓰러진 것이다.

소공작 아론 뮤젠은 경악하여 모친을 부축했다.

“어머니!!!”

공작 부인의 안색이 붉어졌고, 피부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 숨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피리 소리가 났다.

아론은 급하게 마차를 세웠다.

“의사, 의사를 불러와! 어서!!!”

당황한 뮤젠 공작가의 가솔들이 의사를 찾아 달려 나가려는 찰나였다.

위쪽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곤란한 일이 있으신가요?”

마차가 지나가는 길 바로 위의 테라스에서 난 소리였다.

향기가 짙은 붉은 꽃과 다닥다닥 핀 초록색 덩굴이 2층의 흰 대리석 난간을 휘감고 있었다.

그 꽃과 이파리 사이에서 한 여성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구불구불한 금발이 햇살 아래 늘어지고, 초록빛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수풀 속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뱀과 같았다.

아론은 고개를 저었다.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오. 레이디의 도움까진 필요 없을 듯합니다.”

그러자 금발 여성의 입가를 가리고 있던 부채가 접혔다.

산호색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부인의 안색을 보니, 제가 아는 증상인 듯해서요.”

아론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 에반젤린이 기이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제가 도움을 드릴까요?”

* * *

“무슨 곤란한 일이 있으신가요?”

저 목소리를 듣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에반젤린은 아르타누스 홀의 연회 이후 루스 후작저에 칩거하고 있었으니까.

2층 테라스에서 고개를 내밀고 긴 금발을 늘어뜨린 채 웃는 에반젤린을 보고 새삼 감탄했다.

‘등장할 각도와 타이밍까지 계산해서 나왔구나.’

이번에도.

지금 나는 길가에 세워진 마차 안에 앉아 있었다.

조금 열린 창문 틈새로 뮤젠 공작 부인에게 벌어진 변과 우연을 가장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에반젤린을 보고 있었다.

첫 번째 생에서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 바 있었다.

에반젤린이 나를 들러리 삼고 비슷한 일을 벌였기 때문이다.

‘원작’의 정보를 바탕으로 뮤젠 공작 부인을 돕고, 그 아들인 소공작 아론의 호감을 사는 것이다.

“은혜를 베풀어 주신 레이디의 존함을 알고 싶습니다. 꼭 이 뮤젠의 아론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굳이 밝힐 것 없는 이름이랍니다.”

그렇게 수줍은 듯 에반젤린은 재빨리 자리를 떴다.

나를 남겨 둔 채.

그리고 아론은 일행이었던 나에게 에반젤린의 이름을 물었다.

“실례지만 레이디. 제 은인의 이름을 혹시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에반젤린이에요. 루스 후작 영애죠.”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에반젤린이 바라는 대로 그녀의 이름을 아론에게 전해 주었다.

‘그때는 왜 굳이 에반젤린이 나에게 이름을 알려 주는 역할을 맡겼는지도 몰랐었지.’

지금은 안다.

‘원작 여주인공’인 내가 자신의 들러리인 게 만족스러웠겠지.

그리고 본인이 사양하는데 어쩔 수 없이 알려지는 구도를 원했던 거다.

나는 에반젤린이 바라는 대로 움직였고, 얼마 뒤 아론 뮤젠 역시 열정적인 추종자 중 하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론은 단순히 남부 뮤젠 공작가의 후계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저 남자는 곧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게 될 테니까.’

에반젤린이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직접 움직일 가치가 있다는 소리다.

나는 다리를 꼰 채, 에반젤린이 가증을 떠는 것을 잠시 지켜보았다.

0